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발견한 AI 시대의 '믿고 싶은' 나침반
지난 편에서 'AI가 다 할 수 있다면, 인간이 해야만 하는 건 뭔데?'라는 질문에 우리 팀이 도달한 답은 '주체적인 설계자'로서의 인간이었다고 전했어요.
올해 1월 초, 그 전제를 기반으로 찾아낸 3개의 비즈니스 모델을 팀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 오랫동안 찾아 헤맨 사업 방향이 드디어 눈앞에 드러났는데, 무언가 크게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모델이 되든, 이게 진짜 앞으로 올 세상에 필요한 일인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죠.
내가 믿는 '세계관'이 필요했습니다.
거창한 단어로 들리지만, 쉽게 말해 세계관은 '세상은 이렇게 변할 거고, 그에 따라 이 방향이 꼭 있어야 해'라는 창업자의 믿음입니다. 한 기업의 비전이 나무라면, 세계관은 그 나무가 뿌리내릴 숲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일론 머스크가 Space X라는 로켓 회사를 만든 건 '인류가 하나의 행성에만 머무르면 언젠가 멸종한다'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Anthropic이 AI 회사를 세운 건 '안전을 아는 사람이 AI의 선두에 서야 한다'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이본 쉬나드는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다'라고 믿었기 때문에 Patagonia를 만들고 2022년에 30억 달러짜리 회사를 통째로 지구에 기부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사업의 형태는 전부 다르지만, 출발점은 같습니다. '세상은 이래야 한다'는 창업자의 세계관.
이처럼 꼭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고객사의 비전과 미션을 만들어온 경험상, 굳건한 비전 아래에는 창업자의 세계관이 가장 중요한 재료거든요.
"우리 조직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킬 건가요?" "이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 안에 아주 단단하게 깔려 있는 세상에 대한 믿음. 그게 바로 그 지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틸드를 시작했던 5년 전과 달랐어요. 그때는 세상이 흘러갈 방향이 나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누구도 단언하지 못하는 변화의 초입이었습니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게 맞을까?
그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게 좋은 방향일까?
연구자들의 서적을 뒤졌습니다. 미래학자들의 그림과 AI 시대의 리더십을 다룬 책들. 논리와 방법론은 넘쳤어요. 하지만 확신이 안 생겼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이 안 따라가는 느낌.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그래서 뭐? 내가 이걸 손에 쥐고 뛸 수 있나? 가 안 되는 느낌이었죠.
그러던 중에, 뜻밖의 곳에서 단서가 찾아왔습니다.
헤이즐이었어요. 시니어 컨설턴트인 헤이즐이 AI 때문에 고민이 많던 시기에, 매트릭스를 다시 봤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겪고 있는 게 영화 속 세계랑 너무 비슷하지 않냐"고.
처음엔 흘려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25년 전에 이 영화가 우리가 풀지 못하던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 적이 있었습니다. AI가 인간의 모든 것을 계산하고 통제하는 세계. 그 안에서 인간의 선택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연구자들의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질문의 깊이가, 한 편의 SF 영화 안에 있었죠.
그래서 저도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시리즈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개봉 이후 전 세계 SF의 기준을 바꿔놓은 작품인데요. 아카데미 4관왕, 미국 의회도서관이 "문화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영구 보존을 결정한 영화입니다.
뒤이어 영화 속 철학적인 의미를 깊이 파헤치기로 유명한 유튜버 요런시점님의 분석 영상들을 연달아 보면서 메모를 남겼어요. AI가 모든 걸 해버린 세계의 끝까지 가본 서사 속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면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말이죠.
매트릭스에서 가장 유명한 알약 씬은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두 알약을 내미는 장면일 텐데요. 빨간 약을 먹으면 불편한 진실을, 파란 약을 먹으면 편안한 환상을 평생 보게 되죠. 돌이켜보면 AI 시대의 세계관을 찾겠다고 결심한 순간, 저도 모르게 빨간 약을 집어든 거였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보여주는 진실은 예상보다 훨씬 불편했습니다.
1편에서 네오는 "선택받은 자"입니다.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로 운명을 개척하는 영웅.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AI 시대 앞에서 흔들리는 저에게도 필요했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2편에서 그 모든 게 무너집니다. 아키텍트가 네오에게 말하죠.
"네 선택도 이미 설계된 것이다."
인류의 구원자인 줄 알았던 네오가, 사실은 시스템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설계된 프로그램의 일종이었죠. 자유의지는 당연히 환상이고요. 요런시점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도 결국 '입력값(x)에 따라 정해진 출력값(y)을 내놓는 방정식'에 불과하다는 기분 나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떠올랐어요. 단이 서울 미팅에서 물었던 질문.
"그런 설계 능력도 방법론화되면, 결국 AI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같은 질문이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자유의지'로 상징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분석 영상을 보면 볼수록 그 절벽이 깊어졌습니다. 특히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튜링의 정지 문제를 매트릭스에 대입한 요런시점님의 해설이 제게 뼈아프게 다가왔는데요.
'알고리즘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무한히 증식하며 멈추지 않는 스미스 요원처럼 말이죠.
다시 말해, "이 목적이 올바른가?"라는 질문은 알고리즘의 언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AI도 마찬가지예요. 최적의 경로를 찾는 데는 압도적이지만, "왜 이 길로 가야 하는가"는 스스로 묻지 못합니다.
