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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의 갈등

<이지라이더> 리뷰

by mockingJ

“앉아서 일해라!” 매일 아침이면 우리 집에서 들을 수 있는 통상적인 대화의 내용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2021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짓궂게 괴롭히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지만 지금은 잠시 사회와 거리를 두어야만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는 수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된 근무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재택근무’는 과거 일부의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특수한 근무환경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일상이 된 것이다. 독특하게도 일상화된 재택근무 속에선 재미난 현상이 관찰된다. 바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 의견 차이에 의한 갈등이다. 하지만 이 갈등의 원인은 실로 단순하다. 집에서 일하는 자녀는 자신이 편한 자세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부모는 그들의 편한 자세를 지적한다. 지적을 받은 입장에선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편한 자세로 업무를 했을 뿐 업무엔 충실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고 구세대는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신세대의 길잡이를 자처했다. 그들 역할의 당위는 오랜 시간 유지된 시스템을 통해 증명되어 왔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에 기존 시스템은 변화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 마치 60년대 할리우드처럼 말이다.

캡틴 아메리카(와이어트/피터 폰다)와 빌리(데니스 호퍼)는 떠돌이다. 마약을 팔며 큰돈을 챙긴 그들은 멋있게 광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마디그라’를 향해 떠난다. 짧지 않은 길에 다양한 이들과 만남을 가진 그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억울하게 갇힌 그들은 유치장에 있던 조지와 만나게 된다. 같은 처지에도 여유를 부리는 조지는 변호사였지만 입에 술을 달고 다니는 문제가 있었다. 조지의 도움으로 유치장을 벗어난 두 친구는 세련된 직업을 가졌지만 그들과 같은 냄새가 나는 조지에게 동행을 권유한다. 조지 또한 큰 의견 없이 그들과 함께하게 되면서 이들의 마디그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할리우드와 문제아들의 이야기

<이지 라이더>는 몰락하던 할리우드에 새로운 활력이 되었던 아메리카 뉴 시네마 시대의 걸작 중 하나다. 60년대 할리우드는 ‘몰락’이라는 말 외엔 설명할 수 없는 위기에 놓여있었다.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로 스튜디오들은 극장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고 50년대 가정에 보급된 TV는 할리우드를 궁지에 몰리게 만들었다. 사망 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던 할리우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뜻밖에 인물들이었다. 워렌 비티, 데니스 호퍼 할리우드에서 내놓으라 하는 문제아들이 그 주역이었다. 워렌 비티는 여성 편력과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데니스 호퍼는 술과 마약을 일삼는 영화감독으로의 역량이 의심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탄생시킨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는 아메리카 뉴 시네마라는 새 시대를 열었다. 이들은 모호한 선악의 구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으로 이전 시대의 서사를 거부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이 써갔다. 어느 누구 하나 그들이 성공할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는 모두를 열광시켰다.

구세대와 신세대

캡틴 아메리카와 빌리는 자유로운 청년들이다. 비록 마약거래를 통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만 즐기기 위해 마약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영화 마지막에 무덤에서 마약을 복용하고 펼쳐지는 장면이 있다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무덤에서 그들은 즐기듯이 마약에 빠져 수많은 감정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이들이 마약을 복용한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은 마디그라에 도착하기 전 정체불명의 집단에 의해 반격조차 해보지 못하고 친구 조지를 잃었다.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자신을 습격한 이들이 누군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잠시 들린 식당에서 자신들을 욕하던 구시대를 상징하는 터줏대감들이 이유 없는 폭력을 자행한 것이다. 온전한 자신으로서 자유를 만낏하던 캡틴 아메리카로선 구시대의 이유 없는 반발은 견딜 수 없는 수모였다. 결국 그는 도망가기로 결심한다. 마약은 그가 정한 도피처였고 누구보다 미국의 진정한 자유를 믿었던 그의 믿음은 그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빌리에게 그는 말한다. “우리는 실패했어”.

세대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다양한 양상으로 어디서든 발생한다. 하지만 갈등의 작동 원리는 대게 “나 때는”이란 말에서 시작된다. 꼰대의 탄생이다. 꼰대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 많은 고집불통의 이미지가 연상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 모든 사람이 꼰대가 되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인이 나이 순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듯이 꼰대 또한 그럴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은 절대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디그라를 떠난 두 친구는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도로를 달리던 중 빌리는 옆을 지나던 트럭에 의해 총알 세례를 받고 만다. 당황한 와이어트는 그 트럭을 추격하지만 어김없이 그에게도 총알이 박히고 만다. 그들에게 총알을 날린 이는 이들을 전혀 모르는 남이다. 그는 이들에게 강도나 절도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한 행동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용모가 마음에 안 들었다. 혹은 조지의 말처럼 자신들이 느끼지 못한 자유가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이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너무 심하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 저럴 리 없어”. 과연 그럴까? 여기서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빌리와 와이어트를 쏜 이들 또한 그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단지 겁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해한 위협이 죽음이란 결과를 불러왔고 잠시 죄책감에 의해 돌아온 현장에서 그들이 취한 행동은 구하는 것이 아닌 마지막 목격자 또한 없애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행동이 어땠는지 객관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무해하다 주장한 말이 다른 이에겐 죽음만큼이나 큰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시스템은 코로나로 인해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암묵적으로 용인돼왔던 행동들 또한 이 시기를 거쳐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코로나는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줬다. 하지만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이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의 기회는 더 밝은 미래를 약속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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