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획(劃)마다 정성을

by 눙디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니 현관문 앞에 커다란 우체국 택배 박스가 놓여 있었다. 수신인 란에는 우리 집 주소와 아버지의 성함이 정자로 적혀 있었고, 발신인 란에는 아버지의 오랜 벗인 아저씨의 함자와 주소가 쓰여 있었다.


기억 속의 아저씨는 밝은 갈색빛으로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에, 유난히 하얀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분이었다. 아저씨와 꼭 닮은 아들은 어린 내 눈에 외국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저씨에게는 나와 나이가 같은 딸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늘 앞에 '우리'라는 다정한 수식어를 붙이곤 하셨다. 피로에 젖어 타박타박 집으로 들어서던 길이었지만, 택배 상자 위에서 아저씨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 마음 한구석에 온기가 번졌다.


지금이야 택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출력된 송장 스티커를 붙이기만 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보내는 사람이 직접 굵은 펜으로 정보를 적어야 했다. 박스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보다, 그 위에 적힌 글씨가 정말 아저씨의 손 글씨인지가 더 궁금해졌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저씨가 택배 보내셨네? 이 글씨 아저씨가 직접 쓰신 거야?"

"아저씨가 쓰셨겠지. 왜?"

"아니, 글씨가 너무 멋있어서."

"아저씨가 젊은 시절에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리셨잖니."

"아, 맞다. 그러셨지. 그래도 필체가 정말 멋진데?"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보면, 아저씨의 작업장이 어렴풋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국민학교 저학년쯤이었을까. 어느 날 나는 아버지를 따라 아저씨의 일터에 간 적이 있다. 어디론가 가던 길에 잠시 들른 곳이었을 테지만, 그날 아저씨와 어떤 인사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 하나는 분명하다. 한쪽 벽을 압도적으로 채우고 있던, 아버지의 키보다도 훨씬 컸던 나무 합판들. 그 거대한 벽 앞에 위태롭게 기대어 있던 사다리들과 바닥에 흩어져 있던 형형색색의 페인트 통들. 커다란 양동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탁한 물이 담겨 있었고, 난생처음 보는 굵직한 붓부터 빗자루만 한 붓들까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코끝을 찌르던 매캐한 페인트 냄새였다. 그 낯선 풍경 앞에서 나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간판 화가의 일터는 결코 안락한 공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서늘한 작업실에서, 늘 지독한 냄새를 견디며 붓을 휘둘러야 했을 아저씨의 고단함이 이제야 비로소 뒤늦은 온기로 전해진다.


물론 그 거대한 간판이 그림으로만 채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 개봉일 같은 정보들도 어딘가에는 정갈하게 자리 잡아야 했을 테니까. 다양한 굵기의 붓을 쥐고 자간과 행간을 정교하게 계산하며 글씨를 '그려냈을' 것이다. 획이 꺾이는 각도와 삐침의 길이를 세심하게 살피는 그 감각은 얼마나 탁월했을까. 글씨의 획을 조절하는 원리 또한 그림과 다르지 않았을 테니, 아저씨의 필체가 예술적으로 느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치 컴퓨터로 궁서체를 출력해 붙여놓은 듯 완벽했던 그 글씨들. 나는 그 정교한 글씨에 그만 홀딱 반해버렸다. 듣기로는 초보 화백들은 배경을 칠하거나 글씨를 쓰며 기술을 익혔고, 배우의 눈동자에 생기를 불어넣기까지는 수많은 수행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아저씨는 그 찰나의 생동감을 얻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어두운 작업실에서 보내셨을까.


