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등학생의 수학여정
로마의 한 호텔, 새벽 5시가 조금 안된시간이었다. 부활절 휴가 가족여행 마지막날이라 머리속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잠을 잔듯 아닌듯 설치고 있었는데 앞 침대에서 자던 큰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앗”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불쑥 내민다.
“Congratulations, J. You’ve been accepted…….”
합격하기 아주 어렵다는 여름방학동안의 6주 수학 캠프에 합격한것이다. 발표날짜를 기억하고 있어서 본인도 시차를 생각하며 기다린것인지, 그냥 나처럼 잠을 설치다 찾아본것인지 알수 없지만, 그 이른시간 결국 가족 모두 깨서 축하를 하고 다시 잠시 누웠다가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큰아이가 과학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전까지는 문과가 적성에 맞는줄 알고 있었다. 우습게도 나는 아이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왔고, 수학이 제일 싫었고 어려웠던 나를 그대로 투영해왔던 것이다. 초등학생때까지는 딱히 공부랄것이 없었기에 글잘쓰고 책 잘읽는 아이를 보며 문과성향의 아이구나 했고, 나름 교육열이 높은 미국동네에 사는 덕분에 중학생때부터는 학교에서 제공되는 가장 빠른 수학과정을 잘 듣는것으로 수학도 잘 따라가는구나 생각했다.
코비드를 겪으며 하릴없이 방황하던 아이는 종이접기에 빠진적이 있었는데, 학이나 별을 접는 수준에서 시작했지만 얼마 후에는 Tessellation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기하학 모형접기를 Elephant hide paper라는 특수종이를 사용해 접는 수준까지 가게되었다. 양가 조부모님께 액자로 선물드릴만큼 꽤 그럴듯한 작품이 몇개 나왔다. Rubik’s cube도 잘 맞추었고 초등학교 졸업할때엔 이 큐브를 맞추는것이 어떤 순열 (permutation)에 의한것인지를 교내 짧은 리서치 이벤트에서 발표하기도 했었다. 이런 놀이(?)가 뭔가 수학과 관련은 있어보였지만 역시 수학에 조예가 없던 나는 막연히 아이가 이것저것 하는구나 생각했다. 막상 수학실력은 다들 잘 알고있는 수학경시대회인 AMC (American Mathematics Competitions) 점수로 가늠하는줄만 알고 있었고, 중학생인 8학년까지 몇번 참여하면서 대단한 성과가 있진 않았던 터라, 역시 수학은 적당히 잘하는 포지션으로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수학경시대회에서 성과가 나온다는 아이들은 이 AMC를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하루 몇시간을 투자하며 준비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아이는 지역의 과학고등학교를 가기원했고, 학교내에서도 아카데미를 나누는데, 순수과학과 수학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과로 진학을 결정했다. 학교내의 수학수업이 4단계로 구분되어있는데, 배치고사를 통해 제일 어려운 수업을 듣게 되었을때도, 엄마인 나는 수업을 한단계 내리길 권했다. 말로만 듣던 중국,인도 수학천재아이들과 경쟁해야할것 같았고, 그렇게 까지 해야할 필요나 경쟁력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나름 동네 엄마들에게 들은 정보에 의해, 2번째 수학레벨에서 A를 받는게 여러모로 대학진학에도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아이는 해보고 결정하겠다며 끝까지 수학레벨을 고수했고, 점수때문에 고민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AMC역시 10학년에는 혼자 공부한 실력으로 엄마가 보기에는 훌륭한 성과를 내었다. 그외에도 학교내 Math team소속으로 여러 대회에 함께 출전하면서 그야말로 수학을 즐기며 실력도 그에 비례해 향상 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번 여름 수학캠프는 이런의미에서 아이 수학적 성취에 방점을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10개의 수학문제를 풀어서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는 정성들여 24페이지의 풀이를 써서 냈다.
수학, 數學, 숫자로 하는 학문인 수학은 본질적으로 철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들 말한다. 수학의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록 인류가 본능적으로 찾아헤매는 “진리”에 가까운 불변의 원리와 규칙에 기반한 학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잘 훈련된 계산력으로 시험문제 하나를 더 잘 푸는것 보다는 자연속의 황금비를 찾아내는 눈이 있는 것이 진짜 학문으로서의 수학과 더 가까운것이라 할 수도 있을까? (그러나 결국 경시대회의 상위권으로 올라갈 실력이 있는 아이들이 황금비의 자연을 미사여구로 표현해내지는 못할지언정 (혹은 표현을 귀찮아 할 지언정) , 그 기본 원리를 이해할 지적능력이 부족할 수는 없다는걸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아이가 수학을 공부하고 진지한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옆에서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부끄럽기도 하다. 수포자라며 수학공부를 그토록 귀찮아했던 내가 대학들어가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하니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소금물과 속도문제들을 제대로 공부했던게 생각이 났다.
당장 눈에 보이는것이 없어도 진지한 자세로, 귀찮고 오늘은 그만하고 싶어도 다시 자리에 앉는것, 그렇게 하나씩 쌓여가는 지식과 지혜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을 아이는 좀 더 일찍 배워가고 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