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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될 선택에 대하여

<엑스맨 시리즈 리뷰>

by mockingJ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뉴욕의 마천루를 누비며 악으로부터 시민을 구하고, 배트맨은 범죄로 가득한 어둠의 도시 고담에서 불의와 맞선다. 도시는 영웅이 활동하는 무대로써 그들의 개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특정 도시를 무대로 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 집단이 존재하는데 바로 ‘엑스맨’이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와 담을 쌓고 도망자처럼 정처 없이 방황한다. 그렇다면 남다른 초능력을 지닌 이들은 왜 사회로부터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들의 사연을 알기 위해선 엑스맨이 탄생한 1960년대 시대상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출처: Christ, Coffee and Comics

1960년대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화려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이면에선 흑인을 향한 백인의 차별이 심화되고 있었다. 엑스맨은 커져가는 편견과 차별이라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탄생했고 이는 작품을 이루는 핵심 주제가 되었다. 엑스맨의 탄생은 코믹스 시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 기존의 선과 악의 대립이란 1차원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종족의 생존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다루면서 만화 속 이야기가 곧 현실이 된 것이다. 반영된 현실의 이야기는 만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눠진 돌연변이의 두 지도자를 들 수 있다. 두 캐릭터는 흑인 인권 운동의 양대산맥인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를 모델로 삼았으며, 이들의 철학은 캐릭터에 고스란히 담겼다. 인간의 선을 믿으며 희망을 전도하던 마틴 루터 킹의 철학은 프로페서 X에게 차별의 아픔에 분노를 표출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한 말콤 X의 철학은 매그니토에게 반영됐다.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눠 심화되는 돌연변이의 갈등에 인간까지 합류하면서 종족 간의 대결구도는 입체적으로 변모됐다.

울버린.png 출처: syfe wire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2000년 엑스맨 시리즈의 실사화가 이뤄졌다. 감독으로 브라이언 싱어가 선정되면서 제작은 시작부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엑스맨의 핵심 인물인 울버린은 원작에서 키 160cm의 단신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실사에선 키 190cm에 달하는 무명배우 휴 잭맨이 선정되면서 원작 팬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었다. 수많은 비판에도 싱어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기보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차별받는 이들의 서사를 자세히 다루는 것을 선택했다. 사실 그는 유대인이자 게이인 성소수자였고 차별이란 감정에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장대한 엑스맨 시리즈의 서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성공적으로 <엑스맨 2>까지 마무리한 그는 <슈퍼맨 리턴즈>의 제작을 위해 시리즈에서 하차했다. 선구자를 잃은 시리즈는 이후 난항을 겪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조잡해지고 캐릭터들은 순식간에 볼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편견과 차별 속 생존이라는 작품의 주제 의식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방황하던 시리즈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10년 만에 복귀를 선언한다. 복귀 후 제작한 첫 작품인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는 그동안 잊고 있던 주제 의식을 고양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x-men-days-of-future-past-movie-screenshot-city.jpeg 출처: Turn The Right Coner

영화는 적막이 감도는 2023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길었던 인간과 돌연변이의 전쟁은 특권을 지닌 소수 인간 집단의 승리로 끝났다. 기득권으로 부상한 인간들은 무차별적으로 돌연변이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돌연변이를 돕는 인간들에게도 거침없이 폭력을 자행한다. 종을 가리지 않고 탄압하는 기득권의 횡포로 미래는 현재보다 퇴보하고 고장 난 미래를 고치기 위해 울버린은 50년 전 과거로 향한다.

스크린샷 2021-07-01 오후 9.26.03.png 출처: Quora

과거로 돌아간 울버린은 미래를 피폐하게 만든 원흉인 볼리바 트라스크와 맞선다. 원흉이란 말을 사용했지만 그는 이 영화의 악당이 아니다. 하지만 트라스크 박사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전에 개봉한 어떤 시리즈보다 세련돼 있다. 트라스크 박사는 단신 배우 피터 딘클리지가 연기했다. 이 점은 원작과 다른 설정으로 트라스크 박사의 모습은 은연중 관객들이 그의 과거를 상상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트라스크 박사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음에도 남들과 다른 신체로 인해 차별받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차별과 편견 속에 자란 그는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할 방법이 필요했고 다른 종인 돌연변이를 멸종시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감독은 트라스크 박사의 모습으로 차별받았던 한 개인의 삶이 사회에 더 큰 차별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하는 이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출처: Internet Movie Firearms Database

이 질문에 감독은 인간의 선을 믿는 마틴 루터 킹의 철학에 손을 들어준다. ‘미스틱’은 돌연변이를 차별하는 인간의 모습에 분노하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미래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이들이 그녀를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미스틱은 결국 트라스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미래의 운명이 걸린 선택의 순간 미스틱 앞에 나타난 찰스는 그녀의 선을 믿으며 용서와 관용을 부탁한다. 찰스의 설득으로 고심하던 미스틱은 총을 버리고 자신을 혐오하던 모두를 용서하기로 한다. 미스틱에서 관용을 호소하는 찰스의 모습이 다소 전형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차별을 용서하는 것은 분노보다 어려운 법이다. 미스틱이라는 한 개인의 용기가 미래를 바꾸는 모습으로 감독은 영화를 본 모든 이들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재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도시를 연구한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저서 ‘창조경제’에서 진보된 기술력(Technology)은 재능(Talent)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하며, 이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포용성(Tolerance)이 높아야 한다는 3T 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장 앞서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사례로 들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은 물론이고 사회에서 소외받는 성소수자들의 비율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나 도시의 창조•혁신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도시가 재기능을 하고 보다 나아지기 위해선 차별보단 포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는 액션 히어로물이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며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다. 하지만 화려한 볼거리에서 한 발 떨어져 이야기가 담고 있는 철학을 본다면 더 나은 도시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녀야 될 자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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