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지우며 떠올린 얼굴

by 눙디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가입해 둔 수많은 사이트들. 그 전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사이트들은 잊을만하면 광고성 정보나 이벤트 소식을 보내며 내가 여전히 '회원'임을 일깨워준다. 덕분에 내 문자함은 무심코 체크했던 '수신 동의'의 결과물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가끔 일과 관련된 분들의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나의 문자 확인은 늘 한 발짝 늦다. 그래서일까. 심심할 때 문자함을 한꺼번에 몰아 확인하는 일은 나름의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마치 도장 깨기 게임을 하듯 쌓인 빨간 숫자들을 지워나가는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쏟아지는 정보성 문자들 사이에 낯선 이름으로 청첩장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링크가 삽입된 문자를 보낸 이는 'K'. 누군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거에 피싱 피해를 겪었던 기억 탓에 선뜻 링크를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그냥 지워버리기엔 왠지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쉽게 떠오르지 않던 기억을 한참이나 붙잡은 끝에야, 비로소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일 년을 근무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다. 작은 키에 마른 체형이셨지만, 늘 단정함이 몸에 배어 있던 분. 올곧은 성품과 온화한 미소로 주변을 따뜻하게 물들이던 그 인품을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을수록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내 기억 속 K 교장 선생님이라면, 과연 내게 이런 청첩을 하셨을까?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주 뵐 일도 없었거니와, 그 후로 단 한 번의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던 내게 그분이 무작정 청첩장을 보내셨을 리 없었다.


만약 그 문자가 정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저장된 연락처 전체에 일괄적으로 전송된 '기계적인 초대'였을 것이다. 차라리 내 이름 석 자라도 언급된 메시지였더라면, 아무리 먼 옛날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그 일 년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기꺼이 축하하는 마음을 보냈을 텐데. 그 짧은 한 줄의 정성만 있었어도, 이 문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때의 따뜻했던 기억이 모르는 이의 무심한 청첩장 하나에 덮여버리는 것 같아 씁쓸함이 밀려왔다. 차라리 내가 기억하는 그분이 아니길, 혹은 그저 동명이인의 실수이길 바라며 조용히 문자를 지웠다. 기억 저편에 머물러 있는 인연은 때론 흐릿한 채로 두는 것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안부조차 가물해진 사이라면, 차라리 닿지 않는 편이 서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부디 내 기억 속의 K 교장 선생님은 여전히 그 시절의 단정하고 온화한 모습 그대로, 어딘가에서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받고 계시기를, 조용히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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