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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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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Dec 24. 2015

봄처녀

가벼운 숨소리가 차츰 일정한 박자에 맞춰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숨결에선 햇살의 향기가 나는 것만 같다. 조금은 색이 바랜, 아이의 체구만큼이나 작은 면이불 위에 얹은 손이 이내 도닥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아이의 머리를 한번 조심히 쓰다듬던 여자는 문득 아이의 잠자리 바로 위에 든 볕을 눈치채고 그 위로 손을 내밀어 본다. 마루의 기둥들 사이로 부서지듯 쏟아지는 햇살이 여자의 손 안에 담긴다. 몸이 무거워지며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아찔한 기분을 만끽한다.


4월. 완연한 봄이다.

아이는 겨우내 따뜻한 방 안에도 어김없이 들이닥치는 한기로 인해 잠에 쉬이 들지 못했다. 하지만 요 몇 주 사이 머리를 바닥에 누이는 시늉만 하여도 금세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여자는 작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의 곁을 지나 서너 걸음 남짓 걸어 툇마루에 다시 조용히 걸터앉는다. 뒤돌아 아이를 다시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는 소록소록 잠이 들었다. 여자가 가볍게 안도의 숨을 휴우, 하며 내쉬었다.

다시 앞을 바라본다. 넓지는 않지만 제 나름의 분위기로 예쁜 마당의 한켠에는 크고 작은 빨래가 가지런히 널어져 있다. 이제 막 오후 3시를 지났을까? 그가 도착하기까진 아직 1시간 정도가 남았다. 그리고 아이도 아마 그쯤 눈을 뜰 것이다.


괜히 발목을 교차시켜 다리를 꼬아 앞뒤로 흔들어 본다. 손에 잡히던 햇살은 이제 저에게로 온전히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봄노래를 흥얼거려 보는 것이다. 혹여 아이가 깰까 저의 귓가에만 남도록.


-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4월.

어느 집 툇마루에 완연한 봄이 도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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