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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평강 Mar 22. 2023

[바이블클래스] 빅 엿을 날리는 갓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2020년 퇴직금을 몽땅 털어 미국으로 날랐다. 명목상으론 YWAM 국제 예수전도단 DTS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그냥 도망이었다.


미국에 가기 직전 나는 아홉 수라는 게 진짜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팔자 같은 미신을 믿으면 되겠느냐고 혼잣말도 해봤지만, 이 모든 게 아홉 수 때문에 벌어진 것 같았다.

 

믿었던 직장 선배에게 모함을 받아 회사 내에서 나의 평판은 곤두박질쳤고,

얄궂게 괴롭히던 상사와 술로 맞짱 한 번 뜨겠다며 덤볐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두 발목 인대가 절단 났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경찰차도 타봤다. 6개월 간 발목에 간이 깁스를 한 채로 일을 했다. 내 인생의 가장 치욕스러운 날들이었다.


엎친데 덮친다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드라이브를 시켜주고 싶다는 친구 차를 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이 약해져 있던 탓이었는지, 친구는 멀쩡한데, 조수석에 탔던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아팠다.

어디에 어떻게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몰라, 네이버에 검색해서 집에서 가까운 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가족들 조차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2주 동안 시체처럼 누워 울기만 했다. 할머니들의 가래 끓는 소리, 밥 먹고 트림하는 소리 사이에서 내 인생은 대체 왜 이모양인가 해석이 되지 않았다. 고작 29의 나이인데, 인생이 이토록 압도적으로 무거워도 되는 건가?


어느 밤, 차가운 병상 위에서 수액을 맞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내 몸이 헝겊 조각으로 겨우 기워진 것 같다는 생각. 솜도 다 빠지고, 바느질은 엉망인 헝겊인형 같았다. 버티라고 하면 버텼겠지만, 미국으로 도망갈 기회가 있었고. 나는 그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4년 간 나의 청춘을 바쳐 일했던 곳을 떠났다. 애써 쌓아 왔던 모든 커리어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국 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쉽지가 않았다. 도망 오긴 했지만, 도망 온 곳도 천국은 아니었다. 영어가 안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어로 예수를 배우는 건 고역이었다. 듣고 싶은데 들리지 않을 때, 사람의 인내심은 바닥이 난다.


나의 인내심이 바닥날 때쯤 God's  Voice라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배우는 한 주가 시작됐다. 부부 선교사가 진행하는 강의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듣는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어떻게 구별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강의였다.


그 강의에서 나는 처음으로 distortion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왜곡'. 일종의 뒤틀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은 보통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1. 하나님의 생각

2. 마귀가 주는 생각

3. 나의 생각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의 말을 듣는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모태신앙인 나는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 봉사도 게으른 적 없고, 성경 통독도 했고, 십일조도 나름 잘 지켰고, 전도도 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신앙 좋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 나 정도면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정도면...


그런데 distortion이란 단어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 후 내가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부부 선교사가 전해주는 하나님은 내 생각과 다르게 너무 좋은 분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30절) 약속하시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요한복음 13장 1~2절)

자기를 부인하다 못해 저주까지 한 제자 베드로를 용서하신다. 심지어 자기를 부인하고 죄책감에 빠져 넋 놓고 사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숯불에 생선과 떡을 구워주신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라면 요한복음 21장을 읽길 권한다...)


이런 스윗 가이가 예수였다고?

도대체 내가 알던 예수는 누구지?


믿기지가 않아 성경을 펴 읽었다. 친절하고, 스윗한 예수의 이야기가 성경 도처에 깔려있다.

분명 나는 성경 통독도 두 번이나 했다. 하지만 이렇게 젠틀하고 좋은 예수는 처음이었다.


내가 알던 예수는 내게 빅 엿을 선물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종종 예수 믿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예수 믿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니 믿긴 믿지만, 좋지도 않은 예수 믿어서 뭐 하나.


내가 믿음을 유보했던 이유는 예수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 제대로 믿는 순간부터 고난 파티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기도도 하지 않았다. 내게 하나님은 케이크 주세요 하면,  "이거나 먹어라" 하면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엿을 주시는 분이었다.

안 믿는 이들이 보기에도 경박하기 그지없는 나의 생각에 경악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생각은 언제부터 왜곡된 걸까?


왜곡의 시작은 실망이었다. 기도해도 믿지 않는 불신자 아빠, 결국 이혼한 부모, 계속되는 개인의 삶의 실패들 가운데 나는 예수 붙잡고 기도해 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고 믿어버렸다. 하지만 실망이든, 절망이든 왜곡의 본질적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빅 엿을 날리는 하나님이란 왜곡을 갖게 된 것은 '무지'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성경을 몇 장만 들춰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는지 나온다. 신양 성경 도처에 아픈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먹이고, 죽은 자를 살리고, 배신한 자를 용서하는 참 좋은 예수가 나온다.


하지만 난 그 좋은 예수를 아는 데 너무 게을렀다.가짜 뉴스를 믿는 것만큼 무식한 것도 없다. 나는 무식했다. 예수가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남이 말하는 예수를 듣고 그게 진짜 예수라고 생각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빅 엿을 날리는 갓(God)'이라는 경박한 생각을 하며 예수 믿는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세상엔 나처럼 하나님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왜곡 때문에 세상이 하나님을 미워한다. 왜곡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난다.


나 역시 이 왜곡 때문에 예수를 떠나기 직전이었다. 지금도 아찔하다. 아홉 수를 믿고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구나 하는 절망에 머물러 있었다면. 좋은 예수의 복음을 모르고,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가만히 뒀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장 11절


모든 것을 좋으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다시 보는 것. 하나님한테 실망한 당신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여전히 '빅 엿을 날리는 갓' 같은 생각을 한다면 성경을 펴서 읽어보면 된다.

그곳엔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예수가 따듯한 밥을 짓고 있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천국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의 천국에서 예수는 따듯한 밥을 짓고 기다리신다.

베드로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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