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진통제

by 누룩취

병원에서 받아온 흰 약봉지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몸의 통증을 잠재우는 진통제와 근육이완제, 그리고 약으로 상한 위를 보호하기 위한 점막보호제 몇 알이다. 허리 디스크 발병 후 내 일상에 속한 이 작은 알약들은 신경의 비명을 강제로 잠재운다. 약이 혈관을 타고 퍼지면 날카롭던 통증은 이내 둔탁해지지만, 약은 결코 마음의 적막까지 달래주지는 못한다.

약 기운에 몽롱해진 정신으로 항아리 곁을 서성인다. 그 안에서 익어가는 주향(酒香)을 맡으며 문득 생각에 잠긴다. 술 또한 누군가에게는 생의 비명을 잠재우는 ‘액체 진통제’가 아니었을까. 약은 신경을 무디게 하고, 술은 기억을 희미하게 한다.
하나는 끊고, 하나는 감싼다.


의사는 약을 먹는 동안 술을 멀리하라 경고한다. 그것은 몸을 고치는 물리적인 치유의 시간 동안, 마음을 달래는 감성적인 치유의 시간은 멈춰야 한다는 선고다. 나는 얌전히 약을 삼키며 항아리 속 술이 익어가는 시간만큼 내 몸의 상처도 아물기를 기다린다. 정성껏 술을 빚는 행위는 기다림의 미학이라지만, 약으로 통증을 누르며 술을 기다리는 시간은 인내의 과정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몸도 성치 않은데 왜 굳이 술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다만 안다. 약이 통증을 잠재우듯, 어떤 날에는 다른 방식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들인 가양주가 시간을 들여 마시는 술이라면, 퇴근길의 소주 한 잔은 당장의 마음을 식혀 주는 술이고, 막걸리는 허전한 마음의 허기를 잊게 해 주는 술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통증으로 하루를 이겨낸다.

나는 술을 빚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술 대신 흰 알약을 삼킨다. 그리고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내가 빚은 맑은 청주 한 잔과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번갈아 마실 것이다. 억눌렸던 신경이 이완되고 마음의 응어리가 주향에 녹아내리면, 나는 비로소 이 통증으로부터 해방될 것이

다.

약봉지가 비워질 즈음이면, 나는 다시 항아리 앞에 설 것이다. 그날은 크게 마시지 않아도 좋다. 잔을 들어 향을 맡는 일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