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失格
술, 담배, 매춘부, 그것들은 모두 인간을 향한 공포심을 아주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좋은 수단임을 저도 차츰 깨닫게 됐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인간의 자신감과 폭력성을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했지만 겉으로나마 조금씩 타인과 맨 정신으로 인사를, 아니, 아니지요. ... (중략)... 정신이 반쯤 나간 어버버 인사라인사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역시 연마해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곁에 있으면 광대 연기(위선) 따위하지 않고 원래 모습대로 보여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납니다.
"쓰네코"
겨우 훈련한 위선을 이용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게다가 돈이 없는 힘든 현실에 동질감까지 느껴버려 이 여자와 동반자살을 시도합니다.
여자는 죽고 '요조'를 살아남게 됩니다.
(이 부분이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과 비슷하네요. 그 역시 동반자살 시도)
우리도 처음 겪는 세상의 상황에 던져졌을 때 배우는 가식과 위선들이 있습니다.
타인이 사용하는 위선과 그걸 배우는 나 자신있습니다.
이럴 때 자신에 대한 혐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지치는 일상이 반복되었을 때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식과 위선이 필요없으니까요.
주인공 '요조'에게는 '호리키'가 그나마 이런 역할을 하는 친구였을까요?
이 사건 후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가 있는 '시즈코'라는 여자의 집에 얹혀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점점 익숙해진다고 '요조'는 독백을 합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환경에 겁먹고 벌벌 떨던 데서 조금은 해방되어 예전만큼 끝없이 눈치 보는 일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적당히 뻔뻔하게 처신하는 기술을 몸에 익힌 것입니다.
하지만 시즈코와 그녀의 딸이 둘이서 소박하게 행복한 일상을 지내는 것을 보고 도망칩니다.
행복을 기원하면서 말이죠.
이 때 '요조'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도망치게 되었을까요?
이 부분은 두고두고 생각을 더 해봐야할 것 같네요.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요시코'라는 여자를 만나 조금 안정적인 삶을 살려는 순간에 사건이 발생합니다.
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되나요?
이 사건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까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결국 정상적인 인간들에게 완전히 배제되어 '인간실격' 상태가 되고,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30~40년대의 일본.
그렇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주인공 '요조'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을 어디까지 신뢰해야하는가?
나라는 인간은 때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며 대응하는 가식과 위선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그 가식과 위선은 올바른 것인가?
그 위선이 없어야 제대로 된 인간인가?
그러나 그 위선없이 순수하게 인간을 신뢰하면 좋은건가?
순수한 신뢰가 어떻게 상처 받을 수 있는지 소설의 끝부분을 보면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 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허무주의를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것만이 위선을 벗게, 신뢰를 갖게, 서로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기 때문이죠.
'인간실격'이 왜 명작인지 알게 됐습니다.
읽고 나면 별거 아닌데 싶은데요.
소설의 내용과 주인공의 상황이 계속해서 생각이 납니다.
이런 것을 여운이라고 하겠지요.
또 이런 스토리를 짧게 쓰고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소설가(다자이 오사무)에게 감탄합니다.
'소설'을 읽으면 타인 공감 능력이 배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조'를 젊었을 때 만났으면 큰일날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