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허블 Oct 02. 2019

엄마랑 패키지, 가? 말아?

패키지라 쓰고, 유격훈련이라 읽는다.

적금 만기가 돌아왔다.

남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는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적금을 든다.

한 달에 십 만원씩, 2년 만기. 금액이 십만 원이 넘으면 부담스러워 유지하기가 힘들고,

이보다 적으면 선뜻 떠나기에 비용이 모자란다.


이렇게 2년 정도 적금을 부으면 이자를 포함 약 246만 원 정도의 돈이 모인다.    

경험상 일본을 포함한 동남아는 일주일 정도면 1인 기준 100만 원, 유럽의 경우는 250만 원 정도면 항공과 숙박, 교통 등 기본 경비를 충당할 수 있다. 물론 2인 1실을 쓰고, 저렴이 항공을 이용할 때의 기준이다. 2년 적금은 열심히 일하고 난 뒤, 돈 걱정 없이 좋은 사람과 해외로 떠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제 슬슬 엄마와의 여행 타임이 돌아온 것이다.     


막상 가려니 일단 여행지부터 걸렸다. 일본은 다녀왔으니 일단 패스. 중국은 여행 인프라가 미덥지 않았고, 대만은 특별하지가 않고, 홍콩은 뭔가 1% 부족했다. 동남아 휴양지는 엄마나 나나 취향이 아니었고, 유럽을 가기엔 시간도 비용도 넉넉지 않았다. 게다가 준비과정 없이 당장 가고 싶었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바로 패! 키! 지!


그래, 평생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국내 굴지의 여행사들은 이미 풀 부킹이었다. 최소한 한 달을 기다려야 두 사람 자리가 났다. 그나마 원하는 시간대도 아니었다. 다행히 그보다 급이 낮은 여행사들 중 온** 여행사에 적당한 상품이 있었다. 4박 6일에 무려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같이 보는 일정이었다.

굵직한 두 여행지 외에도 하노이도 보고, 주변 도시를 세 개나 더 볼 수 있었다.

대체 4박 6일에 어떻게 두 나라를! 어떻게 이런 일정을! 역시 패키지는 마법인 건가?    


며칠 후, 하노이 공항의 더운 바람에 적응할 새 없이 버스에 태워지며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마법은 없었다. 그저 강행군이 있을 뿐.       

이미 하노이까지 5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했지만, 아직 우리에겐 하롱베이까지 4시간의 버스 이동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하롱베이에서 하노이. 하노이에서 씨엠립, 씨엠립에서 다시 국경을 넘어 호찌민까지. 이동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여행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는데 순식간에 몰아친 9시간의 이동으로 인해 엄마와 나는 금세 녹초가 되었다. 호텔이 4성급인지, 5성급인지 깨닫기도 힘들 만큼 컴컴해진 이후에야 호텔에 도착했다.

과연 이 여행, 괜찮을까 싶은 순간, 인상 좋은 가이드 아저씨가 말했다.    


“내일은 6시에 식사하시고, 7시까지 로비에 모여주시면 됩니다."


헐! 몇 시? 사람이라면 양심이 있어야지. 그 꼭두새벽부터 밥이 넘어가냐고요?

그러나 첫날에나 입안이 까끌거렸을 뿐 둘째 날부터는 아침이 미친 듯이 넘어갔다. 당연하지. 새벽 6시에 일어나 호텔은 밤 10시에나 들어오는데, 배가 안고플 리가 있나?    

그렇다. 패키지는 체력전의 연속이었고,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하루에 적어도 5개의 여행지를 돌았고, 중간중간 발마사지니 쇼핑이니 해서 두 세 곳을 더 들렀다.      


이국적인 활기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하노이 시장은 스트릿카를 타고 십 여분 휘리릭 지나가는 게 다였고, 호찌민 박물관은 밖에서만 구경했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는 나중에 돌아와서 책자를 보고서야 알았다.

병아리 눈물만큼 있었던 자유시간도 꼴랑 30분을 넘지 않아 그 맛있다는 베트남 커피도 한잔 제대로 마실 수 없었다.

‘뭔가 해외여행에 한 맺힌 사람이 단 한 번의 기회로 모든 것을 다 보고 말리라!’ 하는 결연한 의지로 만든 상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딱 두 곳 다른 곳이 있긴 했다. 바로 하롱베이와 앙코르 와트. 상품의 이름을 내걸어서인지 두 곳에서는 각각 온전한 하루를 보냈다. 화면으로만 봤던 하롱베이의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앙코르와트의 고대 문명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롱베이의 선상에서 색깔을 규정할 수 없는 바다 사이로 지는 노을과 앙코르와트의 돌 사원을 엄마와 손잡고 걷던 순간은 지금도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음속에 깊게 남아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와봐야 한다더니 그 말이 맞네. 이걸 못 보고 죽었으면 억울했겠다, 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경을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와 함께 보다니.

아마 이 풍경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는 순간에도 사무치게 기억나겠지.    


그러나 그다음은? 글쎄, 딱히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저 빨리빨리, 후딱후딱 이 전부였다.

여행이란 게 뭔가? 평소에 못 보던 것을 보고, 안 했던 것을 하고, 못 먹던 것을 먹는 거 아닌가? 그런데 패키지는 아니었다. 못 보던 것을 보긴 하지만 빨리 봐서 뭐가 뭔지 몰랐고, 안 했던 것은 대충 해서 괜히 여운만 남았으며, 대부분이 한식이라 대체 여기가 종로 한복판인지 베트남 인지도 헷갈렸다.

내가 대체 여행을 온 건지 수련을 온 건지 스멀스멀 불만이 솟아났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여행 사흘째가 되자, 모든 것에 체념이 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마음이 너무 편했다.

