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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Mar 12. 2019

노을

네가 천국에 서 있길 바란 적이 있었다.


고통의 의미마저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이 있다면, 네가 거기서 환하게 웃고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나는 가만 눈을 감고서 붉은 듯 만 듯한 셔츠가 하늘거리게 가벼이 뛰노는 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 깨끗하지는 않은 맨발이라도 너는 어둠보다 더 짙은 풀밭 위에서 행복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입안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씁쓸한 찻물을 실컷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는 붉은 듯 만 듯한 밀밭에 서 있다.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밀들 사이로 천천히 걷고 있지. 제자리서 움직일 듯 움직이지 않는 밀들이 그리 부드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푸른 바지를 입고 검은 신발을 신은 네 두 다리는 어째서인지 편안해 보이질 않는다. 짧은 머리에 드러난 목덜미를 어째서인지 계속 어루만지는 네 손길. 그마저도 가엾다 여기는 것이 죄인 것만 같아 나는 찻물을 더 들이켰다. 씁쓸함이 온몸을 타고 흐르지만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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