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의 무게

by 눙디

소중한 인연이 되어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내오고 있는 선생님이 있다.
우리는 나이도 다르고 과목도 다르며, 성향과 가치관, 심지어 풍기는 분위기조차 달랐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계약직 교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공통점이 하나뿐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고, 배려했고, 마음을 쏟아 정성을 다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했고, 슬플 때는 함께 눈물을 흘렸으며, 화가 치밀면 마치 내일 일인 양 크게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계약직 교사는 고용 형태의 특성상 정해진 기간 동안만 교사 신분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계약 기간은 한 달일 수도, 몇 달일 수도, 한 학기나 일 년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계약직 교사들이 1년 단위 계약을 선호하는 편이고, 때로는 계약이 연장되어 몇 년을 한 학교에서 일하기도 한다.

나는 그때 몇 달의 경력밖에 없었고, 선생님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들어와 첫 학교에서 근무하던 참이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였기에 서로를 많이 의지하며 지냈던 것 같다.


채용은 보통 2월경에 공고가 나고 그때부터 새로운 근무지를 이야기하곤 한다.

어느 해, 한 해 동안 사립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밀려왔다.

나는 사립학교에 대해 어느 정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립학교가 그렇진 않겠지만,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접했기에 선생님이 혹시 힘든 경험을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사립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즐겁고, 불편함 없이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니 내 마음은 한결 놓였다.




그해 12월,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내년 자리가 한 자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채용 결정은 윗분들의 몫이었지만, 나는 자연스레 앞으로의 근무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에 동 교과 계약직 교사가 3명이었기 때문에 한 자리만 기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2월 공립학교의 공고가 나오기 전부터 교육청 채용 게시판을 자주 확인했고, 사립학교 공고가 꽤 일찍 그리고 많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립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 선생님을 떠올리며, 내 편견을 깨 보자는 마음으로 1차 원서 접수를 했다.

2차 면접을 보고 며칠 뒤에 합격 소식을 받았다.

교감 선생님은 내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자리가 한 자리밖에 없어 고민이 컸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해줘 고맙다고도 하셨다.




2월 마지막 주, 새 학교에서 새 학기를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첫 출근 날 나는 부서와 학급을 배정받고 교직원회의와 협의회에 참석하며 새 학기를 준비했다.
새 학교에 들어설 때마다 찾아오는 긴장감은 늘 극에 달한다.

그런데 그 긴장감은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기존 교사들의 얼굴에도 긴장과 경직이 배어 있었고, 교직원회의에서 서로 말을 하지 않은 채 굳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숨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자연스러움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어색했고, 그 어색함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누구도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이 어디예요?'

'출근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아요?'

'전 근무학교는 어디였어요?'

이와 같은 사소한 질문조차 없었다.


점심시간에도 밥 같이 먹자는 말 한마디 들리지 않았다.

새 학기 준비 기간에는 같은 과목이나 같은 학년 담임선생님들이 모여 점심을 하는데, 그 관습조차 이곳에는 없었다.

교무실에 홀로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다른 계약직 선생님이 같이 점심을 먹자 제안해 준 것이 고마웠다.

그분도 작년에 왔을 때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계약직 교사는 손님처럼 여겨지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닫고 주어진 자리에서 일에 몰두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은 학생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초반에는 계약직 교사들끼리 어울리는 자리가 있었지만, 대화 속에 교사들의 험담이 끊이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됐든 뒷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했고, 마치 에너지가 조금씩 고갈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을 건드린 선생님이 한 분 있었다.

나이가 많은 ○○선생님은 나를 자주 챙겨주셨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좋은 시간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선생님을 마주쳤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이 새로 오는 선생님들에게 잘해주시는데, 처음엔 좋다가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거리를 두세요. 정신적으로 아픈 분이라 약도 드시고 계시거든요.”
그 말은 매몰차고, 무례했고, 불편했다.

그분이 여과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귀에 들어올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얘기는 내게 할 말은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어투로 말해 더 이상의 대화를 막았다.


그 후로 △△선생님은 나에게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마주칠 때면 애써 웃으며 말을 걸고, 사소한 일도 칭찬하며, 이유 없이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그 태도는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근무 첫날 알게 된 계약직 남선생님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냈다.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고, 조용하고 성실해 보였다.

경력이 많지 않았지만, 주어진 업무를 해내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신중을 기해 일처리를 하셨다.

△△선생님은 남선생님의 부장이었고, 성격이 급한 △△선생님은 남선생님을 답답하게 여기는 언행을 수시로 일삼기도 했다.


내가 직접 목격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남선생님 옆에 서서 △△선생님이 이렇게 외치는 것을 들었다.
"생각 좀 해요! 생각을 좀 해! 머리는 쓰라고 달려있는 거예요."

한숨을 크게 쉬며 면박을 주었고, 타박하는 말이 여러 날 반복되었다.

무언가 부족해 보였던 점이 있다면 가르쳐주면 되는 일이다.

오히려 감싸주어야 할 위치였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건, 그런 상황을 보고 들으면서도 아무도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교무실에는 몇 년 뒤 정년을 맞을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선뜻 나서서 쓴소리 하시는 분은 계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오랫동안 △△선생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아 익숙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 점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어느 날, 남선생님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중 여러 번 깊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숙였다.

"요즘 많이 힘들다"라고, 때때로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나는 무척 놀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어제,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부장님이 오셔서 '학생들에게 그렇게 알려주면 어떻게 하냐'라고 윽박지르면서 한심하게 쳐다보는데, 그 눈길에서 모멸감과 자괴감이 밀려오더라고요. 더군다나 학생들도 보고 있던 상황이라 견디기 힘들었어요."라고 이야기하면서 속상하고, 잠도 오지 않아 술을 마시고 간신히 잠을 잤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부장님께 전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남선생님은 그러지 않았다.

이후 남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작은 일에도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가 근무했던 사립학교의 분위기 속에도 존경심이 느껴지는 능력 있고, 훌륭한 선생님들은 계셨다.

누가 보아도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슈퍼맨' 같은 분도 계셨고, 스쳐 지나가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분도 있었으며, 필요할 때 도움을 아끼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다만, 일부 △△선생님 같은 태도가 모여 사립학교의 이미지를 흐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본인의 언행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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