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던 시간

편리해진 만큼 조용히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

by 온더라키

코드를 짜다 막히면 자연스럽게 AI부터 연다. 예전 같았으면 잠깐 멈추고 구조를 다시 뜯어보거나,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기억을 더듬어봤을 텐데 이제는 그 사이에 이미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있다. 돌아오는 답은 대개 꽤 그럴듯하다. 때로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나은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편하다. 확실히.


활용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예전 같으면 반나절은 걸렸을 작업이 한두 시간 안에 끝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도 한결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졌다는 말이 딱히 과장은 아닌 시대다. 그런데 그 편리함을 실감하면서도, 문득 내 밥벌이는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유튜브를 켜면 AI, SNS를 열어도 AI,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AI다. 작년까지만 해도 AI는 아직이라고 말하던 나 조차도 스트리밍 구독을 끊고 GPT, Claude, Google AI 구독으로 변경해 버렸으니까.

이렇게 하면 더 좋아지고 이걸 쓰면 더 편해진다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말들이 반복될수록 묘한 피로감이 쌓인다. 결국엔 어떤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의 문제일 텐데, 모든 것이 AI로 해결될 것처럼 포장되는 분위기는 조금 과하게 느껴진다.


그걸 알면서도 의존성은 점점 커진다. 조금만 귀찮으면 먼저 AI를 열고, 정리가 덜 된 생각도 일단 던져본다. 그러다 보면 혼자서 끙끙대며 문제를 쪼개보고, 가설을 세워보고, 스스로 반박해 보던 시간들이 슬며시 사라져 간다.


엔지니어에게 그 시간은 꽤 의미 있는 것이었다. 효율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비효율 속에서 쌓이는 감각이라는 게 분명히 있었다. 문제를 이해해 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이기도 했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남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요즘은 그 과정이 많이 생략된다. 결과는 더 빠르고 그럴듯해졌는데, 과정이 사라진 자리에 묘한 빈자리가 남는다.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를 외면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이 속도 속에서 조용히 옅어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건, 가끔은 떠올려도 좋지 않을까.


오늘도 코드를 짜다 막혔다. 습관처럼 AI를 열려다 잠깐 멈춘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조금 더 붙들고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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