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이 있으라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창업자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누가 투자하게 될지, 어느 정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지 80~90% 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창업을 하자고 뭉친 멤버가 보유한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따라 창업한 회사의 운영이 어느 정도 결정됐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라떼’는 시작이 매우 좋았다. (오해와 분쟁 방지를 위해 회사명은 비공개하고 라떼라 부르겠다)
이렇게 성공적인 펀딩 사례의 배경에는 회사 설립 이전 창업자의 특정 경력, 인맥, 학벌에게만 제공되는 추가적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정보 접근성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스타트업 투자자들의 경향, 그리고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이 창업자의 학벌 등을 주요 투자결정요소로 꼽는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라떼의 창업은 많은 조건들을 충족하는 편이었고, 시장은 라떼에 우호적이었을 테지.
그래서인지 라떼가 보유한 사업 역량들은 주주들의 입맛에 맞는 사업 포트폴리오에 딱 맞아떨어지는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우리 회사에 허락된 몇 안 되는 Deal offer로 남았다. 모회사는 하향식 업무지시로 짧은 시일 내 투자 여부를 검토할 것을 원했다고 들었다. 라떼에 대한 형식적인 가치평가와 주도권이 없는 협상을 거쳐 지분 인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내가 경력으로 입사할 때쯤 라떼는 컨트롤타워인 신사업 부서 소관이 되어 있었다.
태초에 라떼가 있으라
그렇게 태초에 라떼가 있었다. 지분 인수 자금을 마련하고 규제기관에 자회사 편입신고를 해야 하는 신사업 부서, 투자를 허락한 모회사, 그리고 든든한 우군을 둔 라떼, 이렇게 3사가 미묘한 역학관계를 이뤘다. 억척스럽게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청소년 가장과 엄마 치마폭에 싸인 코흘리개 동생, 어쩌면 시장진입 초기 라떼의 저조한 성과의 원인분석과 개선이 여태껏 쉽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라떼가 치열한 검증을 통해 사업모델을 정교화하고 가능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피버팅 해야 하는 과정에서도 알게 모르게 통과 찬스를 제공받으며 인수 초기의 골든타임이 흘러가버린 것이었다. 이 같이 느슨한 검증은 실무 차원의 부담이 되어 PMI를 밀도 깊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일례로 예상매출의 근거가 될 고객사 계약체결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주 확률이 0%가 될 때까지 공식적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것이 반증이 아닐까?
라떼의 태생적 배경은 득보다는 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다. 아니, 나 같은 PMI 담당자가 실무를 추진하는데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분명했다. 혹자는 본인 업무 추진할 때 불편했다는 개인적 불평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기업 문화적 통합이 PMI의 핵심이자 성공 조건이라는 점에서 PMI 실무 협의체에 참여하는 인사/재무/생산/영업 등 참여자들에게도 비슷한 부담이 되었다면 라떼에게도 좋지 않았을 텐데 앞으로 연재할 나머지 에피소드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