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도 몰라
[대형마트]
대형마트에 다녀왔다. 창고형 쇼핑몰 답게 카트의 크기부터 달랐는데 이 쇼핑이 끝날 때 우리가 얼마를 쓰게 될 지는 아무도 몰랐을 거다. 일반 마트와는 넓이가 다른 이 카트의 무서움을 계산할 때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원래의 목적은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러가는 것이었다. 고기와 관련된 유튜브 알고리즘에 시달리고 있어서(그만떠라 육식맨!!), 두툼한 고기로 요리하는 상상을 줄곧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기 코너까지의 길이 얼마나 멀고도 험할지 예상이 됐다. 내 눈을 사로잡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먹어봤다가 한국에서 찾을 수 없어 입맛반 다셨던 튀김우동 컵라면, ml 단위로 보면 값이 싼 대용량 섬유유연제, 일반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스테이크 시즈닝과 크기별로 묶어 파는 후라이팬까지...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결국 정육 코너에 도착했을 땐 이미 고기 낄 틈 없이 카트는 가득차 있었다.
[마트에만 있는 것]
슬프지만 요샌 마트에 오는 일이 드물다.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온라인으로 사는 일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시에 유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내겐 마트가 도서관 만큼이나 흥미로운 장소였다. 도서관의 ㄱ,ㄴ,ㄷ를 찾아다니는 일처럼 모든 분류별 진열대를 돌면서 새로운 물건을 만나는 게 좋았다. 이 물건은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상상하면서... 필요한 물건은 파 한 단인데 파 한 단을 사려면 마트 전체를 돌아야하는 나를 키우며 엄마는 좀 피곤했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신난 나를 보며 '앉아있을 게 다녀와~' 하는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장날이면 할머니 손 잡고 시장에 가던 내가, 마트에서 길을 잃고 엉엉 울던 내가 이젠 인터넷으로 모든 걸 해결하고 있다. 편하다. 하지만 여기엔 김치말이 국수도 없고 김과자도 없어서 뭔가 심심하다. 마트 내 소음의 주범이었던 수산 코너의 아저씨도 곧 못 보게 될 것이고 카트에 몸을 싣고 달리는 일은 더더욱 없어지겠지.
스무 살 무렵, 아는 향신료라고는 바질 밖에 없었던 내가 로즈마리와 파슬리를 사들고 돌아오게 되는 일. 마트에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내가 무언갈 새롭게 좋아할 수 있게, 넓은 취향을 가질 수 있게 인도해주던 마트가 곧 사라질거라 생각하니 무척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