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든 덕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커뮤니티이다. 덕후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덕질 전투력을 상승시킬 온라인 공간 말이다. 처음에는 팬 카페와 갤러리를 들락날락했다. 방송에서 잘 나온 사진을 캡처해 주르륵 올려놓거나 지난 회차에 PD가 일명 ‘악마의 편집’을 한 부분을 지적한 글, 다음 회차를 예상해보는 내용 등이 수도 없이 올라와 있었다. 스크롤을 내려가며 하나하나 곱씹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읽는 속도가 업로드 속도를 따라잡는 시점이 오고야 말았다.
가끔 들어가 보던 트위터를 접속해본 것은 그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뭐라도 나오겠지 싶어 트위터에 검색했다가 새로운 세계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팬 카페가 동네 마트라면 트위터는 코스트코였다. 최애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올라왔다. 졸업식이나 수학여행 등 학창 시절의 사진부터 연습생 전에 사용한 SNS의 흔적, 지인이 밝히는 최애의 TMI(학교매점 음료수 픽, 봉구스 취향 같은…)나 공공장소에서의 목격담 등 알아 두어도 딱히 쓸모없는데도 자꾸 알고 싶은 각종 정보가 차곡차곡 업데이트되었다. 당시 프듀의 인기를 반영하듯 엄청난 수의 '사생팬'(사생활을 쫓아다니는 극성팬)이 있었는데 트위터만 검색해보면 지금 최애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름이나 프듀라는 키워드로 거의 모든 걸 찾아본 뒤에는 ‘써방’을 알게 되었다. ‘서치(search) 방지’의 약자로, 키워드를 교묘하게 바꾸어서 게시물이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써방은 트위터 내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다. 트위터에는 온갖 팬덤이 공존하고 다른 아이돌의 팬뿐 아니라 아이돌 본인도 검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써방 키워드를 알게 되면 각종 ‘카더라’ 통신을 비롯해 욕설, 비방, 공작 등 어둠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실명을 쓸 경우 자칫 명예훼손과 같은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기에 써방은 평화로운 덕질 생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써방의 용도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나중에 설명하겠다)
써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팬덤은 ‘연검(연관 검색어) 정화’에 나선다. 트위터에 아이돌의 이름을 검색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본 단어가 함께 뜨는데, 안티 팬이나 타 팬덤은 이를 아이돌의 악성 루머를 유포하는데 이용한다. 그러면 팬들은 입덕 포인트가 될만한 단어를 조직적으로 업로드해 새로운 연검으로 덮어버리는 식이다. 연검 정화는 팬과 안티 팬, 혹은 경쟁 관계인 팬덤 사이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팬들에게는 아이돌의 이미지가 달린 사안인지라 민감하게 반응하며 죽기 살기로 연검 정화에 매달린다. 안티 팬도 이에 질세라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양측 다 이만저만 짜증 나는 일이 아닌 이 소모적인 전쟁은, 시시때때로 어느 판에서나 벌어지며 당사자 외엔 딱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연검 정화가 다량으로 업로드되면 트위터 ‘실트(실시간 트렌드)’에 노출되는데, 이를 해당 아이돌이 무슨 문제를 일으켰다고 오인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트위터는 집단 지성의 장이기도 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특성상 프듀의 가장 큰 적은 스포일러였다. 팬들이 관람객으로 입장하는 경연 대회는 카메라, 핸드폰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었고 심지어 기록을 할 수 있는 필기구 지참도 불가했다. 프듀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어떻게든 찍으려는 팬과 이를 막으려는 제작진 사이에 엄청난 신경전이 벌어졌다. 3차 경연은 특히 소지품 검사가 집요했다고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3차 경연의 현장 사진은 프듀의 희귀 품목이 되었다.
그런데 이에 굴하지 않고 팬들은 경연이 끝나자마자 기억이 증발하기 전에 트위터에 의상과 헤어 스타일 등을 아주 자세히 적었고 또 누군가는 그림을 그려서 올리기 시작했다. 스케치 같이 슥슥 그린 그림에는 채색과 디테일이 더해졌다. 거기에 또 다른 누군가 사진을 합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이미지는 실제 경연 모습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과정을 트위터를 통해 지켜보며 기계 문명 이전 시대에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는가를 목도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참고로, 팬들은 절치부심한 듯 마지막 4차 경연에는 현장 사진은 물론 영상까지 잔뜩 찍어 올리는 데 성공한다.)