나는 줄곧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동경해 왔다. 정확히 말하면 글씨의 매무새보다는 그 속에 담긴 '선'이 가진 힘을 동경한다. 하얀 여백 위에 획의 무게와 균형을 섬세하게 맞추며 정갈하게 써 내려간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의 단단한 성품과 흔들림 없는 내면의 질서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마지막 한 획을 매듭짓기까지 고르게 호흡을 가다듬는 그 찰나의 태도는,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사실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 서랍 한구석에는 고등학교때 취득한 펜글씨 자격증이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당시 나는 뾰족한 펜촉에 짙은 잉크를 묻혀가며 글씨를 쓰는 연습을 며칠이고 반복하곤 했다. 매번 잉크병에 펜촉을 담갔다 빼내고, 적당한 양의 잉크가 머물도록 조절하는 일은 분명 번거로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잉크가 종이에 닿아 서서히 스며드는 그 감촉과 사각거리는 마찰음이 좋아 그 시간을 이상하리만치 즐겼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민학교 시절 특활 시간에 배웠던 서예가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벼루에 까만 먹을 가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정성스러운 작업이었지만, 그 시간이 귀찮게 느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천천히 먹을 갈며 오늘 쓸 글자의 모양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준비 시간이 좋았다. 교실 안을 가득 채우던 묵직한 먹향은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고, 그 향기 속에서 막힘없이 글씨를 써 내려가던 선생님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선생님의 필체를 닮고 싶어 무수히 많은 날들을 연습했었다. 속도와 효율이 미덕이 된 지금의 세상에서, 잉크를 적시고 먹을 갈며 '쓰기'의 준비를 하던 그 느린 시간들은 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밑줄이 되어주고 있다.


어느덧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탓에 시험장의 풍경은 흐릿한 수채화처럼 남아 있지만, 자격증 시험을 치르던 그날의 긴장감만은 손끝에 선연하다. 정해진 칸 안에 한 획의 오차도 없이 단어와 문장을 정자로 채워 넣고, 이어서 물 흐르듯 유려한 흘림체까지 써 내려가야 했던 시험. 다행히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간 펜촉을 적셔온 시간 덕분인지 나는 단번에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성취감은 독이었을까. 자격증 취득 이후 나는 연습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정직한 정자체보다는, 어른들이 종이 위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써 내려가는 '흘림체'의 멋에 마음을 뺏겨버린 게 화근이었다. 나는 어른들의 필체를 어설프게 흉내 내며 글씨를 갈겨쓰기 시작했다. 펜 끝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채 멋 부리기에만 급급했던 시간들. 그러는 사이 정갈했던 내 글씨는 질서를 잃더니, 어느덧 나조차 통제할 수 없는 '악필'이 되고 말았다.


내가 악필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자각한 건, 몸이 아파 하루 결석했던 친구에게 내 필기 노트를 빌려주었을 때였다.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건넨 노트를 한참 들여다보던 친구가, 이내 당혹감이 서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이거 남들이 못 보게 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적은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글씨가 춤을 춰서 정말 하나도 못 알아보겠어."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그 말은 화살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나는 그저 유려하고 멋진 글씨를 쓰고 있다고 착각해 왔던 것이다. 나만의 멋에 취해 본질을 놓쳐버린 부끄러운 민낯을, 나는 친구의 당황스러운 눈빛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어른으로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지만, 나의 필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오히려 퇴보한 듯하다. 가끔 마음을 다잡고 정성을 들여 써 내려가야 겨우 '봐줄 만한' 수준이 될 뿐, 나만의 고유한 서체에는 좀처럼 진전이 없다. 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노트에 일기를 쓰면서도, 내 손끝은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춤을 추기 일쑤다. 때로는 어둠 속에서 갈겨쓴 메모처럼, 내가 써놓고도 무슨 글자인지 몰라 앞뒤 문맥을 한참이나 살핀 뒤에야 씁쓸한 미소와 함께 글자를 고쳐 쓰는 해프닝을 겪기도 한다.


단순히 급한 성격 탓으로 돌리기엔 마음 한구석이 못내 따끔거린다. 정성이 깃들지 않은 흐트러진 글씨가 못 견디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내 글씨를 누군가에게 혹여 들킬까 봐 서둘러 가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 때면, 나의 내면 또한 이 글씨처럼 어지럽게 엉켜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며칠 전,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펜글씨 교본 한 권을 담았다. 이 책 한 권이, 무너진 나의 선들을 다시 세워줄 새로운 시작의 초석이 되어주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한 획을 그을 때마다 한 번의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 글자로 넘어가기 전 짧은 인내심을 채워 넣으며 오직 그 순간에만 집중해 볼 생각이다. 성급한 마음에 휘둘려 날아가는 글씨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나는 나의 글씨 속에 차곡차곡 담아내고 싶다. 쉼표를 찍듯 천천히, 다시 선을 긋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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