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날을 잡아 2월 장을 담그기로 했다. 장은 보통 정월 대보름 무렵에 담그는 것이 정석이다. 그래야 소금물 농도가 일정하고, 메주가 서서히 우러나며 깊은 맛을 낸다. 그때라야 소금이 꽃처럼 피어오르는 하얗고 노란 ‘장꽃’도 예쁘게 핀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절기도, 계통도 없었다. 늦은 줄 알면서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차오른 후에야, 베란다 한구석에 사두었던 메주를 꺼냈다.
그동안 나는 장에 관해서라면 철저한 방관자이자 수혜자였다. 된장, 고추장, 간장. 한국인의 밥상에서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해야 할 이 세 가지 기본 맛을 나는 늘 처가의 장독대에서 건져왔다. 처가 창고 옥상, 볕이 잘 드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독들은 나에게 거대한 맛의 창고이자 안식처였다. 그 뚜껑을 열 때마다 풍겨 나오던 달큰하고도 쿰쿰한 장내 속에는, 장모님이 평생을 겹겹이 쌓아온 세월이 깊은 농도로 스며 있었다.
하지만 장모님이 기력을 잃고 편찮아지신 뒤로 장을 받아오는 내 손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았다. 장독의 주인의 침묵이 길어지던 어느 해, “올해 장이 잘 됐다. 더 퍼 가거라” 하시던 장인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누워 계시던 장모님의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처가의 장독을 여는 일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곳은 단순한 음식 보관함이 아니라 장모님의 정성과 시간이 고스란히 응축된 자리였다. 내가 장을 덜어 오는 행위는 어쩌면 그분의 남은 생의 에너지를 조금씩 나누어 쓰는 일이었다.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이제 처가의 장독대에는 더 이상 새로 익어가는 장이 없다. 주인을 잃은 장독 곁에는 이제 장인어른의 허허로운 뒷모습만이 남았다. 장인어른은 여전히 건강한 체구로 밭을 일구고 집안을 돌보시지만, 장모님이 계실 때 반짝반짝 윤이 나던 장독들은 이제 하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침묵하고 있다. 장인어른의 강건함이 오히려 그 텅 빈 장독대의 정적을 더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그 장맛, 찌개 한 그릇만으로도 온 집안을 따스하게 채우던 그 맛이 사무치게 그리워 나는 결국 서툰 손으로 직접 장을 담그기로 결심했다.
내 장독의 크기에 맞춰 메주를 고르고 주문했다. 메주를 깨끗한 물에 씻어 볕에 말리며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투박한 메주 덩어리 몇 개로 장모님이 지켜오신 그 깊은 맛을 감히 재현할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 맛을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맛이 남긴 희미한 흔적이라도 붙잡고 싶은 것이다. 장모님의 손길과 그분이 장독을 닦으며 중얼거리던 기도를 떠올리며, 나는 계란을 띄워 소금물의 농도를 맞춘다.
올해는 처가에서 특별한 물건 하나를 모셔 올 계획이다. 장모님이 반백 년 전 친정에서 시집올 때 작은 단지에 덜어 왔다는 ‘씨간장’이 담긴 독이다.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며 수많은 계절을 건너온 그 검고 진한 액체는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한 집안의 역사이자 생명력이다. 장모님이 떠나신 후에도 장인어른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듯, 그 오랜 세월을 버티며 이어져 온 맛의 뿌리가 부디 나의 서툰 장독 안에서도 죽지 않고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찬 바람이 불면, 나는 잘 익은 장단지를 들고 처가로 향할 것이다. 장모님이 계시지 않는 그 주방에서 서툰 솜씨로 된장국을 끓이고 담백한 장국을 내놓을 것이다. 그것은 부재하는 장모님께 올리는 보고이자, 홀로 적적하실 장인어른께 전하는 뒤늦은 보답이 될 것이다.
장은 인간의 조급함과는 상관없이 제 속도대로 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