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가족이 되었다. 01

결혼 부부생활 _ '나의 삶'이지만 내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by 누리달


몇 년 전 이야기.

몇 달 만에 가게를 접은 이후.



결혼하고 10년이 넘었고, 우리에게는 은행의 것인 작은 집 한 채 겨우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수입이 없었으니 우리의 경제생활은 엉망이었는데.. 한 달은 보험이나 카드에서 대출을 받아서 넘기고, 다음 달에는 시댁에서 빌려서 갚는 일이 반복되었다.


삼 남매 중 막내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기였으니 현실적으로 보자면 나라도 일을 해서 조금이라도 수입이 있어야 함이 옳았으나, 그와 함께 한 10년의 시간 동안 난 우울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화가 많은 시기였기에..


내가 일을 하고 퇴근해서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봐야 하는 상황을 상상하면 그와 이혼을 하고 싶어 질 것만 같았다. (그는 집안일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을 핑계로 나는 무섭고 살벌한 일터로 나가는 것을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되던 때였으니까.



그렇게 그가 시댁에서 돈을 빌리는 일이 반복되자, 시어머님은 계속 함께 살자고 권유하셨다. 대출이자와 공과금, 최소한의 식비 정도는 해결이 되지 않겠느냐. 그럼 앞으로의 수입에서 돈을 좀 모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집만 같이 쓸 뿐이지 생활은 완전히 따로 하면 되니까"






시댁은 단지는 컸지만 아주 오래된 30평 아파트였다. 거실과 베란다가 넓고 방이 좁은.


당시 나답지 않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거절을 했었다. 거절을 할 때마다 시어머님은 서운해하셨다. '시어머니'라서 그런 것이냐며. 각자 생활에 터치하지 않으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언제까지 돈을 매달 보내 줄 수도 없고. 니들은 해결할 능력도 생각도 없으니."


거절을 하는 상황도 서운함을 듣는 상황도 나에게는 버거웠고 힘들었는데, 끊임없이 우리의 무능력함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생기는 좌절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저 듣고 넘기지 못하는 내 단단하지 못 한 마음이 문제였겠지만.







나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님 역시 예민하신 스타일이었고, 딱히 일을 하시는 것도 아니셨다.


예민한 내 친정아버지와도 어린 시절부터 같이 사는 것이 숨 막혔는데. 이미 10년 넘게 각자의 생활을 한 지금은 내 친정엄마와 사는 것도 불편한데.


하물며 시댁에서. 매일을 어떻게.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내 가족에게 밥상 차려주는 것도 매번 스트레스인 살림 못 하는 무능력자 주부였고(이미 많은 부분 알고 계셨겠지만), 시부모님과 같이 살지는 않지만 남편에게는 형도 있었기에 가끔은 들를 터였다.


그 이유로 불편하다고 말씀드리면 '지방에 살고 있으니 집으로 올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그것 또한 내 마음을 더 작아지게 했었다.


'나 때문에. 본인 아들도 못 오게 하시려는 건가.'


많은 말씀을 하셨고, 불편한 마음을 가득 안고 최선을 다해서 거절을 하던 중,


시댁 지인분이 보낸 책들이(40평대 집 전체 벽면을 가득 채우던 책이다) 좁은 우리 집을 다 차지하고도 모자라 현관에서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현관 일부를 막고 박스채 쌓여있던 것을 한동안 버티다가 말씀을 드렸다.


"책들 좀 어머님 집으로 보내서 보관해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책 육아를 지향했기에 너무 감사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책 읽히고 다시 보내라고 하던 상황이어서 내 마음대로 버리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 미리 얘기를 하지. 그렇게 결정했구나. 잘했네. 집 정리 좀 해야하니 며칠 뒤에 들어와라"


......


아니요 어머님.

저희 말고, 책이요.






시어머님은 그 이야기를 하기 얼마 전 '빨래 건조기' 가격을 계속 알아보고 계셨다. 시댁 지인분이 최근 새로 구입하셨는데 그렇게 편하고 좋다면서. 하지만 두 분만 지내시는 생활에 건조기까지는 필요 없으셨고 본인도 알고 계셨으며 시아버님도 반대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얘기가 되고 시어머님은 바로 건조기를 계약하셨고, '돈 많이 쓰게 되네...'라는 말씀과 함께 세탁기도 바꾸셨다. (우리 집 세탁기는 공간상의 문제도 있고 오래 쓴 것이라 처분하였다.)


아이가 셋인 나에게 '건조기'는 정말 필요한 제품인 것은 인정하지만, 시어머님이 사고 싶으셨던 건조기는 '나만을 위한 것'이 되었다.


좁은 내 마음에

'부담'이 추가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시간을 보냈고 그에 맞는 결과를 얻었으며 같은 어리석음의 반복이었던 것, 알고 있다. 다만 그때에는 더 이상 못 하겠다 에라 모르겠다 싶기도 했었다.


또 하나,

당시 마침 친정엄마께서 집 한 채가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일단 급한 대로 너희가 들어가면 된다고.


어려운 문제인데.. 당시 친정엄마는 사기를 당하신 것인지 일이 잘 안 풀리신 것인지 잘 모르겠다. 평생 가진 것도 없지만 남의 것도 탐내본 적 없는 내가 그 불투명한 말을 믿고 '조만간 나올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시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만큼 힘들었고, 절망스러웠으며, 무언가 간절했었나 보다.

없는 것도 믿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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