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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걷는 사람들 Feb 22. 2019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16 [민주경희 기고글-2019년 3월]

아래의 글은 경희대학교 총 민주동문회 동문회보 '민주경희'에 2019년 3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처음 학부 때는 사학을 전공했지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사회심리학 전공)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그와 관련된 일을 해왔네요. 경희대 총 민주동문회 사무국에서 제게 '심리학으로 바라본 세상'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 말씀해주셔서 2017년 11월부터 2019년 3월인 현재까지 매달 기고하는 중입니다. 이 글을 원고에 약간 수정을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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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쯤 배우 유해진 씨가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한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유해진 씨는 2015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모델상을 받았고, 광고 카피는 꽤 유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일매일 일상의 피곤함에 찌들어 번아웃(burn-out) 상태인 현대인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기에 광고 역시 인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어떻게 하든 되겠지’라며 미루는 습관적인 행동을 심리학에서는 꾸물거림(procrastination)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꾸물거리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꽤 많습니다. 특히, 영유아나 청소년기 자녀를 두신 학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만한 행동입니다.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준비하느라 재촉하는 경우나, 숙제를 미루고 게임을 하느라 정신 팔린 아이들을 혼내 본 부모님들이라면 이 꾸물거림이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입니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행동들이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아래는 꾸물거림의 정도를 체크하는 체크리스트입니다.

꾸물거림 체크리스트

*출처 :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

0~5점 : 미루는 습관이 없다. 

6~10점 : 이미 한 번쯤은 해야 할 일을 미룬 적이 있다. 

11~15점 : 꾸물거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16~20점 : 이미 미루는 것이 습관처럼 된 상태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로 한번 돌아가 볼까요? 한 달 전에 보고서의 제출 마감 시간을 공지하였는데도 차일피일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미루다가 제출 마감시한을 넘겨서 제출한 경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연체를 한 경험. 바로 내일 기말고사가 코앞인데 밤을 새운다고 하면서 잠깐 자다가 TV도 보고, 간식도 먹고 그러다가 정작 공부를 하나도 못하고 시험을 친 경험. 아침 일찍 수업은 귀찮아서 과감히 빠지는 경험 등…

저 역시 매번 원고 마감시한을 넘겨 동문회 사무국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한 번도 안 해보신 분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다 보니 이런저런 일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 일을 해내지 못할 때의 두려움이 커서 아예 시작 자체를 미룬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꾸물거림이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입니다. 한번 꾸물거리게 되면 만성적으로 습관이 형성되며, 꾸물거리게 됨으로써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경우, 자신에 대한 원망이나 멸시 등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연구에서는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 또한 높다고 합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 보면 성인의 약 20% 정도가 꾸물거림을 만성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정해진 계획에 맞추어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는 꾸물거림이 어느 정도 적당히 필요한 일이겠지만, 만성적으로 꾸물거림이 일상화된 사람에게는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꾸물거리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결국 자신에게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꾸물거림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자들은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꾸물거리는 사람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흘려보내며, 실패할 경우에 구체적인 플랜 B를 수립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경우에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는 드물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하게 되는 후회가 더 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둘째, 결과에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처음부터 꼼꼼히 한다는 생각보다는 나중에 언제라도 부족한 부분은 보완한다고 생각해봅니다. 보고서든 업무든 처음부터 오류가 없는 완벽한 형태로 시작하기보다는, 큰 틀을 먼저 생각해보고, 이후에 부족한 부분은 수정하고 보완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게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변명과 핑계를 중단하고 일의 실패가 나의 존재론적 실패가 아님을 인식합니다. 꾸물거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닌 외부의 환경이나 상황에 외부귀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존감을 고양시키기 위한 자기 고양 편파(self-serving bias)를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꾸물거리는 사람은 과도하게 남 탓을 하고, 꾸물거리다가 실패할 경우에도 자괴감이나 자존감의 하락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나'라는 존재의 문제가 아닌 '나의 꾸물거리는 태도와 업무 혹은 일'에 국한한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보면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예상시간을 적어보고, 실제 소요시간을 측정해서 비교하는 습관을 길러봅니다. 두 시간 사이의 간격을 좁힘으로써 비현실적인 낙관론을 극복하는 시도를 해봅니다. 꾸물거리는 사람은 실제 소요되는 시간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소요시간을 과도하게 적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즉, 비현실적인 낙관론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죠. 따라서 작은 단위의 시간계획을 세워보고 그때마다 소요되는 시간을 기록하고 그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해보면 꾸물거림을 극복하는,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신년에 혹은 설 명절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올해의 계획을 세우실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올해는 꾸물거리지 말고, 작은 일부터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는 2019년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


*참고문헌

2019년 한국코칭심리학회 동계학술대회 자료집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

2016년 2월 11일 자 일요신문


**이미지 출처

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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