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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Jan 16. 2023

똥 밟았네

가난을 이야기하다 02


얼마 전 '똥 밟았네'라는 노래가 유행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도 나도 그 춤을 따라 추고 동영상을 올리곤 했었고, 우리 집 초등학생 아이도 신나게 그 춤을 따라 하곤 했었기에 나는 반 강제로 집에서도 계속 들어야만 했었다.


아침 먹고. 길을 나서다가 똥 밟았네.


아이들 앞에서 표현은 안 했지만, 그 웃기라고 쓴 듯한 그 가사에 나는 같이 웃을 수 없었다. 그건 우리 집 현실이었으니까.




오래되어 낡은 동네로 이사 왔지만, 집 안에서의 생활은 그리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깔끔 떠는 성격은 아니었고. 평범한 평수였지만 워낙 좁은 공간에서 지냈어서 그런가 대적으로 넓어서 좋았고, 보일러 잘 되어서 따뜻했고.


무엇보다, 오롯이 나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이 조용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일단 모두 다 감사했는데. 집 밖을 나서서 짧은 골목길을 걸으려면 보이는 그놈의 개똥이 문제였다.


그나마 길 가장자리 쪽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어쩌다 한 번씩이면 그저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매일같이 같은 장소에 있는 그것들을 계속 보면서 몇몇 개들이 여기를 화장실로 쓰는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주인 없는 떠돌이 개일까?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매일 이러는 것을 보면 여기 사는 사람의 반려견일 텐데, 반려견이 혼자 나왔던 주인과 같이 나왔던 그러한 행위를 절대 모를 수 없는 일이다. 어쩜 이렇게까지 예의가 없을까 생각도 했다가, 이럴 거면 반려동물을 왜 키우는 건가 싶었다.


어차피 간섭하는 사람 없는 낡은 동네, 이웃 누군가도 그렇게 하니까.라는 생각들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고. 오래된 동네이니까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조만간(그것이 벌써 몇 년 째다) 나갈 동네라지만 여기가 시골 논두렁도 아니고, 어떻게 이러고 싶을까?


락스를 들고 와서 길 옆에 줄줄 뿌려 놓을까?라는 상상도 많이 했지만 결국 나는 아무것도 실행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은 법. 나는 매일 그것을 깨닫는 중이고, 오죽하면 돌아다니는 동네 개들을 볼 때마다 X구녕을 다 막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거의 매일 아침마다 돌아다니면서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을 하시는 노인 분들이 계셔서, 어느 정도 보기 싫은 것들이 매번 치워지긴 하는데.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봐야 할 때마다 현재는 내 상황이나 능력, 위치가 딱 여기이구나 싶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수준을 그대로 마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벌고 모으려 잠도 안 자고 미친 듯이 노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투덜거릴 자격이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어느 시기에는 잠시 짜증이 났다가, 바로 내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그러한 것들은 또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기본 매너는 좀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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