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타이 은퇴 소감문
치앙마이는 무에타이를 배우는 사람들의 성지다. 무에타이 경기도 거의 매일 열릴뿐더러 무에타이를 가르치는 체육관도 많다. 그리고 무에타이 수업은 원데이 클래스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입문자에게도 열려있다. 몇 해 전에도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다. 미트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것은 호연지기를 길러주었을뿐더러 쾌감도 주었다. 다시 치앙마이에 왔으니 과거의 경험이 그리워졌다. 저번에는 가볍게 들어 본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무에타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곳에 원데이 클래스를 호기롭게 신청했다. 잘 맞으면 남아있는 기간 동안 또 해봐야지 생각하면서.
9시에 체육관으로 가니, 몇몇 외국인들이 있었다. 수업은 가벼운 체조로 몸을 푸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할만할 수도 있겠는걸? 준비운동 해놓고 자신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내 세상은 무너져버렸다. 선생님은 준비운동이 끝나자 다짜고짜 5분 동안 줄넘기를 시켜서다. 이것이 무에타이를 배우는 첫 번째 난관이었는데, 순전히 내가 줄넘기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열 번 뛸 때마다 한 번씩 줄에 걸렸다. 체육관에서는 맨발이어야 해서 줄넘기 줄에 걸릴 때마다 발이 채찍질을 당하는 것 같았다. 발이 얼얼해져서 어떻게 해야 채찍질을 피할까 싶은 마음에 줄 길이를 조절하는 척하며 시간을 조금 때웠다. 줄넘기라니. 요즘 누가 줄넘기를 한단 말인가? 왠지 그 시절 복서 록키가 생각났다. 무에타이를 배우기 전 줄넘기를 하는 것은 무술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헝그리정신을 길러주기 위함일까?
줄넘기 후 플랭크 1분, 푸시업 10개까지가 준비운동이었다. 첫 루틴이 끝났을 때부터 오늘 해야 할 운동은 다한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수강생들의 손에 테이프 같은 것을 감아주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파마머리 청년 선생님이 앉았다. 오른손을 달라고 하더니 감을 때마다 주먹을 쥐어봐라 펴봐라 하며 테이프를 정성껏 감아주었다. 내가 테이핑을 하고도 주먹을 잘 쥘 수 있도록 그는 신경 쓰고 있었다. 마치 깁스를 해주는 의사 선생님같이 믿음직스러웠다. 세심한 고객 서비스에 감동의 바다에 빠지는 것 같았다. 감동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왼손은 이미 테이프가 투박하게 감겨있었다.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옆에 계셨던 한국인 여자분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아 보여요.”
선생님들은 글러브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나는 미국 국기가 그려진 글러브를 받았다. 무에아메리카가 아닌데 성조기 글러브라니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 글러브를 끼며 깨달아버렸다. 글러브를 견디는 것, 그것이 무에타이를 배우는 것의 두 번째 난관이라고. 글러브에서 발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발 아니 글러브 속에 억지로 손을 끼워 넣었다. 글러브 안에 일단 손을 넣어 놓기만 하면 냄새를 맡아야 할 일은 없다. 그리고 후각은 가장 빨리 마비된다고들 하지 않던가.
여하튼 두 번째 난관까지 견디어냈으니 기본 동작을 배워야 한다. 선생님은 왼손으로 잽, 오른손 펀치, 오른손팔꿈치로 때리기, 오른발 니킥, 오른발 발차기를 알려줬다. 무에타이 선생님들은 영어를 못하고 나는 태국어를 못한다. 이렇듯 의사소통의 한계가 있어 그들이 보여주는 자세를 눈치껏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수강생을 한 명씩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나도 그들처럼 멋있게 발차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폼이 나오지 않았다. 엉성하게 주먹질을 하고 발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린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를 외쳤다. 선생님의 집요한 지도와 나의 처절한 몸 개그에 지쳐갈 무렵 누군가가 감사하게도 이제 물마실 시간이라고 물을 마시라고 했다. 물을 마시려면 글러브를 벗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휴식은 달콤한 것이니 글러브를 벗을 때 나는 발냄새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찰나의 휴식 끝에 선생님이 초심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샌드백을 프리스타일로 치라고 했다. 선생님께 네? 저 오늘 처음 왔는데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 바로 샌드백을 치기 시작했다. 잽, 펀치, 팔꿈치, 니킥, 발차기. 그런데 모양새가 좀 이상했다. 샌드백을 치고 있는 내가 종이인형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분명히 힘을 모아 샌드백을 강하게 친 것 같았다. 다만 내가 친 것은 허공이고 후에 샌드백이 친 것은 나였다. 내 옆을 흘낏 봤다. 처음 왔다던 서양인 친구는 샌드백을 야무지게 두들겨 패고 있었다. 그녀는 눈빛조차 달라져 있었다. 아, 이것이 재능의 벽이란 말인가.
선생님들은 초심자들이 프리스타일로 샌드백을 때릴 동안 숙련된 학생들을 봐주고 있었다. 그 학생들은 선생님이 들고 있는 미트를 사정없이 발로 차고 주먹질을 했다. 그들은 덩치가 좋은 서양인이었는데 비교적 왜소한 태국인 선생님들의 모습이 마음 아파질 정도였다. 서양인들이 발차기를 할 때마다 미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선생님들은 수강생의 발차기에 뒤로 조금씩 밀려났다. 아무리 보호장비가 있다고 해도 많이 아플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더!라고 외치는 선생님들의 눈이 슬퍼 보였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동방예의지국출신으로서 선생님을 저렇게 때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다부지게 때릴 능력이 없기도 하다.
개인레슨-1분 휴식-프리스타일의 무한 반복인 1시간 30분이 끝이 났다. 집이 그리워졌다. 얼마나 시간이 가지 않던지 영원의 굴레에 갇힌 것 같았다. 선생님은 마지막 정리운동으로 점프하면서 샌드백을 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점프하면서 종이 인형처럼 나부끼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글러브를 벗었다. 손에서 나는 꼬랑내에 취하는 듯했다. 손이 발이 된다는 건 무에타이 수업 때문에 생긴 말일까.
수업 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에타이 수업으로 얻은 것은 무엇 일지를. 불쾌한 냄새와 낮아진 자신감, 이 두 가지를 얻었구나! 하지만 그 두 가지로 이 험란한 세상 무엇을 한단 말인가? 강해지고 싶어 들은 무에타이 수업인데 이제 무뢰한을 만나도 자신감 없이 손가락 냄새를 맡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무에타이 수업 2회 만에 이 세계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에타이 체험기여야 했던 이 글이 무에타이 은퇴 소감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