트위터가 덕후의 놀이터가 되면서 어떤 단어를 넣어도 아이돌이 무조건 연관 검색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에이 설마, 싶다면 한번 해보시라. 아이돌 덕후의 무지막지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될 것이다.) 막강한 커뮤니티로 급성장한 트위터에는 급기야 아이돌 ‘홈마’도 하나 둘 둥지를 옮겨오게 된다. 아이돌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홈마스터’를 뜻하던 이 말은 트위터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홈마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아이돌의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는 ‘찍덕’, 아이돌이 나온 영상 콘텐츠의 일부를 편집하거나 gif 파일로 만들어 올리는 ‘영상러’와 ‘움짤러’, 아이돌을 그리거나 글로 쓰는 ‘연성러’가 있다. 이중 일반적으로 ‘홈마’하면 떠올리는 건 찍덕이다.
찍덕은 아이돌의 콘서트, 음악방송, 팬 사인회, 해외 공연 등 각종 스케줄을 따라다니면서 고화질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 개인 계정에 올리는 팬이다. 초창기에는 카메라를 잘 다루는 열혈 팬 정도로 취급받던 홈마는 고도의 전문성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어느새 K 아이돌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홈마 없는 아이돌 덕질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능력 있는 홈마가 그 판에 있냐 없냐에 따라 덕질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홈마는 촬영뿐 아니라 보정과 편집의 금손이기도 하다. 수백 번의 리터치와 색감 보정을 거친 사진은 아이돌의 가장 완벽한 순간을 재현한다. 홈마마다 사진 셀렉부터 선호하는 색감이나 보정 정도, 크롭 포인트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같은 날 같은 앵글의 사진이라도 보는 맛이 다르다. 무대의 직캠 영상은 갈수록 고퀄이 되고 있다. 과거 음악방송에 없던 개인 직캠을 홈마가 찍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면, 이제는 같은 날 여러 각도, 혹은 다른 날 같은 각도에서 촬영한 것을 합치거나 고급 편집기술이 동원된 ‘작품’을 내놓는다.
홈마는 최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난다. 방송국 출퇴근길, 공항 출입국 시, 예능이나 광고 야외 촬영 장소 등 첩보원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정보력으로 발휘한다. (일명 ‘공출목’은 사생활의 영역이니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나는 숙소나 소속사 앞에서 기다리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는 주의다. 실제 소속사에서 경고하는 경우도 이 정도 선인데, 굳이 덕후가 나서서 소비를 지양하는 건 좀 오버다.) 홈마가 거의 실시간으로 프리뷰를 올리기 때문에 최애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데, 마침 우리 동네에 온다는 걸 알고 먼발치에서나 볼까 싶어 나가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처음 홈마를 보고 두 가지에 놀랐다. 일단은 그들이 너무 어려 보여서, 그리고 현장이 너무 격렬해서이다. 10대의 소녀들이 큼지막한 DSLR를 연사로 촬영하며 한 순간이라도 놓칠세라 따라붙었다. 그러면 아이돌을 둘러싼 경호원이나 매니저가 길을 트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힘을 쓰며 막아섰다. 아마도 홈마에겐 일상일 것 같은 이런 상황이 못내 씁쓸했다. 이렇게까지 자기를 다 내던지는 취미생활이 또 있을까 싶다.
트위터에서는 홈마가 판매하는 포토북, 포토카드, 캘린더, 키홀더 등의 굿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속사의 공식 굿즈 수준이거나 종종 그보다 더 낫다. 인기 홈마의 경우는 전시회나 상영회를 열기도 한다. 이를 두고 홈마가 아이돌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말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홈마가 덕질을 위해 쓰는 비용은 얼추 계산해봐도 1년에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을 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 종일 대기 타는 인건비와 초고가의 카메라, 렌즈 등의 장비 비용은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같은 덕후들이 자신이 올린 사진이나 영상을 좋아해 주고 간혹 최애가 자기를 알아봐 주는 정도를 기대하며 돈과 열정과 시간을 갈아 넣는 홈마는 아이돌 덕질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이돌 홈마가 정말 돈벌이가 된다면 대치동에 홈마 학원이 생겼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홈마가 아이돌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거나 심지어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일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는데, 대개 ‘카더라’ 통신인 데다가 사실이더라도 극히 예외적이다.)
탈덕한 홈마는 아이돌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홈마가 개인 사정으로 덕질을 그만두는 거라면 ‘close’ 또는 'rest'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지만, 아이돌이 문제를 일으켜 탈덕을 당한 경우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보정 사진을 다 풀어버리기도 한다. 해당 아이돌의 무보정과 보정 사진을 비교해보며, 여러 의미로 홈마의 위대함을 거듭 확인했다.
현재 아이돌 덕후들에게 트위터는 광장이자 시장이자 전장이다.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이면서 위키백과이고 당근 마켓이고 배틀그라운드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하고 모든 말이 오가고 모든 세계가 이루어진다. 실시간으로 최애 관련 소식을 가장 빨리 들을 수 있고 최애의 사진이나 그림, 동영상, 짤 등을 구할 수 있고 최애에 대한 주접을 함께 떨 동지를 만날 수 있다.
트위터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아이돌 덕질에 심취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