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기만 했던 상담사 첫 인턴 실습
명상심리상담 대학원 3학기 때 상담 실습을 시작했다. 상담 실습은 실제로 내담자를 만나며 상담 현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선배에게 실습센터를 물어 내담자를 배정해 주고, 꼼꼼히 가르쳐 주는 곳으로 선택을 한 거였다. 일 년 과정을 이수해야 상담사 2급을 딸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추어지지만, 우선 6개월만 받아보기로 했다. 센터에서는 1년 과정과 6개월 과정이 나누어져 있어서 원하는 대로 선택 신청이 가능했다. 위치는 종로 서촌 근처였다(종로의 기운을 좋아해서 상담실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실습 시작 전에 면접을 봤다. 소장님과 대화를 나눈 후 통과가 되어야 참여가 가능했다. 소장님께서는 아직 mmpi와 이상심리학 수업을 듣지 않았는데 실습이 가능할지 고민하며 나에게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방학 동안 공부를 하겠다고, 실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인턴과정은 면접을 본 후 두 달 있다가 시작이 되어서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충분히 이론을 습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어렵고 힘들었다.
상담을 진행하면 수퍼비전을 필수로 받는다. 수퍼비전은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 1급 자격을 가진 선생님들께 심리검사 결과와 상담과정에 대해 지도감독을 받는 것이다. 처음 받는 수련이었고, 처음 만나는 내담자였다. 같은 조 선생님들과 세 명이서 심리검사 수퍼비전을 받는데 내가 가장 처음으로 받게 되었다. 얼얼한 상태로 어떻게 받았는지도 모르게 50분이 흘러갔다.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심리검사 보고서를 작성한 걸 보시고 장점을 찾아내어 표현해 주셨다. 보완해야 할 부분이 더 많았지만(보고서 문장의 끝맺음 형식을 일관되게 할 것, 오타 없이 할 것, 내담자의 중요한 호소문제와 관련이 없는 내용은 불필요하게 넣지 않을 것,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 정리 해서 작성할 것, 등), 첫 수퍼비전에서 장점을 짚어주신 건 두고두고 나란 사람의 강점을 알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내담자의 상담 내용과 검사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가 오고 가는 수퍼비전 시간을 통해 개인적인 문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내가 사회에서 소통하며 힘들어하는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수 회기 이상 진행된 상담에서 상담자로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담자의 중요한 소통인물과 정서에 대해 놓친 부분도 알 수 있었다.
그 첫 수퍼비전을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같은 자리에 앉지 못했다. 감독관과 마주 앉아 버텨낼 힘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때 도움받은 걸 이렇게 적을 수 있지만 당시엔 너무 부끄러워서 함께 참여했던 선생님들의 얼굴조차 다시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어쩌며 스스로를 잘 포장해 놓고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감독관 앞에서 부족함이 완전히 까발려진 느낌이 들어서 그런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mmpi를 제대로 공부하고 가지 않아서 mmpi-2 검사를 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데 눈물을 짜낼정도로 고생을 했다. 수퍼비전을 받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기본적으로 알고 가야 할 것들을 습득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버거워하면서 겨우 작성을 하긴 했다. mmpi는 인턴 실습을 마치고 5학기 때에 들었다. 증상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이상심리학 수업도 4학기 때에 들었다. 그렇게 멋 모르고 뛰어들었던 첫 인턴상담실습은 정규과정을 중 최소한의 것만을 이수한 채로 마무리되었다.
정해진 프로그램 중 할 수 있는 것만을 이수했다. 다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공개사례발표 12회 참관과 21 시간의 게슈탈트 표현예술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게슈탈트 이론과 실제' 교육에 3일 간 6 시간을 참여했다. 광화문에서 진행하는 한 부모 축제에도 참여를 했다.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기보다는 실습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걸 파악했던 시간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내담자를 만나 8회기까지의 상담도 진행해 보았다. 지금도 오전에 활동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이때에도 오전에 정해진 요일에 있는 게슈탈트 이론 실습은 일부만 참여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이런 일들을 통해 어떤 걸 버거워하고 어떤 걸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기면 될 듯싶다. 인턴 선생님들이 발표하시는 공개사례발표에 참관한 계기를 통해 사람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모든 인간은 고통을 가진 존재구나. 나만 아프고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되니 내가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고통을 공통화할 때 아픔은 옅어진다. 초급명상지도자 과정을 들을 때 '자애명상'을 주제로 한 수업에 참여했었다. 티벳에서 오신 스님께서는 내 질문에 '개인적 고통을 공통화(전체화)해라'라고 말씀해 주셨었다. 다시엔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이해가 갔다.
