도토리를 닮은 아이들

by 눙디

첫 담임을 맡았을 때, 나는 하루 종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능숙한 척 애썼지만, 사실은 우왕좌왕과 갈팡질팡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돌발 상황에 진땀을 빼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히는 일도 잦았다.
아이들의 작은 표정 변화에도 마음이 요동쳤다.
그렇게 엉성하고 서툴렀던 첫 담임 생활을, 간신히 무사히 마쳤다.


한 해의 경험을 품고 맞이한 두 번째 학급.

작년 3월 첫날, 나는 시끌벅적한 교실 문을 열며 눈에 힘을 주고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편안하게 웃으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시작을 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교실문을 열었을 때, 낯선 정적이 나를 맞이했다.
어수선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들 모두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든 시선이 문 앞의 나에게로 향하는 순간, 멈칫했다.
그 시선 속에는 호기심, 경계심, 그리고 왠지 모를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 아닌 이 낯선 고요 속에서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 첫발을 내디뎠다.


그동안 나는 11번의 담임을 해왔다.
매번 교실 풍경은 달랐지만, 두 번째 담임이었던 그 해는 아직도 유독 또렷하게 남아 있다.

40명 가까운 학생이 있었지만, 교실은 언제나 질서 있었다.
비속어나 욕설 한마디 들리지 않았고, 친구들 간의 다툼도 없었다.


어느 날엔 전날 나눠준 유인물의 동의서를 회수하려 교실 조례를 들어갔는데, 이미 반장이 번호순으로 정리해 교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동의서를 집에 놔두고 오거나, 부모님 서명을 흉내 내어 제출하는 일이 흔했다.

아이들의 서류가 모두 모이기까지는 늘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동의서를 모두 가져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반장의 센스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이들은 늘 밝았다.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터졌고, 말투와 행동엔 예의가 배어 있었다.
작은 일에도 내게 묻고, 상담을 요청하고, 편지로 마음을 표현했다.
또박또박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을 때면 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내 자리 위에 투명한 일회용 비닐봉지에 담긴 빵이 올려져 있었다.

비닐에 붙어 있는 작은 메모지에는 또박또박한 글씨로 '실습 시간에 만든 빵이에요. 맛있게 드세요'라는 따뜻한 문장과 함께, 예쁘게 그려진 하트 하나가 붙어 있었다.

갓 구운 따뜻한 빵을 얼마나 정성껏 만들었을지 느껴졌고, 그 마음에 감동했다.

식빵, 소보루, 마들렌.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가며 빵을 내 자리 위에 올려놓았고, 그해 나는 유난히 빵이 맛있었고, 참 많이도 먹었다.


퇴근을 앞둔 늦은 오후, 의자 옆 바닥에 놓인 커다란 비닐봉지가 눈에 띄었다.

들여다보니 흙이 묻은 배추와 무가 담겨 있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의아해하던 그때, 종례 후 청소 지도를 하던 내게 여학생이 다가왔다.

"선생님, 배추랑 무 보셨어요? 제가 선생님 자리에 갖다 놓았어요."

노작 동아리에서 직접 기른 것이라며, 수확이 잘 되어 가져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학생의 얼굴에는 수확의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마음을 받았다.

흙이 묻은 채소들은 작은 손으로 키워낸 노력과 정성, 그리고 학생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우리 반 아이들 덕분에 매 순간이 따스하고 행복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과 진심이 담긴 행동을 마주할 때마다, 뿌리가 되어준 부모님들께 감사했다.

이토록 예쁘고 멋지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키워주신 부모님들이 존경스러웠다.

아마 지금처럼 가을빛이 물들던 10월쯤이었을 것이다.
학교 뒤편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 나는 '도토리 줍기 벌칙'을 만들었다.

- 수업시간에 자리 바꾸면 도토리 10개,
- 숙제를 안 해오면 20개,
- 수업과 상관없는 말을 하면 30개,
- 복도에서 뛰면 50개,
- 지각하면 100개.


상수리나무는 아이들이 도토리를 줍기에 충분한 양을 떨어뜨려 주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도토리 주워와!" 하고 말했지만, 얼굴에는 자꾸 웃음이 삐져나왔다.
아이들은 기운 없이 "네" 하고 대답하면서도, 함께 가는 친구보다 한 발이라도 먼저 도토리를 주우러 뛰어나갔다.

그런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다시 소리쳤다.
"뛰면 도토리 추가한다!"

그러자 학생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번만 봐주세요! 금방 주워올게요!"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 아이들은 교무실로 와서 주워온 도토리를 바구니에 담으며 또 한 마디씩 한다.

"선생님, 이 도토리는 왜 이렇게 커요?"
"이거 보세요, 이 도토리는 길쭉해요!"
"얘가 제 도토리 가져갔어요. 혼내주세요!"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들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다급히 교무실 문을 열고 말했다.
"선생님, 도토리가 없어요. 어떡해요?"

도토리 떨어지는 철이 지나, 아이들이 아무리 찾아도 주울 도토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도토리를 까자!"

그 후로 점심시간마다 아이들은 교무실에 모여 도토리를 까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나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늘어나, 어느새 도토리를 까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 이거 왜 이렇게 안 까져요?"
"우리 할머니는 돌로 까시던데요?"

사실, 나는 그때 도토리를 어떻게 까야하는지도 몰랐다.
무작정 껍질을 벗기라고만 했을 뿐,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셈이었다.

도토리를 햇볕에 말리면 껍질이 살짝 벌어지고, 그때 돌로 톡톡 두드리면 쩍 하고 갈라진다.
손톱으로 살짝 벌려 까면 되는 걸 그땐 몰랐다. 미안했다.


"선생님, 도토리 다 까면 뭐해요?"
"묵을 쑤어야지."
"진짜요? 이 도토리로 도토리묵 해요?"
"그럼, 묵 좋아해?"
"간장 찍어 먹으면 맛있어요."

"우리도 맛있게 해서 먹어보자!"

도토리 까는 법조차 모르는 나는, 당연히 도토리묵을 쑬 줄도 몰랐다.

엄마를 믿을 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도토리를 먹을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도토리가 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매년 부모님은 도토리를 직접 말리고 빻아 가루를 내어 묵을 쑤셨는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겨울 초입, 추운 어느 날.
엄마가 쑤어주신 도토리묵을 학급 인원 모두가 먹을 만큼 챙겨 교실로 들어갔다.
"얘들아, 드디어 도토리묵이 완성됐어!”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우리는 그날, 도토리묵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옥상 위에서 도토리가 햇볕을 쬐고 있다.
며칠째 엄마와 함께 도토리를 까며 그때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예쁘고 순수했던, 도토리를 닮은 그 해의 아이들이 문득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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