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에세이 3
사진으로 만드는 달력, 그리고 그 사진에 얽힌 나의 이야기다.
달력을 만들어온 지 오륙년이 되어간다. 무슨 달력이냐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달력이다. 매년 사진집 만드는 기분으로 제작 중이다.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한 십년 정도 되었다. 폼 좀 잡아보겠단 심정은 아니었다. 당시엔 뭐라도 해야 할 듯 해서 시작했다. 이거라고 해야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은 심정이었지. 오로지 철학 공부만 하고 살아왔던 난 정말 철학 이외엔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이었으니까.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난 학교에선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더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대학원을 나왔을 때 밀어닥친 공허함과 무엇도 할 수 없었던 그 허탈감이란. 학교 밖으로 나와보니 더 그랬다. 마치 인류가 세상에 처음 던져진 것처럼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사진은 그 시간을 달래기 위한 몸부림 중 하나였다. 사진에 대해 뭘 알겠어. 그냥, 뭐라도 해 보자, 그런 마음. 후배가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지 않았다면 이것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엔 도통 아무 관심이 없던 나였기에.
dslr 중고 카메라를 하나 샀다. 사진 장비란 꽤 비싸기에 중고도 싼 건 아니었다.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어 몇 달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논문에만 매달렸던 시기여서 모은 돈도 없었다. 그 남은 것 중 큰 덩어리를 떼어내 카메라란 기기에 투자하였다. 마치 거금을 쓴 것 같은 기분. 중고 거래가 처음이어서 판매자와 직접 만나 현금을 건네며 느꼈던 그 어색함이란. 그땐 그리고 겨울이었지. 차가운 카메라를 받아든 그 낯섬과 함께 밀려오는 서글픔.
아무 감정 없는 기계로 내가 가진 생각과 감성을 담는 일. 사진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처음으로 카메라를 받아든 낯섬 만큼이나 카메라를 들고 찍는 나 스스로가 너무나 어색했다. 혼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다는 게 왜 그리도 이상한지. 모두가 주목하는 무대에서 어설픈 쇼를 펼치는 느낌이랄까. 난 그런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는 순간들을 무척 생소하게 느끼는. 당시엔 몰랐고 어릴 땐 자각하지 못했다. 내가 왜 그러는지. 그저 철학을 공부해서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 그런 거라고만 여겼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깨닫게 되었다. 내가 꽤 예민해서 그랬음을. 내 감정과 생각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이유와 마치 사물을 바라보듯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곰곰이 되돌아보는 까닭은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런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함이었음을. (예민하게 구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걸 알아차린 건 근래에 들어서였다. 취미로 사진을 찍고 그걸 달력으로 만들 땐 몰랐으니까. 어쩌면 사진을 시작하고 달력을 만든 게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깨우는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진을 시작하며 시각예술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서도. 또한 인간에게 세계는 원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나에게 인지되는 그 어떤 형태라는 철학적 물음에 대해서도 더 깊게 사색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난 형편없는 실력일지 몰라도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하고 영상을 만들었다. 이런 예술적 행위와 함께 나의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며 모든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변화는 서서히. 내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다.
삶을 산다는 건 자기를 누군가와 나누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는 일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던져주므로.
그렇게 특별한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 또한 사진이란 취미를 좀 더 오래 지속하기 위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일 년 간의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매년 달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달력 선물이 망설여졌다. 사진도 그리 좋진 않았고 선물로 주기에도 부족한 완성도였으니까. 하지만 나에겐 소중했다. 사진에 담으려 했던 그 무엇이 내가 바라본 세상이었으니까. 달력을 나눠주는 그 누군가에게 나의 세계 일부를 선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런 거창한 의미는 상대방이 아닌 내 마음 속에만 남겨두었다.)
좀 더 오래, 많이, 깊이 있게 사진을 찍어 개인 전시를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전시라 해도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내가 만든 작품으로 내가 아는 사람들을 불러 소소히 진행할 테지만. 그동안 내가 만들어왔던 달력도 전시하고, 사진으로 만든 영상도 상영하며 오래도록 지속해왔던 나의 노력을 스스로 기념하는 정도의 일이겠지. 그래도 재미나지 않은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경축한다는 것은. 2019년의 달력은 언제 만들지 모른다. 분명한 건 ‘아마도’ 만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금은 뜸을 들이고 얼마간은 마뭇거리겠지만 언젠가는 해내는 나이기에.
•띵커벨tv : 2017년 달력을 영상으로
놀며 쉬며 숨쉬며
^엮인 글 : 여행의 기억 2_소매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