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망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신화에 가까운 성장 스토리를 들려주곤 한다. 어떤 이야기는 ‘부잣집 막내아들’ 같은 드라마로 각색되어 대중에게 소비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그런 영웅담이 결여된 현실 스토리다.
배경은 기업을 매입하며 성장해 온 국내 기업의 신사업 부서. 성공 신화는 최근까지 부각되어 회사의 중역들과 리더들은 인수 경험이 많은 편이다. 바둑으로 치자면, 실전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정국에서 전개된 기보들을 축적해 온 프로 바둑 기사라고나 할까.
나는 여기에 오기 전, 이 기업 저 기업을 떠돌며 신규 사업의 전략 방향성을 대신 수립했던 컨설턴트였다. M&A로 기업 순위를 레버리지 해왔던 영광스러웠던 시기가 한차례 지나갈 무렵, 나는 이 회사에 포진한 ‘통’들 아래로 새로 합류한 New Comer다. 이제는 확장 일로의 성장 대신에 내실 다지기 시간이 되었고, 나는 예전에 편입시킨 중소 자회사의 PMI를 맡게 되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단순히 내가 어떤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업무를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단순히 자회사를 관리하고 있다고 얼버무리듯 대답하는 게 다였다. 영업이나 마케팅, 인사, 구매 등 흔히 접하는 직무도 아니었고, 항간의 주목을 받는 '인수 합병'에는 금융 테크닉과 지배구조, 자본시장(회사법 등) 노하우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반면, 잘 알려지지 않았고 답이 정해지지 않는 PMI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글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계기였다.
PMI=피가 나고 멍이 들고 이가 갈리는 그런 것?!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 PMI…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난 군대에 가면 거치는 PRI(피가 나고, 알이 배고, 이가 갈리는 훈련) 처럼, 피가 나고 멍이 들고 이가 갈리는 걸 상상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거창하게는 총, 균, 쇠(제레미 다이아몬드)에서 해석한 두 문명의 차이를 메꾸는 조력자쯤 된다고 해도 크게 부족한 설명은 아닐 듯싶었다.
굳이 찾아본 PMI 전문 컨설팅 오퍼링 offering 같은 곳에서는 결혼에 비유하는 걸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유교남 마인드로는 사내 외모가 아무리 출중하다 하더라도 여러 마나님을 모시고 산다거나, 아씨 능력이 월드 클래스라 하더라도 여러 남편을 거느리며 산다는 게 이해불가했기 때문에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