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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미래를 향한 기억

월간 옥이네 2021년 12월호(VOL.54) 여는 글

농촌에서는 흔히 학교를 공동체의 중심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학생도, 주민도 많지 않은 농촌에서 학교는 여러 모로 마을과 가까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많아지면서 더 그렇기도 하지요.


옥이네에서도 작은 학교나 마을교육공동체 이야기를 자주 다루다 보니 종종 학교가 가진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현재처럼 학교가 작아지기 전 운동장이나 교실 모습, 당시 학교를 가득 채웠을 어린이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어땠을 지를요. 더불어 공동체 안에서 함께했을 풍경을요.


안타깝게도 학교의 옛 이야기를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학교에 대한 지역사회의 기억을 기록해두는 일은 물론, 학교 안에서 생산되는 각종 기록물도 제대로 보전되거나 활용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우리 사회가 기록물 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데다, 관리책임자가 4-5년 주기로 바뀌는 학교 특성상 이는 더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고요.


그래서 현재를 사는 이들이 참여한 기록이 중요합니다. 오늘 학교에서 이루어진 활동과 학생들의 모습을 비롯해 현재 교육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록 말입니다. 과거의 기록은 잃고 잊었다 해도, 현재의 기억이 기록된다면 그 자체로 미래를 위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옥이네가 이번 호에서 찾아본 100년이 지난 옥천의 다섯 학교와 이 학교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기억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를 위한 기록’을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학교 안에 머무르는 기록이 아닌, 지역사회가 함께 향유할 공동체의 기억 자원으로 남을 방법을요.


기억과 기록의 중요성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유족으로 구성된 4·16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기억여행’, 2021 옥천여성영화제 상영작 ‘학교 가는 길’, ‘우리는 매일매일’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끊임없이 잊고 마는,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농촌의 어려움과 토종씨앗을 지켜온 여성 농민, 묵묵히 지역에서의 삶을 일궈온 주민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삶의 토대도 없었을 이야기들이지요. 이를 기록하고 기억함으로써 내가 선 자리를 살펴보고 우리의 공동체를 돌아보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길 위에서 옥이네가 해야 할 일을 다짐해보기도 합니다.


거센 비바람이 함께하는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곳에 따라 눈 소식도 있을 텐데, 옥천은 새벽부터 빗소리가 창을 두드립니다. 11월의 장대비, 이 역시 우리 앞에 닥친 위기의 신호이겠지요. 이 와중에 그간 등장했던 변이바이러스의 몇 배는 더 치명적이라는 ‘오미크론’에 코로나19 상황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 모두 불평등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임을 함께 기억하는 2021년의 마지막 달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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