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per> 2023. Seed호 : 누틸드 데이나 대표 기고
며칠 전 유튜브를 서핑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박미옥 전 형사님의 강연을 보게 됐다. 처음엔 형사다운 짧은 숏컷과 다부진 체격이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진한 여유와 따뜻한 눈빛이 의외의 얘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역사적인 무용담 대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강력 현장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상처가 있다는 겁니다. 모두가 좋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정말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상처를 가지고 있고, 좋은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가까운 이들에게만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스치듯 만나는 택시 기사님이나 편의점 알바생도 마찬가지. 어쩌다 손님의 조그만 인정을 받을 때면 그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난다. 그만큼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값비싼 서비스들이 모두 고객의 이 마음을 최대치로 수용하며 대접하는 이유다.
반면, 상대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사람들은 종종 엇나간 행동을 하게 된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화를 내고 울거나 반항한다. 때로는 거부하고 예민하게 피하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 본능 중 하나다.
그 사람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이해가 안 돼요.
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인 것. 실제로 이런 갈등 상황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알고 보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인정을 주지 못해 벌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들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를 때도 많다.
HR 컨설팅 3년 차에 접어들며 대표님들과 일대일 코칭 건이 늘었다. 요즘에는 금요일을 코칭으로만 보낸다. 내 분야가 HR이라서도 있겠지만, 대표가 가진 고민 대부분은 사람 문제다. 심지어 5-6년을 경영하신 대표님들도 매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사람 일이라고 한다. 사전에 빼곡히 채워주신 이야기를 읽으며 미팅을 준비한다.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고 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질문을 만든다. 그때마다 항상 실마리를 주는 건 “이 사람이 혹은 이 집단이 왜 이랬을까"라는 물음표다. 사람의 행동 뒤에는 무조건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늘 좋았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 읽기를 즐기는 학생이었다. 그만큼 이성적인 척하지만 수많은 합리화로 자신을 감싸는 인간이 나에게 가장 재밌는 주제였던 것. 그 시간 속에서 내 나름의 논리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HR 업을 하는데 또 팀을 이끄는 리더로 역할하는데 큰 바탕이 됐다. 결국 사람을 이해하려는 강한 의지가 나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사람의 욕망과 상처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욕망desire이라고 함은 의식주나 본능과 관련된 필요needs가 아니다. 철학자들이 정의한 것처럼 생존에 대한 기본적인 필요를 넘어선 인간을 움직이는 힘으로, 어떤 혜택을 누리고자 하는 감정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앞서 나온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 좋은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다. 누군가의 욕망을 안다는 것은 큰 힘이다. 이 사람이 가진 원동력, 엔진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처는 마음에 남은 상흔을 말한다. 욕구를 채우지 못해 생기기도 하고, 남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열등감, 아니면 경험에서 얻은 불안감과 의심이 뿌리 깊게 자리할 수도 있다. 나도 어린 시절 얻은 상처가 있어 그런지 다른 사람의 것도 아주 빠르게 인식하는 편이다. 그러고는 최대한 건드려지지 않게 노력한다. 이 지점이 바로 평범한 브루스 배너 박사를 괴물 헐크로 변하게 만드는 도화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슬픔이'처럼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인간에게 상처는 이성을 잠식시키는 세계다. 욕망이 움직이는 힘이라면 상처는 모든 걸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이 두 열쇠를 안다면 한 인간이 운동하는 핵심 원리를 파악한 것과 같다.
이처럼 욕망과 상처라는 도구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필살기다. 사람을 다루는 리더십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때때로 리더 개인의 오해들이 방해를 한다. 상대를 들여다보기 전에 이미 나의 욕망과 상처, 가치관에 기반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접 때와는 180도 다른 구성원을 보며 실망하기도 하고, 타운홀 발표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인식된 결과에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한다. 구성원 간 갈등이 생겨 일이 진척이 안 되는데 그럴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이렇게 조직에서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주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늘 벌어진다. 그럴 때 리더들은 다시 한번 외치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돼!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내 마음의 벽만 쌓을 뿐이다. 골이 깊게 쌓여 ‘검은 머리 동물은 믿지 않는다’는 리더분들도 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리더로 일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훈련해야 한다. 사람을 이해해야 조직 문제를 정확히 보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정의할 정도로 알아내지 않아도 된다. 궁금해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해답은 찾아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인데, 직접 묻지 않는 자문자답도 충분히 효과적일 때가 많다. 실제로 코칭에서 종종 묻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그 사람은 어떤 걸 원하는 사람일까? 어떤 걸 가장 피하고 싶어 할까?
그 사람은 왜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했을까? 무엇을 원해서 혹은 피하고 싶어서였을까?
이 액션에 참여하는 구성원이라면 무엇을 원할까?
이 액션을 하면 상처받을 구성원이 있을까? 누구에게 좋지 않을까?
이 갈등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무엇이 건드려졌을까? 결국 원하는 건 무엇일까?
하나씩 답을 하다 보면 상황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내 생각과 달라 불편했던 감정도 사라지는 건 덤이다. 그렇게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욕망과 상처를 파악하면서 더 섬세한 해결책이 손에 잡힌다. 그리고 나면 다음 미팅은 리더의 안도하는 미소로 시작하게 되더라. 조직 대부분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 자리를 찾고 본인을 이해해 주는 리더를 향한 신뢰도는 높아진다.
즉,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피하려고 하는지를 궁금해할 때, 비로소 리더는 리더다워지는 것. 대표님들과 함께 경험한 결과다.
다시 박미옥 전 형사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녀는 수사 현장에 있으면서 본인이 가장 노력해야 했던 건 내 경험과 가치관을 접고 타인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조직 현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조직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만 한 덩어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리더십은 구성원들을 각자 다르게 바라보고 개인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일 출근해 만나는 그들을 조금만 더 궁금해 해보자.
관심이 모든 것의 시작이니까.
스타트업과 스타트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즈니스캔버스팀의 매거진 <Upper> 2023. Seed호에 실린 누틸드 데이나의 기고글을 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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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틸드는 혁신 조직을 위한 조직 매니지먼트 파트너입니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위한 하이퍼포먼스팀 빌딩 솔루션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각 조직의 고유한 정체성을 강력한 시스템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좋은 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으며, 누구나 훌륭한 조직을 쉽게 시작하고 경험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것이 누틸드가 가장 잘하는 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