몸은 비록 겨울 동계훈련을 온 것처럼 피곤하고, 사지는 솜 짝 같이 무거워도 최소한 다음 일정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됐다. 내가 표를 끊으러 가지도, 줄 서서 기다리지도, 많이 걷지도 않았다. 그냥 욕심만 조금 내려놓으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둘째는 미친 듯한 동남아의 더위였다. 강원도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는 추위에는 강하지만 더위에는 취약하다. 더구나 습하고 눅눅한 동남아의 더위는 그야말로 백전백패다. 패키지에는 그런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버스가 있었다. 한 군데를 보고 덥다 싶으면 얼른 버스로 들어가면 만고 땡이었다. 그야말로 휴대용 에어컨이 붙어 다니는 꼴이었다.     


좋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패키지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되면 밥 먹여 줘, 더우면 버스 태워 줘, 공부 안 해도 설명해줘.

그래, 대충 보고 정 아쉬우면 담 번에 다시 오면 되지. 엄마와도 그렇게 합의를 봤다.        

내가 다른 여행에서처럼 구글지도만 쳐다보지 않으니 엄마와 쳐다볼 시간도 더 많았다.     

그렇게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4박 6일의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자마자 엄마와 나는 기절하듯 잠에 빠져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이틀은 정신을 못 차렸다.    


“엄마, 우리 여행 갔다 온 거 맞지? 근데 왜 난 다리가 이렇게 뻣뻣하지?”

“몸살 약 먹어. 나는 어젯밤에 먹고 잤어.    


누군가 나에게 패키지여행을 다시 가겠냐고 한다면, 대답은 백 퍼센트 “아니요”다.

그러나 가족여행을 간다면, 진지하게 심사숙고해볼 것이다. 여행지가 동남아나 중국이라면 더더욱.    

여행 인프라가 부족하고, 더위나 추위에 취약하고, 시간이 없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이 많다면!

백 프로 패키지가 낫다.

아, 아~무런 생각 없이 돌아다니고 싶을 때도.

그러나 당분간 내 사전에 패키지는 아웃이다.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 패키지여행에서 고려해야 할 것


1. 너무 싼 가격에 속지 마라.

간혹 가격으로 패키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가본 결과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싸다면 다 싼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갔던 상품의 경우도 4박 6일에 50만 원 대의 상상 이하의 가격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하나에 3만 원에서 최대 15만 원 이상 하는 선택 관광이 거의 일정마다 끼어있었다. 거기다 기사팁, 눈치 때문에 하는 쇼핑까지 계산했더니 기본비용만 13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설마 이걸 다 쓰겠어?라고 생각하며 환전해간 150만 원을 다 쓰고 왔다.

차라리 높은 가격의 상품을 골랐으면  항공과 호텔이라도 좋았을 것을.   

부모님을 보내드린다면 나는 비용이 좀 들더라도 노팁, 노옵션 상품을 선택하겠다.

(물론 그것도 아주 노옵션은 아니더라는 주변의 말이 있지만...)     


2. 이왕이면 대형 여행사.

이건 100% 나의 자의적인 의견이다. 막상 내가 중소 여행사 패키지로 가보니 비슷한 일정으로 다니는 대형 여행사와 비교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대형 여행사는 버스도 우리보다 월등히 좋은 데다 전용 식당까지 있었다. 가이드 역시 현지 로컬 여행사가 아닌 본사 직원이었다. 아무래도 기본 서비스 교육이나 유적지 설명들도 다르게 들리더라는 말씀.  왠지 비슷한 돈 주고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막상 그것도 가보면 다르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간다면 이번엔 대형 여행사로 가보겠다.    


3. 되도록 소규모

내가 갔던 패키지는 25명이 정원이었다. 그 25명 안에는 온갖 인생 군상들이 다 있었다. 부부팀, 자매팀, 친구팀, 나 같은 모녀팀. 대부분이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자매팀은 유난히 까탈스러워서 다른 일행들의 기분을 잡치기 일쑤였고, 일정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어 했다. 친구끼리 온 장년의 남자들은 주책스럽기가 말할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음담패설을 던지고, 덥다며 티셔츠를 둘둘 말아 배를 내놓고 다녔다. 같은 한국인인 것도 창피해서 숨고 싶은데, 같은 일행이라니.... 혀를 깨물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덕분에 여행 이틀째부터 분위기가 싸했다. 여행의 반은 함께 간 사람들이 차지한다. 좋은 팀을 만나는 것도 복이다.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라면 소규모 인원이나 단독행사 상품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4. 기타

- 고추장, 김치, 마른반찬을 챙기지 말 것. 

  : 패키지에는 한국인의 입맛을 너무나도 고려한 식단이 기다리고 있다. 깻잎과 장아찌까지 매일 먹을 수 있는데, 최애 템이 있다면 모를까 한식 반찬은 짐이다.

- 비상약보다는 강장제

 : 단체 여행인지라 기본 의약품은 가이드가 이미 다 지니고 있다. 소화제, 두통약 다 필요 없다. 그보다는 강장제가 절실하다. 내 인생에 우루*을 그렇게 매일 먹어보기는. 아, 단 모기약은 유용했다. 호텔에 피워놓을 모기약과 바를 약은 가져가니 좋았다.

- 사탕, 초콜릿은 필수

: 패키지는 시도 때도 없이 당이 떨어진다. 특히 부모님과 간다면 작은 사탕과 초콜릿을 꼭 가방에 넣고 다니자. 현지 과자 사 먹으면 된다고? 뭐 들었어요? 시간이 없다니까. 꼭 사서 가세요.

 아, AB* 초콜릿은 너무 녹더라. 코팅된 초콜릿 추천.

작가의 이전글 타임머신 좀 빌려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