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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Dec 11. 2017

나르시시즘, 순결의 자아

비극적 자기애와 미성숙한 자아의 은유

철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곧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이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전부인지도 모른다.
- 띵커벨

*생각 좀 하고 살자는 마음으로 쓰는 철학 매거진


나르시시즘, 자기애(自己愛). 나르시시즘은 성공하지 못한 자아 성장의 은유이다. 인간의 자아가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에 대한 자기 것으로 이루어진 자기만이 아는 자기의 모습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내적으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자기 내적인 요인에 의존해서 성장하는 것만이 아닌 자기 외적인 것들과의 교류를 통한 성장이기도 하다. 나르시시즘은 자기 내면의 미숙한 성장이자 자기 내적 요인에 기댄 불안정한 성장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비극적 자기애
비극은 아름다움으로부터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아름다운 소년이. 아름다워야 신화가 될 수 있었겠지. 비극과 아름다움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만드는 역설을 만들어낸다. 나르키소스가(Narcissos) 호수를 들여다 보고 있다. 가만히. 가만히 있어야 점차 빠져들 수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누군들 아름답지 않을까. 이상적인 비율 하나는 찾아볼 수 있겠지. 그렇게 아주 작은 비율 하나에, 균형에, 질서에 꽂혀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면 기필코 사랑에 빠지리라.


그러나 결코 잡을 수 없는 것. 비친다는 것. 비친 내 모습은 하나의 가상이고, 하나의 거짓이다. 존재하지만 영원히 존재하지 않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내 모습을 비출 때 내 모습이 존재하는 것. 만일 내가 스스로 내 모습을 거두어 갔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내 모습. 그리움은 그 간극에서 태어난다. 결코 잡을 수 없으나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내 눈 앞에 나타나 있는 존재를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하나의 신기루라도, 그것이 절실할 때엔, 한낱 신기루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움은 환상을 낳고
환상은 집착으로 이어져

깊은 그리움이 그리움에 대한 환상을 낳고, 그 환상이 환영을 낳고, 그 환영이 실체를 대신하고, 어느 순간 그 실체를 믿게 되는, 인간의 어리석고도 실존적인 세계에 대한 인식. 그것은 반성적 의식을 버릴 때에 가능하다. 되묻지 않은 채 그저 보이는 대로, 그대로 믿어 버리는 맹목. 눈이 멀어야 자기 앞에 놓인 간극을 뛰어넘어 존재와 존재가 합일되는 경험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오아시스의 신기루가 펼쳐져 있다면, 그때 그곳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모두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자들.


오랜 목마름에, 오랜 기다림에, 지나친 사랑에, 나르키소스는 이별이 없는 곳으로 자기 몸을 던졌고, 그곳에서 피어난 수선화 하나. 나르키소스가 추했더라면 자살을 했을까? 아니, 자기와의 사랑에 빠져들었을까? 수선화처럼 피어나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사랑은 시작될 테니. 자기가 아닌 것도, 자기일 수 없는 것도, 나르키소소스는 이 모두를 부정했고, 오직 '순수하게' 자기 것만을 추구하다 간극 없는 존재의 합일에 몸을 던졌으니, 남은 것은 자기 만족이나 잃은 것은 자기 부정이다.

미성숙한 자아의 은유
나르키소스

인간의 성장은 내가 아닌 것들에 대한 조우이고,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한 인정이며, 타자에게로 향한 의지이자 타자로부터 받은 상처의 치유이다. 내가 나를 만난다는 건, 내가 남을 만나 겪어야 할 불편함, 어려움, 쓰라림, 기다림, 설레임과 같은 갈등과 화해의 순간 뒤에 맛보는 '나'란 존재에 대한 자기 인식이다. 한 줄기 수선화로 피어올라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만질 수 없고 다가갈 수 없을 때이다. 만지고 다가가는 순간 불결해질 테니. 하지만 그 불결함으로 인간은 다시 태어나고 자아는 커 나가기 마련이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지나친 자기애로 인한 인격적 장애로 여겼다.

하지만 장애라 하기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보호 차원에서 일정 부분 나르시시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엄하게 대하는 것처럼, 자기를 사랑하기에 자기에게서 조금 떨어져 자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각을 생각하다 - 바스락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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