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평강 Jun 20. 2023

[바이블클래스] 난 왜 늘 하나님이 어려울까?

'도와주세요!'를 외치는 단순한 믿음 

단순한 믿음, 단순한 기도


오늘은 점심시간에 학교 기도실에 갔다. 몇 주 동안 기도가 잘 나오지 않아 기도를 한참 쉬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무얼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적 전투라는 걸 았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형식적인 기도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그러다 기도실 문이 삐그덕 열리는 소리가 났다. 

꽤나 거구일 것으로 예상되는 남자애가 들어온 것 같았다. 발소리가 크고 무거웠다. 

그 남자애는 거침없이 들어와 거침없이 기도를 쏟아냈다. 


주님! 을 부르더니 기말고사를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처음엔 그 기도가 좀 우습게 느껴졌다. 

'아직 신앙이 어린 친구인가 보네.'


나를 의식했는지 그 남자애가 영어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애는 'Please'를 한 100번 정도 말한 것 같다. 한 문장을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Please를 외쳤다. 기도는 단순했다. Give me, Help me, Your glory 가 반복되는 기도였다. 

그 기말고사에서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끝나자 제자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믿음이 신실한 배우자를 달라고 기도했다. 순간 이런 마음이 들었다. '쟤는 왜 이렇게 당당하게 구하지? 나는 한 문장의 기도를 꺼내기도 어려운데, 쟤 기도는 왜 이렇게 쉽지?' 


내가 한동안 기도를 하지 못했던 것은 기도를 하면 온통 내 필요밖에 구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찔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남자애는 온통 자기의 필요를 구한다. 그것도 절. 박. 하. 게. 또. 당. 당. 하. 게.


나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말이 내 필요를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유익과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를테면 전쟁, 기근, 핍박, 정치 등)을 구하라는 명령으로 들렸다. 그래서 내 필요를 구하지 않았다. 내 필요는 최소한으로 구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옆에서 기도하는 그 남학생은 온통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 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쩐지 하나님이 내 기도는 들으시지 않을 것 같고, 저 남학생의 단순한 기도에만 응답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님, 부탁합니다. 제게 축복을 주시고, 그 축복이 당신의 영광이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간절히 외치는 그의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말고사 하나를 놓고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게 진짜 믿음일까? 기말고사 정도는 나 혼자 힘으로 할 테니 안 도와주셔도 된다고 말하는 게 진짜 믿음일까? 


그 남학생의 기도가 이어졌다. 기말고사, 배우자, 자신의 전공 공부에서의 지혜, 부모님의 건강, 전 세계 국가들의 평안, 자세한 기도의 내용은 다 듣지 못했지만, 확실한 건 기도 제목 하나하나를 절박하게 올렸다는 것이다.


남의 기도 내용을 훔쳐 듣다가 눈물이 터졌다. 

나는 왜 저렇게 단순하게 구하지 못할까? 

난 왜 늘 하나님이 어려울까. 


그 남학생이 기도를 끝내고 떠났다. 

그 학생의 단순한 기도에 내 믿음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이 문제였다. 

나는 나의 세상 부모와 하나님을 똑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물질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자식에게 충분한 공급을 줄 수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눈치가 빠르고 상황을 파악하는 감각이 뛰어났던 나는 필요한 게 있어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요청해야 할 때면 늘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마저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를 깔고 말을 꺼냈다.


그게 습관이 됐던 거다. 내가 화가 난 건, 요청하지 못해 본 자와 아버지를 믿고 당당하게 요청하는 자의 차이였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더라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풍족함을 누려보지 못한 자녀는 소극적인 믿음을 갖는다. 부모를 통해서는 한 번도 만족할 만큼 채워져 본 적이 없기에,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자녀로 받아주신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극성. 이게 정말 싫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체념하는 태도가 싫었다.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구하는 그 단순한 기도가, 

하나님이 내 작은 필요까지도 신경 쓰실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솔직하고 확실한 믿음이 부러웠다. 

자녀가 부모에게 요청한다는 것은 부모를 믿는다는 뜻과 진배없다. 

믿음과 신뢰에 기반한 하나님과의 단단한 관계가 부러웠다.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의 주 되심을 믿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Please! God! 더는 지난 상처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Please! God! 하나님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Please! God! 나의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경험하게 해 주세요. 

Please! God! 당신이 만유의 창조자임을 믿고 모든 것을 믿고 구하게 해 주세요. 

Please! God! 저도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알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 




매거진의 이전글 [바이블클래스] 쉰 밥 같은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