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의 음악이 전하는 내면의 소리
소통의 문제야말로 평생 맞닥뜨릴 숙제이다. 갈등은 썸, 군대 선후임, 절친, 부모님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한쪽이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으면 이는 더욱 복잡해진다. 자, 그럼 누구의 잘못인가? 솔로몬은 없다. 많은 문제가 소통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발생한다. 가령 평소에 장난을 잘 받아주던 친구가 오늘은 화를 내거나, 잘 보이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 들통나 물의를 빚게 되는 상황 등이 있다. 소통의 문제는 대체로 사소하며, 누적되는 과정에서 결국 폭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정말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천재지변, 교통사고 등이 아니라 위와 같은 경우이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오해를 풀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마 인간이 쉽게 그럴 수 있다면 ‘찌질하다’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수는 혼란스럽다’의 화자는 말과 행동에서 실수를 했지만 사과하기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본인의 의도는 상처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잘못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사안이다. 곡의 화자는 심지어 “날 미워해도 좋아”라고 말한다. 결국 시간이 달궈진 관계를 식혀 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소통의 문제는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 물론 서로가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뒤에 말이다.
남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생일을 맞이하는지 잘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PC방, 방탈출 카페, 술집 등을 전전하는 생일을 보낸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일은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집합할 당위를 만들어주는 계기에 가까워졌다. 생일은 일종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시끄러운 하루가 지나고 나면 이유 모를 허탈감에 빠질 때도 있다. 생일은 즐거운 것들 중 가장 낯선 것이다. 또 그 화려함 만큼 피곤함도 적지 않다.
가사를 꼼꼼하게 듣지 않는다면 민수의 ‘생일 노래’는 흡사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곡 같다. 스스로에게 하는 생일 축하는 굉장히 낯선 그림이다. 자기 위로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일’ 아래서 오고 가는 말들은 오히려 순수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대화체의 가사는 물론이고, 차분한 사운드 또한 소박한 주제의식에 한몫한다. “어디로 가고 싶니”, “무엇을 하고 싶니”와 같은 질문은 욕구 표현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로 소중하다. 우리의 생일을 더 생일답게 만들어주는 건 화려한 파티와 친구들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전자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고, 후자는 ‘너무 상대를 몰라서’ 문제다. 어디서는 “당신은 유일한 존재”라며 그럴듯한 삶의 의미를 던져주지만, 부조리 가득한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격지심과 마주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줄세우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특히 모든 삶의 기준이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한국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남들이 가진 것이 내게 없으면 불안하다. 이런 경향은 트렌드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표준화된다.
민수의 ‘I Like Me’에서는 ‘그대’, ‘너’와 같은 단어가 없다. 화자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한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기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나’는 타인과 같이 탐구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이 점에서 ‘I Like Me’에는 맹목적인 자기애와는 다른 어떤 순수함이 존재한다. 결국 ‘I Like Me’의 주제의식은 자신을 사랑하라는 태도를 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방법까지 자세히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는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방향이 아닌 끊임없는 자아탐색으로부터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