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이야기하다 01
이사할 장소를 찾으면서 낯선 이 동네를 찾은 이유는 재개발 예정 구역이기 때문이었다. 낡고 오래되어서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도 나가는 사람은 있는 동네.
돈 한 푼 없이 전세 집을 찾으려니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와버렸는데, 구석진 곳이라는 표현도 애매한 것이 이 동네는 한 블록만 건너면 대형 아파트 단지와 대형 마트가 있는 곳이었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조금 오래된 고층 아파트 단지가. 한쪽은 낡은 주택들이. 그리고 지금은 한쪽에는 다 더 낡은 것들을 다 허물고 새로운 대형 아파트 단지가 생겨서 엄청 낡음과 새것이 공존하는 신기한 장소.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주인공의 그 낡은 달동네 같은 집에서 길 건너 화려한 고층 아파트가 바로 보이는데, 볼 때마다 꼭 이 동네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만).
차라리 좋은 건물의 모습들이 안 보였으면 좀 나았으려나. 아님, 그렇게라도 편의시설은 이용할 수 있으니 다행이려나.
나는 이 동네에 겨울에 이사를 왔었다. 처음에 보였던 것은 주택들의 낡음을 가리기 위한 벽화들(심지어 그것조차 벗겨지고 낡았다)이었고, 그다음에는 그 아래에 있던 연탄이었다.
연탄이라니.
단 한순간도 내가 부유하다거나 여유롭다고 생각하며 자란 적 없었지만, 그래도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층 아파트 단지로 이사해서 그 뒤에도 계속 낡고 오래되긴 했어도 아파트에서 생활을 했었다. 어릴 적 연탄을 사용했던 기억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뒤에는 한 번도 직접 보지 못 한 것이었는데.
이곳은 여전히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있구나.
그리고 며칠 전 날이 추워지기 직전에 나는 TV에서만 보던 연탄 나르는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도 직접 보았다.
그저 막연하게 TV에서 봉사 활동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봉사 활동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은 많이 했는데.
그 봉사 활동을 하러 오는 동네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찮았던 감정이 푹 꺼지는 느낌이다.
물론,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 중 정말 부자이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투자 목적으로 일부로 들어와 사시는 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나의 경우는 그러한 것도 아니고.
어느 날 무심코 친구에게 새로 이사한 집에 대해서 "여기, 재개발 예정 지역이야"라는 말을 했을 때 "오~ 투자하는 거야?"라며 너무도 당연하게 던지는 말에 또 한 번 나 혼자 씁쓸해지기도 했었다.
그렇지,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결혼 한 지도 오래되었고 이제 나이도 있으니 우리도 투자 같은 것도 좀 하고 자산도 좀 늘릴 시기가 되긴 했지.
그런데 도대체 그런 시기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왜 늘 그것에서 어긋나는 것 같기만 하는 것인지. 나는, 아니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어 버린 것인지.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다가도, 또 당장 나가면 갈 곳 없기 때문에 여기서 계속 살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한 현재를 보내고 있다. 큰 마음먹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한심하게도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채로 그대로이다.
집 앞에서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우울감에 젖고 자괴감에 빠지다가, 그럼에도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연탄을 받는 생활을 하지는 않고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추운 겨울에, 연탄 없이 따뜻한 집 안에서 건강하게 잘 보내고 있다. 일단 지금은 그것에 감사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