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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허블 Oct 18. 2019

아빠같은 남자는 사절이야!

늙은 남자 DNA

“지금 당신, 나 고아라고 막보는 겨?”    


아빠가 갑자기 밥상머리에서 화를 냈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린가? 고아? 누가? 칠십 먹은 아빠가? 당최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빠가 퇴직을 하고, 귀농을 하고. 치매로 고생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즈음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엄밀하게 고아가 맞긴 맞았다. 그렇다고 해도  손주를 둘이나 본 아빠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 나이에 고아 아닌 사람이 몇 있기나 하고? 그러나 반박할 새도 없이 분기탱천한 아빠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여러모로 진귀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모여서 아빠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아빠 갱년긴가? 아니 노년기 우울증인가?”

“시골에 와서 힘든가 봐.”

“할머니 돌아가시니 아무래도 마음이 그런 거겠지.”    


우리의 탁상공론을 지켜보던 엄마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니 아빠 원래 저래. 성질이 얼마나 팩 하는데. 원래 저밖에 모르고, 지 입만 알아. 고혈압에 당뇨환자가 그렇게 쌀밥 먹고 싶으면 실컷 먹으라 그래. 나 없으면 옷도 못 찾아 입는 인간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아빠가 겨우 잡곡밥 때문에 화를 냈다고? 근데 가만, 아빠가 뭘 못 찾아 입는다고? 들을수록 믿을 수 없는 얘기들뿐이었다. 처음엔 그저 엄마의 말이 악처의 푸념쯤으로 들렸다. 우리 아빠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나의 이상형은 ‘아빠 같은 남자’였다.    

아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지나가는 말로라도 타박을 하거나 곁눈으로라도 흘겨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3, 4학년 땐가 딱 한번, 과도의 칼날을 만지는 내게 입술을 깨물며 “쓰읍”하고 소리를 내며 얼굴을 구긴 게 다였다. 그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서러웠는지 엄마가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때려도 이를 악물고 안 울던 내가 바닥에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 이후로 아빠는 ‘안 된다’는 말도 안 했다. 평생 ‘공부를 하라’ 거나 ‘일찍 일어나라’ 거나, ‘돈을 아껴 써라’라는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아빠가 무한정 다정한 스타일이거나 무조건 참는 사람인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엄마와는 물건을 던지면서 싸우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성격이 있는 엄마는 비싼 브라운관 TV며 선풍기를 번쩍번쩍 들어 던졌는데, 아빠는 기껏 재떨이를 던졌다. 나는 그 짠내 나는 소심함이 귀여웠다.    


내가 손을 베었을때도 아빠는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나에게 물 잔을 들이밀었다.    


“울지 말고 얼른 물 마셔 봐, 얼른!”    


아빠의 재촉에 영문도 모르는 내가 물을 한 모금 넘기자 아빠가 물었다.       


“손가락 봐봐. 물 새? 안새? 안 새면 괜찮은 거야”  


얼마나 진지하게 말했는지 한동안은 농담인 것도 몰랐다. 하지만, 두고두고 그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났고, 다친 친구들에게 말해주면 아파하면서도 웃었다. 


아빠는 명절 때마다 잘 사는 큰사위와 표 나게 차별하는 외할머니에게도 얼굴 한번 구기지 않았다. 외할머니 환갑엔 떡을 한 가마니나 해서 싣고 가서, 체면을 차리며 뒤로 빼는 큰 이모부 보란 듯이 외할머니를 번쩍 업고 잔칫상 주변을 돌았다. 허허실실 거리지만, 한 방이 있는 촌놈. 그게 아빠의 스타일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많이 배운 것도, 날씬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무심한 듯 속 뜨뜻하고, 무던하지만 재미있는 말을 곧잘 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아빠는 그랬다.        


그런 아빠가 칠십먹은 자신을 고아라고 칭하며, 반찬투정을 하다니.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빠는 그동안의 내 생각과는 영 다른 사람이었다.     


