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문을 연 자전거 가게

이태원 사고 희생자 ○○를 기억하며

by 눙디

새로 옮긴 학교에서 처음으로 고3 담임을 맡게 되었다.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 결정에 담임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었다.

그 해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수를 통해 나 자신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해였다.


3월 초, 처음 진행한 상담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이야기만 나누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6월이 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조금씩 구체적인 방향을 잡기 시작했고, 나는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모아 학생들에게 제공했다.

그 무렵부터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시기까지도,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 반 부반장 ○○도 있었다.

○○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친절했으며, 말할 때는 예의를 갖췄고, 사소한 규칙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성적도 우수했고, 항상 출석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채로 여러 번 상담을 시도했지만, ○○는 그때마다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라고만 말했다.
여름방학 직전, 마지막 상담 때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방학 보내고 와서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2학기가 시작된 첫날, 여름 햇빛에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를 보게 되었다.
오후에 따로 상담 시간을 잡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학 동안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피부가 검게 그을린 모습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힘들지 않았어?"라고 묻자, ○○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진짜 재미있었고, 즐거웠어요! 희열을 느꼈어요."

그 말속에는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고, 전보다 훨씬 당당하고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진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순간, ○○가 먼저 진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저 진로 정했어요."
"정말? 어떻게?"
"저, 자전거 샵 운영할 거예요."
"자전거 샵?"
"자전거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제 가게를 내보고 싶어요."

성급한 생각이 아닌지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작은 가게라도 사업이니까, 경영을 알아야 하잖아. 차라리 경영학과에 진학해 보는 건 어때?"
"대학교는 가고 싶지 않아요."

"혹시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어? 부모님은 뭐라고 하셔?"
"네, 부모님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어요."

그 뒤 나는 부모님과도 통화했다.
부모님 역시 ○○의 뜻을 존중해주고 싶다고 하셨고, 진로 상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다시 마주한 ○○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몸에 문신을 하고 온 것이다.

의외였지만, 곧 성인이 될 나이였기에 따로 말하지 않고, 아프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해보고 싶어서 했어요.”

그렇게 해맑게 웃으며 ○○는 졸업을 했다.


졸업 후에는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히 돈을 모았다.
1년에 한 번은 꼭 연락을 해 왔다.

"걱정 많이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 잘 지내고 있어요."

기특했고, 든든했다. ○○가 참 믿음직스러웠다.

○○의 성실함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던 ○○가 어느 날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저 꿈이 바뀌었어요."
"그래? 어떻게?"

"저, 세계 일주 해보려고요!"


모아둔 돈으로 세계 일주를 먼저 하고, 그 이후 돈을 더 벌어서 자전거 샵을 열겠다고 했다.

나는 ○○의 선택을 응원했다.
세계를 보며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얼마 후, 낯선 이국의 도시들에서 찍은 ○○의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햇살 아래에서 웃고 있는 그 모습은 참 밝고 멋졌다.


그로부터 몇 해가 더 지난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부고를 받았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 사고 현장에 ○○가 있었던 것이다.

교무실에서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분명히 아는 길이었고,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정신없던 나는 길을 잘못 들어 3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영정사진 속에서도 ○○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울음이 터졌고, ○○의 어머니 손을 잡고 한참을 함께 울었다.


해 본 것보다, 해 보고 싶은 것이 훨씬 많았을 나이.
27살, 그렇게 짧은 생을 마친 우리 ○○.

그곳에서는 부디 누리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마음껏 누리기를.

오늘은 유독 ○○가 많이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그해 봄, 교육실습생과 함께한 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