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진 생의 안부
책장 위에 놓인 먼지 앉은 마트료시카를 바라본다.
오래전 친구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던 순간이 떠오른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게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던 온기,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건네주었던 마트료시카 선물. 인형의 표면 위에는 그날의 자취가 여전히 머물러 있다.
“인형의 몸 안에서는 또 다른 인형이 나와. 언제까지고 계속…”
나직하게 읊조리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이제 내 곁에 그는 없다. 인형은 남았지만, 그날의 체온은 오래전에 식어버렸다.
‘마트료시카’라는 이름이 ‘어머니’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인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계보의 약속처럼 느껴진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그 아이가 자라 다시 다음 생명을 품는 연속성. 화려한 채색의 여인을 한 꺼풀 벗겨내면 조금 더 작은 여인이 나오고, 다시 그 속에는 더 작은 존재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마침내 가장 작은 알맹이가 나올 때까지 반복되는 이 해체와 발견의 과정은, 어쩌면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거대한 우주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물리학의 파격적인 상상력인 ‘블랙홀 우주론’은 이 마트료시카의 비유를 우주적 규모로 확장한다. 거대한 별이 생을 다해 스스로를 삼키며 블랙홀이 될 때, 그 소용돌이 너머에 새로운 우주가 태어난다는 가설. 그렇다면 우리가 올려다보는 저 밤하늘의 심연은 사실 다른 거대 우주의 ‘종말’이자, 동시에 우리 우주의 ‘기원’인 셈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내부이자, 동시에 누군가를 품은 외피로 존재한다.
이 장엄한 질서는 인간과 인간이 깊이 마주하는 순간에도 재현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겹겹이 둘러싼 방어와 체면을 내려놓는 과정은, 선물 받은 마트료시카의 외피를 하나씩 벗겨내던 그 호기심 어린 손길과 닮아 있다. 사회적 가면과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고 마침내 서로의 가장 연약한 진심이 드러날 때, 우리는 각자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선다. 넘는 순간, 빛조차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처럼, 우리는 한 번의 선택 이후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 너머에서 우리는 서로의 중심을 조용히 마주한다.
그러나 이 견고한 질서의 틈새로 문득 서늘한 균열이 일어난다. 인형을 하나씩 열어갈수록 내 안의 불안도 함께 부풀어 오른다.
혹시 가장 안쪽을 열었을 때 아무것도 없다면?
내가 믿어온 중심이 비어 있다면?
나는 그 지점에서 멈춰 섰다.
블랙홀의 중심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허무만 존재하듯, 우리 삶의 마지막 껍질 속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저 텅 빈 공허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손끝을 타고 흐른다.
모든 빛을 삼킨 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남는 블랙홀처럼, 사랑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우리를 붙잡아 둔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거대한 중력권 안에서, 나는 여전히 그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맴돈다.
나는 누군가의 안쪽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바깥쪽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하나의 껍질이었다.
그의 진심을 담아주던 안쪽이었으며, 동시에 그의 어깨를 든든히 감싸 안았던 바깥쪽이었던 나는, 이제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남겨진 외피가 되어 우주를 부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물 받은 인형을 다시 하나로 합쳐본다. 나는 다시 마트료시카를 조립한다. 해체된 나를. 마지막 껍질을 닫으며 나는 내 안의 수많은 ‘나’들을 다독이고, 나를 품어준 하늘이라는 이름의 외피에게 조용히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품은 채, 함께 거대한 원무를 추고 있는 마트료시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