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수도, 방콕(Bangkok)_10

동네풍경 그리고 낭릉 시장

by 눙디

숙소에서 나와 작은 수로를 따라 여유롭게 걷기 시작했다.

수로 건너편으로 길게 이어진 벽화를 보고 잠시 멈춰 서서 그 풍경을 바라봤다.

화려한 색감의 그림들은 태국 특유의 친근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벽화가 이어져 마치 거대한 화폭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검은색과 황금색의 강렬한 대비로 그려진 그림에서는 도마뱀이 당장이라도 벽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툭툭이 위에 짐과 귀여운 동물들이 가득 쌓여 있는 그림은 복잡해 보이면서도 오히려 사랑스러웠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툭툭이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아닌, 낭만을 가득 싣고 달리는 모습처럼 다가와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원색의 조합으로 그려진 익살스럽고 자유로운 캐릭터들의 향연 앞에서는 넘치는 생기가 전해졌고, 그 유쾌함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예술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수로를 따라 이어진 이 평범한 동네를, 어느새 특별한 갤러리로 완벽하게 탈바꿈시켰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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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깐 스쳐 지나갔던 세븐일레븐에 들러보고 싶었다.

프라나콘(Phra Nakhon) 지역에 위치한 이 편의점은, 그간 봐왔던 편의점들과는 외관부터 사뭇 달랐기에 기왕이면 이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로 했다.

가까이에서 본 건물은 클래식하면서도 이국적인 매력을 풍겼다.

크림색 외벽 덕분인지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이었다.


필요한 이것저것을 고르던 중,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은 터라 '잠시 후면 그칠 스콜이겠지' 생각하며 편의점 안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하지만 빗방울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거세졌다.

이따금 천둥번개가 큰 소리를 내며 여러 차례 울려 퍼졌고, 그때마다 편의점 직원들은 물론, 나처럼 비를 피하고 있던 손님들까지 몸을 한 번씩 움찔거리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밖에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커다란 굉음이 들리자, 편의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 모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봤다.

도로 맞은편 건물의 일부가 붕괴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던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잠시 멈춰 섰고, 행인들 역시 발걸음을 멈춘 채 한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꽤 노후된 건물이었는데, 난간 부분이 번개를 맞은 듯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만약 지나가던 행인을 덮쳤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건물에 살던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은 듯 밖으로 나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잔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나는 그곳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났지만, 마음속에는 꽤 큰 충격이 남았다.

한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날의 일은 낯선 여행지에서의 한순간이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를 오래도록 마음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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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혼 사완 로드(Nakhon Sawan Rd)에 위치한 낭릉 시장(Nang Loeng Market)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1900년 문을 연 이 시장은 꽤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만큼 가족 경영으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상점들이 많고, 그것이 이 시장만의 명물이자 특색처럼 느껴졌다.

특히 전통 디저트인 카놈 투아이, 소고기 국수, 전통 구이를 파는 가게들은 3대째 이어져 온 레시피를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니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사실 나는 재래시장에 갈 때마다, 일명 대나무 통밥이라 불리는 '카오 람(Khao Lam)'을 늘 찾아 헤맨다.

찹쌀에 코코넛 밀크와 설탕 등을 넣어 대나무 통에 구워낸 이 음식은,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맛 사이로 코코넛 향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처음 맛본 이후로는 보이기만 하면 망설임 없이 사 먹게 되는, 나의 최애 음식이다.

하지만 먹고 싶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파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방콕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맛을 그리워하며 결국 맛보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운이 좋아야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귀한 음식이기에, 기대를 안고 시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비교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중앙에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었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분위기였고, 시장은 대부분 먹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끼 식사는 물론 다양한 전통 간식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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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한 봉지를 사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중, 유독 사람들이 몰려 있는 국숫집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그 행렬에 합류해 '바미 끼여우 남(Ba Mee Kiao Nam)'을 주문했다.

만두와 돼지고기가 들어간 에그 누들탕이 나왔고, 음식을 받자마자 고춧가루와 어간장을 더했다.

칼칼한 맛을 더하고 싶었는데, 그 선택은 탁월했다.

한 그릇을 모두 비우고 싶었지만 다른 음식도 맛봐야 했기에, 아쉽게도 면을 반만 먹었다.

정말 남기기 아까운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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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맛본 음식은 '카오 냐오 람야이(Khao Niao Lam Yai)', 즉 용안(Longan) 코코넛 찹쌀밥이었다.

망고 코코넛 찹쌀밥은 익숙하지만, 용안을 고명으로 얹은 모습은 처음이라 호기심에 구매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코코넛 찹쌀밥에 익숙한 용안의 맛이 더해졌을 뿐, 특별히 새롭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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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운 뒤 작은 카페에서 레몬티 한 잔을 사 들고 시장 밖으로 나오던 길, 익숙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카오 람(Khao Lam)'이었다!

식사 전에도 분명 지나쳤던 길인데, 그때는 보이지 않더니 두 번째 시선에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몇 개를 골라 샀다.

대나무를 가르자 그 안에 곱게 채워진 찹쌀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한 입 베어 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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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태국에서 마주하는 뜻밖의 발견과 소소한 행복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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