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
작년에 읽었던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그 해 손에 꼽을 만큼 좋았던 독서였다. [그 개와 혁명]의 예소연 작가나 [리틀 프라이드]의 서장원 작가를 알게 된 기쁨은 물론이거니와 김기태, 문지혁 작가의 새로운 발견이기도 했다. 해서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집어들었다. 3월의 첫날 읽기 시작해 중순에 이르기까지 거의 2주 동안 - 개인적인 독서 습관에 반해서는 - 꽤 오래, 차근차근 읽었다. 책의 인상 깊은 구절들도 그렇지만 수상 작가와 평론가의 대담까지도 필사할 만큼 멈춰섰던 부분이 많았던 까닭이다.
올해의 대상은 위수정 작가의 [눈과 돌멩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두 친구, 재한과 유미는 함께 어울렸던 수진의 유해를 뿌려주기 위해 일본 나고야로 떠난다. 일종의 로드 트립을 그린 이 작품은 조용한 듯 다가와 생각할 거리를 잔뜩 안겨주고 떠난다. 재한과 유미의 여정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도카쿠시의 신사, 눈이 무섭도록 쌓인 삼나무 숲 속이다. 일본 여행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나지만 작품 속 오쿠샤 신사는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은 가까운 친구를 잃은 인물들이 같이 여행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고, 그렇다면 결국 애도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인생의 어느 지점부터는 삶 자체가 애도의 여정이 되지 않을까, 이 친구들도 또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p. 103)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계, 타인, 결국에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되는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어요. 손에 쥐는 순간 녹아버리는 눈처럼 '무엇 하나 정확하게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인식이 이 소설에서 중요했습니다." (p.104)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지점은 모든 작품 후에 '작가와의 대담'이 실려있다는 것이었다. 반복 학습을 하는 것처럼 방금 읽은 소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모든 작품을 꼭꼭 씹어먹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각각의 작품, 작가와 한결 더 가까워지는 경험이라고 하겠다.
위수정 작가의 대담 내용 중 일부를 위에 발췌해두었는데, 그 중에서도 '무엇 하나 정확하게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내용이 특히 마음을 잡아끌었다. 이 표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치 불교 교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눈과 돌멩이]도, 자선 대표작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도 그 '움켜쥘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움켜쥐려 하지 않는가. 그게 젊음이든 사랑이든 가족이든 생명이든 간에.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들 모든 것은 언젠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다만 움켜쥘 수 있는 것은 당장 손에 잡히는 단단한 돌멩이일 뿐이다. 위수정 작가의 두 작품과 대담을 읽으며 작가는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탐구를 선행하는 이들이라 생각했다. 결국은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과 통찰, 사유가 있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지난해 젊은작가상 작품집을 읽으면서도 모든 수상자가 여성 작가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이상문학상 역시 그렇다. 성별로 구분지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에겐 여성 작가들의 글이 좀 더 와닿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관종들], [실패담 크루],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의 모든 여성 화자에게서 나의 면모를 발견한다. 본인의 일도 아닌 문제에 유별나게 관심을 가져 손가락질 당하는 '정해'와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맴돌고만 있는 '주변', 본인이 속한 세계의 변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는 '노아'까지. 모두가 자신만의 결점 혹은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감이 가고 응원해주고 싶은 인물들이다.
"페이스트리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겹겹이 쌓인 레이어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그 층과 층 사이에는 틈(들)이 있습니다. 아주 얇고 미세한 틈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쉽게 넘을 수 없지요. 위층으로 올라가기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사회의 계층구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말씀하신 대로 페이스트리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부스러기가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떨어져 나온 그 부스러기들을 보면서, 구조 안에 속한 보통 사람의 실패가 얼마나 쉽게 개인의 몫으로 치환되는지, 또 얼마나 파편화되는지 생각했습니다." (p. 287)
"크루라는 형식의 모임이 제게는 새로운 공동체나 연대라기보다 혼자와 혼자들의 일시적인 결합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각자의 필요에 의해 잠시 접속했다가 다시 흩어진다는 측면에서요. 단일한 목표나 대의를 공유하지 않고, 러닝이나 독서 등 구체적인 목적 외에는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 듯 했습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적대적이지는 않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p. 288)
위에 인용한 두 문단은 [실패담 크루]의 정이현 작가와의 대담에서 발췌했다. 위수정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 대해 놀랐다면, 정이현 작가의 글을 통해서는 소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 한번이라도 페이스트리를 정치적인 빵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페이스트리의 단면에서 사회적인 구조를 읽어내는 것은 작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녀의 눈을 빌어 일상의 정치성을 바라보고, 그 이야기 속 위계와 모순을 발견하는 것은 불편하지만 분명 필요한 경험이었다. '실패는 현상이 아니라 기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는 문장을 받아적으며 새삼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실감했다.
성혜령 작가의 [대부호]와 이민진 작가의 [겨울의 윤리]를 읽으면서는 '상실'이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대부호] 속 화자가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가방 속 태극기, 같은 말을 떠드는 뉴스들.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그녀의 행동들이 아주 깊은 절망과 상실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비로소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 얼마 전 인상 깊에 본 영화 '햄넷'의 마지막 공연 장면이 겹쳐보였던 것은 왜일까. 뼈저린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는 노력이, 혹은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일까. 어떠한 종류의 상실을 경험했건 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기대어 서 있는' 행위일 것이다.
"이 이야기 속의 '나'와 엄마에게 소설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서로에게 자신의 슬픔을 내보이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지속되지 않더라도 존재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으니까요." (p.204)
지난 주말 공주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계룡산의 '갑사'를 방문했다. 백제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오래되고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평화로운 갑사를 돌아보며 무심코 [겨울의 윤리]의 주인공 해진을 떠올렸다. 해진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사실은 이상한 것을 보고 이상한 것을 듣는다는 이유로 백양암이라는 사찰에 맡겨진다. 봄의 갑사를 겨울의 백양암이라 상상하며 여기에 아무 연고도 없이 혼자 남겨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했다. 두려움, 무력감, 그 무엇보다 상실감이 아닐지. 그런 의미로 해진은 거의 모든 것을 상실한 인물이다. 끝끝내 본인의 이름인 해진마저 잃어버린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상실은 용감하다.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자의로'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잃은 그녀가 다시 겨울의 백양암에서 눈을 뜨지 않기를, 영원한 겨울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응원하게 된다.
다시 위수정 작가의 대담 속 문장들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보시라. 우리에겐 분명 문학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견고하고 안온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세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는 이들. 사실 그런 이들의 세계가 저는 조금 끔찍하게 느껴져요. 말하자면, 문학이 없는 세계겠지요. 문학이 필요 없는 세계가 아니라,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라는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