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 나는 계속 다른 곳을 기웃거렸고, 운 좋게도 내가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단순히 '보조'가 아니라 '관리'와 '책임'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나 같은 초보자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뽑힐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그나마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 경력도 없는 내가 이력서 좀 넣어본다고 뭐가 어떻게 되겠어.
사실, 지금에 와서 글은 이렇게 편안하게 쓰지만 당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어차피 안될 것' '나는 못 할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며칠 내내 마음에 두둥실 떠다녔다. 그중 어딘가에는 '하고 싶다'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 마음은 소심하게 고개를 내밀었다가 금세 사라지곤 했다.
나는 내가 어느 곳에서 일을 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막상 조금 더 깊게 들어가서 생각하면 그 앞에 아주 진하고 굵은 경계선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발을 살짝 들이밀어도 괜찮은 것일까.
그래도. 경험이라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아닌가.
아주 오래전에는 소심하게 몇 번 도전 같은 것을 해 보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진입 장벽이 낮은 곳만 골라서 발을 들이밀었던 것 같다. 누구든 아무나 뽑을 것 같아서 거절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그래서 낯설고 어려운 분야에 이력서를 넣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도전 같은 것이었고, 면접을 보게 되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새파란 가을 하늘과 비 온 뒤에 떨어진 젖은 단풍, 그리고 긴장감 넘치는 면접실. 익숙하지 않은 구두에 뒤꿈치가 까진 발, 그리고 누구나 수없이 경험했을법한 그 일을 나는 왜 이제서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내 지난 시간에 대한 묘한 감정.
그것이 그날의 내 기억이다.
면접관은 세 명이었고, 세 명이 같이 면접을 봤다. 한 명은 다른 일을 하던 어린 분, 한 명은 같은 분야 경력이 많은 나이가 더 많으신 분.
심장이 튀어나오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장이 되었고 도망치고 싶었는데, 그래도 무언가가 그대로 뻥 하고 터지지 않을 수 있도록 잘 조절을 하면서 그 한 시간 긴 시간을 잘 버텼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 등의 질문들이 오고 갔고, 나는 예상 답안을 제대로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대답은 열심히 했다.
육아 16년 차. 무엇이 맞고 틀리는지도 모르는 채 늘 혼란 속에서 살았던 나였다. 내 대답이 그 장소의 특성과 면접관들이 원하는 대답은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나만의 정리된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에겐 그런 나 자신을 확인하는 좋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면접을 보면서 지금의 나는 이 장소에서 필요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그건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그저 쪼그라들고 주눅 든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일 것이다.
역시 나는 아직 역량 부족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 같은 초보자들은 어디 가서 일을 하고 배워야 한단 말인가?라는 무언가를 향한 약간의 분노 섞인 질문이 올라오다가, 이렇게 한 발 내디뎠으니 다음 한 발 내딛는 일이 또 있겠지 라는 편안한 생각이 조금 더 커진다.
그런 나의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결국 합격자는 같은 분야의 경력은 없어도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다. 실제 능력은 모르겠으나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보면서 그분이 뽑히겠구나 싶기는 했다.
어차피 떨어질 면접을 본다고 아르바이트 하루 빠지게 되어서 그 작은 급여에서 약 십 얼마의 급여를 더 못 받게 되었다. 돈 한 푼 아쉬운 이 상황에서 성과 없는 십만 원어치 경험을 한 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