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에서 끝없이 달려야 하는 우리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엘리스가 붉은 여왕과 함께 나무 아래서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레드퀸은 앨리스의 옆에서 똑같은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앨리스는 아무리 힘껏 달려도 제자리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앞서가려는 상대에 맞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주체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는 것, 이것이 바로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이다. 아픈 것은 청춘이고 자기 계발이 취업준비인 우리 사회의 거대한 레드퀸은 우리에게 계속 달리길 요구한다.
대한민국에는 이상적 삶의 모델이 분명히 존재한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인서울 명문대에 들어가고, 이름 있는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공무원, 교사 등의 안정적 직장을 갖고, 적정 나이에 결혼하고, 주식과 부동산 등으로 자금을 훌륭하게 관리하는 등의 아주 많은 조건을 충족시켜야 우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
수강 중인 사회학 수업에서 여러 논문을 읽으면서 많이 언급된 사회문제의 원인은 고성장 시대에 맞춰진 우리의 사고체계와 현재와의 괴리였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우리 사회는 웬만큼 해서는 고성장 시대의 역동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 일하는 만큼 모두가 보상받기에는 너무 작은 파이를 두고 극심히 경쟁 중인 것이다.
모두가 고통 받는 이 지나친 '경쟁', 어디서부터 손대면 좋을까?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부터 지나친 경쟁을 배우지 않도록 모두가 자제하면 될까?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과열된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행학습을 중지하기로 온 국민이 약속한다면? 간단한 문제이지만 분명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을 단숨에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주요 지표 간 상호 연관성을 조사한 연구를 본 적이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병원과 학원이 밀집되어 있고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역에서 명문대 진학률이 높게 나타났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고 많은 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는 강남 8 학군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강남 8 학군’ 부모들의 행복도는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보통 사회적 계층이 높고 많은 자본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것을 가지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닌 듯하다.
우리는 인서울 명문대에 들어갈 만한 점수를 얻기 위해,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경쟁하고, 성형외과 광고에 실린 얼굴과 비슷해지기 위해 수술을 감행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획일적 레드퀸을 쫓아가는 것을 이젠 멈추어야 한다.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가르쳐야 한다. 저마다 다른 가치 기준을 두고 살아가도 괜찮다고. 현재의 경쟁 시스템 하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것이며, 끝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을 부족하다 느낄 것이다.
나는 바란다. 경쟁의 끝에 우리의 행복이 있을 거라 부추겨온 욕망의 거짓됨을 알아차리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하나의 레드퀸에 따라가도록 부추기는 사회가 아닌 개인만의 레드퀸이 저마다 존재하는, 그리고 그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