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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Jun 30. 2024

달콤 살벌한 동거

돈에 미쳐서 결혼하는 우리

그는 지출하는 돈을 1원 단위로 관리하고 있었다. 돈의 흐름을 자동이체에 맡기지 않고, 월급날이 되면 신성한 마음으로 1원 한 조각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쪼개고 나누었다. 신용카드가 없는 것은 당연했고, 커피 한 잔 사는 것도 100원 단위로 어디가 더 저렴한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청상추 한 봉다리가 990원에서 1000원으로 올라 시무룩해하던 그였다.)     


그를 만난 이후로 모든 생활 습관을 뜯어고쳤다. 새롭게 설계했다. 쓰고 싶은 돈을 쓰고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금을 먼저 제외하고 난 뒤의 남은 돈을 하고 싶은 데에 쓰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아서 하고 싶은 데에 쓸 수 있는 돈도 넉넉지 않았다.)      


우리 둘의 수입은 어찌 됐건 정말로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럼에도 “총수입의 60%는 투자, 40%는 생활비”를 최우선 순위로 잡았다. 그런 뒤, 생활비(월세, 통신비, 공과금, 교통비)를 나누고, 남은 용돈을 3분할로 나누어 데이트 비용, 나머지는 각자 용돈으로 하기로 했다. 그 결과, 나에게 할당된 용돈은 10년 전 부모님께 받았던 대학생 시절 용돈과 똑같았고, 그 당시에도 용돈이 적어서 자린고비처럼 살았을 정도였다. (`24년 기준 서울 원룸 쪽방 1달 월세보다도 적다.)     


그렇다고 해서 용돈이 적다고 투덜거리지 못했던 것이, 남자친구는 나보다 월급이 적더라도 나보다 더 돈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옷도 줄이고 친구도 끊고 담배도 끊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기준으로 우리 가족은 아직 자산가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맛있는 것들을 골라먹을 나이가 아니라는 말에 동의했다. 좀 더 많이 벌고, 풍족하고, 부유할 때가 되면 분수에 맞추어 사치를 부리겠지만, 우리 둘 다 사치를 부릴 때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는 아직 부자가 아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의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는 대출, 재산, 투자내역을 모두 공유했다. 이제는 우리가 ‘남’이 아니라 ‘한 팀’이기 때문이다. 눈 뜨면 돈 뜯기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둘도 없는 한 팀. 우리는 역할 분담을 나누기로 했다.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둘의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자” 그것이 우리가 앞날을 함께 준비하는 방법이었고, 서로가 바라던 이상었으니까.


우리는 불필요한 친구들까지 몽땅 줄여 철저히 외로운 늑대처럼 살기를 자처했다. 그에게 친구는 자기 자신과 나뿐이었다. 반면, 나는 용돈으로 경조사비까지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나도 자연스럽게 그처럼 외로운 늑대를 자처하게 되었다.


처음엔 고통스러웠다. 웃으며 지냈던 동료들과도 거리를 두어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주 자유롭다. 동료는 동료이지 가족이 아니다. 가-족같은 회사도 족같은 회사라는 걸 명심하고 있다. 인연이란 소중한 것인데, 내가 잘 되어야지 소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격비교를 100원 단위로, 생필품은 무조건 제일 싼 거를 대용량으로 샀다. 하루는 ‘나! 루이보스 티 마시고 싶어!’라고 말했다가 1000개짜리 대용량 티백이 도착해 있었고, ‘날씨가 더워지니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라고 했다가 1kg짜리 대형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서 나를 웅장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몸집만큼이나 짐승 같은 용량만 골랐다.      


우리의 데이트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단연 ‘고기’이다. 신체 건장한 그가 노동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근육 부실한 나에게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자영업 출신의 그에게 보이는 건 품질보다도 "가격"이었다. 고품질의 고기는 당연히 비싸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로지 싼 고기를 찾아 여행을 떠나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만 거래를 하였다. 게다가 그는 100g 단위로 판매되는 부위별 가격을 모조리 기억하곤 지나다니는 가게마다 부위-그람 수-가격-품질을 매섭게 비교했다. 마음에 드는 고기가 보이면 1kg는 거뜬히 사서 들쳐 업고는 모조리 몽땅 소분하여 냉동실로 직행하였다.      


<우리 커플 돈 관리>

1. 결혼 전 계좌잔고, 대출, 재산내역 공개.

2. 결혼 전 수입, 지출, 투자내역 모두 공유.

3. 용돈에 대해서는 노터치.

 *용돈에 경조사 포함.

4. 공통지출 관리.

 *나: 전기, 가스, 인터넷비

 *남친: 현금흐름 전반, 생활비, 데이트비     


보통의 연애에서는 돈을 쓰기만 할 줄 알지 현실적으로 예산을 짜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커플들은 결혼하고 나서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갈라서고. 경제 상식이 부족한 여자가 목소리가 크면 집안이 기울고, 투자 상식이 부족한 남자가 숨기고 다니면 집안이 파산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결혼과 돈은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자 속물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반드시 다루고 넘어가야 한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은

배에 앉아서 경치를 구경하냐,

배에 앉아서 겁나게 노를 젓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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