내담자를 배정받을 때에도 위기 내담자는 인턴생들에게까지 오지 않는다. 인턴생은 비교적 호소문제가 무난한 내담자를 배정받는다. 내담자가 상담을 신청할 때 지원동기를 적어서 내면 센터에서 서류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검토하며 조절한다. 나를 포함해 15명의 인턴생들은 시간대가 맞고 본인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내담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시간대가 가능한 내담자를 선택했다. 수련생들과 내담자의 비율이 맞지가 않아서 우리 조에서는 내가 먼저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상담을 진행해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내담자를 기다려야 하는 두 분의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때의 생애 첫 상담은 내담자에게 응원을 받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종결 2회기를 앞두고 내(상담자) 사유로 조기 종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말이 떠오른다. <창피하지만, 일단 해봅니다>라는 책에는 '잘하는 사람이 아닌 응원받는 사람의 태도를 가져라.'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 힘이 되는 말인 것 같다. 처절히 무너졌던 자아 경험을 토대로 나는 잘하는 상담자가 아닌 응원받는 상담자가 되고자 다짐한다. 물론 이 또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다져진 마음이었다. 당시엔 10회기를 마무리하지 못해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함께 실습을 했던 선생님들 중엔 대학원 생, 직장인, 초중학생 아이들을 키우는 맘, 임신 중이신 분, 성인이 된 자식이 있는 분, 복지관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계신 분, 스님 등 연령과 직업 분포가 다양했다. 공통적인 부분은 15명 인턴생 모두 대학원 과정에 있거나 대학원을 졸업한 분들 이셨다(한 분 정도는 정확하지 않다). 인턴 선생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따라가기 버거운 인턴 6개월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이때의 실습을 통해 나란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자기 이해를 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가하는 자리에 노출이 되었을 땐 쉽게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은 시간을 거쳐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점, 주어진 목표 과제를 깊이 있게 작성하려고 노력한다는 점, 사람의 깊은 내면과 소통하는 걸 좋아한다는 점, 사람과의 교류를 좋아한다는 점(실제로 이론 수업엔 참여를 못해도 수업이 끝나고 샘들과 차를 마시는 약속은 잡았다, 샘들 끝나는 시간에 맞춰 근처 예쁜 카페에서 만났다), 경험치의 양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점 등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실습은 이전 경험을 토대로 또 한 번 해나가게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도 다음 실습에서 중요한 태도다. 다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나처럼 불안하고 낯선 감정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은 꼭 이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제때에 취득해야 한다는 결의를 가지고 계신 게 느껴졌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원을 다니는데 상담수련까지 받으려니 수퍼비전 보고서도 울면서 작성했다는 선생님, 아이들 등교시키고 부랴부랴 늦지 않게 센터 이론 수업을 들으러 오는 분, 낸 돈이 아까워서 어떻게 해서라도 꼭 이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분 등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들이 존재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마음이 많이 여린 태도로 접근을 했던 것 같다. 권투 선수들이 싸우는 링 위에 글러브도 끼지 않고, 권투라는 것에 대해 조금 안다는 것만으로 선수를 만나 경기를 치르는 꼴이랄까. 무방비 상태 노출이 되어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을 연이어 맞은 것 같았다. 위험회피가 강한 성향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게 해보면서 그곳의 분위기를 파악하며 많이 배웠다. 다음 경기 때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니까 좀 더 단단한 마음으로 뛸 수 있다. 후에 2차 상담실습 때는 좀 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환경에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었다. 1차 실습을 해보았던 경험이 2차 때 도움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