아빠는 샤워를 하러 갈 때도 자기 몸만 욕실로 쏙 들어갔다. 갈아입을 속옷이며 겉옷을 챙겨다 문 앞에 놓는 건 엄마의 일이었다. 간혹 속옷을 챙겨주지 않으면 기껏 다 씻고도 땀내 나는 옷을 도로 입었다. 반찬도 한 번 상에 올라왔던 건 두 번 먹는 법이 없었고, 하얀 쌀밥에, 비계가 듬성듬성 들어간 김치찌개, 홍합을 넣은 미역국 등 반찬투정도 구체적이었다.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지난번 마누라는 참 음식을 잘했는데, 그 마누라가 가버렸네”

라며 웃었다. 딴엔 농담이었지만, 그 말에 웃는 건 아빠뿐이었다.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몇 날 며칠 감기로 끙끙 앓고 있는 엄마에게는 기껏

“여보, 나 밥 먹었어. 걱정하지 말어”

라고 했다. 아빠 딴엔 스스로 밥을 찾아먹은 것이 아픈 엄마를 배려한 최선이었던 거다. 최소한 자기 밥을 챙겨주는 수고는 덜어준 거니까. 엄마에게 죽이라도 사 먹여야겠다거나, 하다못해 복숭아 통조림이라도 사다 줄 생각은 아예 못한 채 자기 입만 해결하고, 그걸로 유세를 떨었다.

"여보, 아파도 먹어야지" 하고 권했던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는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빠가 내 기억 속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 아빠 변한 거 맞지? 원래도 저랬으면 엄마가 그 난리를 치고 결혼했을 리가 없잖아. 그치?”

“몰라. 미쳤었나 부지”    


구시렁대면서도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가지를 손질했다. 일부는 잘라서 건조기로 말리고, 일부는 잘라 전을 부쳤다. 찌거나 슬쩍 볶아서 나물만 해 먹는 줄 알았던 가지가 계란물을 입고 따뜻한 전이 되어 나왔다. 불 앞에서 종종거리며 전을 부치는 엄마의 이마엔 땀이 맺혔다.    



“아빠! 엄마가 가지전을 했네. 드셔 봐”    


간장에 가지전을 쿡 찍어먹은 아빠가 말했다.

    

“이 집 간장 잘하네. 간장이 젤 맛있다”    


전을 마저 부치던 엄마는 굳었고,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직 아빠만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하하하... 어린날처럼 아빠의 농담에 소리 내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아~ 님은 갔다. 한라산처럼 드높진 않아도, 뒷산처럼 만만하고, 따뜻했던 아빠는 이제 없다.

그렇게 나는 완벽히 이상형을 수정했다. 아빠 같은 남자에서 아빠 같지 않은 남자로.    


늙은 남자들은 그들만의 DNA가 있는 걸까? 그래서 점점 염치도, 눈치도, 미안함도 사라지고 오롯이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만 남는 걸까?

세상은 인과율로 돌아가고, 모든 결과에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건 아니니 아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픈 곳이 많은 아빠는 몇 년 새 여러 개의 임플란트를 했고, 허리 디스크 시술을 받았고, 현재는 무릎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엄마처럼 자식에게 하소연도 안 한다.

그러다 보니 기댈 곳은 마누라뿐인데, 살뜰하던 마누라도 청춘은 아니다. 할거 해주면서도 퉁퉁거리는 마누라와 그런 지들 엄마만 애달파하는 자식들이 서운할 테지. 혼자서 오래, 자신을 지탱해온 할머니도 안 계시니 가슴 한 쪽엔 구멍도 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지금, 삶의 끝자락에 있다. 그래서 DNA가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정확히는 아니어도 대충은 알겠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키는 ‘위대한 왕국이 몰락하는 것은 그저 그런 공화국이 붕괴되는 것보다 더 서글픈 일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런 공화국의 붕괴가 더 사무친다.    

한때, 나의 이상형이었던 아빠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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