하지만 더 무서웠던 건 영화가 보여준 또 다른 사실이었어요.
매트릭스를 통해 감독은 인간과 기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마음도 전기 신호로 프로그램될 수 있고, 반대로 기계도 사랑이나 증오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어요. 그게 3편에서 오라클(기계임에도 인간의 감정과 동기를 이해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바랬던 기계가 진화해야 할 궁극적 모습이기도 했죠.
실제로 현대 뇌과학과 신경과학에서도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뇌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따른 결괏값일 뿐, 완벽한 의미의 자유의지는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두 주체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면, 그것이 인간이든 AI든 뭐가 다르냐는 거죠.
"그러면 인간이 특별한 이유가 뭔데?"
이 질문 앞에서 제가 알던 모든 답이 무력해졌습니다.
능력? AI가 더 잘합니다. 감정? 영화 속 프로그램들도 느꼈어요. 주체성? 그마저도 설계된 환상일 수 있다고 아키텍트가 말했잖아요.
특히 누틸드의 모든 성공방정식은 인간의 '주체성'에 달려있었어요. 리더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팀원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5년간 증명해 온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자유의지로 만드는 주체성 자체가 설계된 환상일 수 있다면,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것의 기반이 무너지는 거잖아요. 가슴에 비수가 꽂힌 기분이었습니다.
메모장에 적었습니다.
"자유의지가 환상이라면, 주체적으로 산다는 느낌을 가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모든 게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선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에서 희망을 찾으러 갔는데, 우리가 서 있는 세계관마저 무너진 꼴이 되어버렸죠. 정말 우울했습니다.
며칠간 그 바닥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곱씹고 또 곱씹다 보니, 매트릭스 2편 결말의 네오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죠.
잠시만. 의미가 꼭 있어야 하나? 자유롭다고 느끼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지?
2편 결말에서 네오는 인류 전체를 구하라는 시스템의 합리적 요구를 거부하고, 연인 트리니티를 구하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립니다. 과거 5명의 네오가 모두 기계의 계산대로 순응을 택했던 것과 완벽히 빗나간 변칙. 완벽해 보이던 알고리즘이 인간의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무너진 이 단 한 번의 선택이, 끝날 것 같지 않던 거대한 전쟁을 멈추는 나비효과가 됩니다.
그 생각을 하며 메모를 남겼죠.
"네오가 감정적으로 선택한 결정마저 자유로운 의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내 결심으로 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건 맞지 않나?"
즉, 네오의 선택이 100% 자유로운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인간으로서의 내 결심과 행동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 어쩌면 의미보다 그것이 더 중요한 본질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겁니다.
다음 영화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을 찾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죠.
인셉션,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총 11개 수상을 이끌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이 10년 넘게 구상한 작품, <테넷>.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계가 배경인데요. 영화감독의 탈을 쓴 과학 덕후라는 별명이 있는 놀란의 작품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악명 높지만, 이 영화도 요런시점님 분석 영상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철학이 저를 완전히 붙잡았어요.
테넷도 매트릭스와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이미 정해져 있을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표현되죠.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
What's happened, happened
하지만 같은 절벽 위에서, 놀란은 워쇼스키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어요.
영화의 줄거리를 잠깐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요런시점님의 분석에 따르면, 테넷의 악당 사토르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세상을 파괴하려 합니다. 왜? 불치병에 걸린 자신이 죽으면 세상도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자기 경험 밖의 현실을 믿지 않는 극단적 허무주의자. '내가 없는 세상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죠.
주인공과 동료 닐은 목숨을 걸고 이를 저지하고, 세상을 구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끝난 직후, 닐은 깨닫습니다. 전투의 결정적 순간에 잠긴 문을 열어주고 총에 맞아 죽었던 이름 모를 병사, 그가 바로 미래의 자신이었다는 것을요.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죽음이 기다리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려 하죠.
여기서 질문이 생기잖아요.
"어차피 세상은 구해졌어. 결과는 확정돼 있어. 굳이 돌아가서 죽을 필요가 있어?"
분석 영상에서 해설한 닐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 '성공한 현실'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니까." 그는 자신이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작전이 성공했다는 인과관계를 믿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사토르와 닐은 같은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의지를 가지든,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태도가 정반대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뭔가가 풀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우리도 겪었거든요.
"AI가 다 해줄 텐데 인간이 뭘 해야 하나"라는 허무감. 이 생각에 녹아있던 전제는 '무엇이든 AI가 더 잘 수행하니 내 노력 없이도 모든 게 잘 굴러가고 결정되어 있을 텐데 우리가 뭘 하겠어'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매트릭스나 테넷과 같은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인간이 쉽게 무력감에 빠지는 이유죠.
하지만 닐의 논리를 빌리면 AI가 아무리 완벽한 솔루션을 만드는 세상이 오더라도, 그 답을 선택하고 실행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결정된 미래는 공짜로 오지 않습니다. 그 미래를 성립시키는 사람의 행동을 담보로 존재하는 거죠.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시스템의 꼭두각시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매트릭스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은 환상일 수 있다"는 절벽을 보여줬다면, 테넷은 그 절벽 위에서 "그래도 네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말해줬습니다.
이게 내가 바라던 세상, 믿고 싶은 세계관이라는 직감이 들었죠. 모든 게 정해져도 내가 원인이어야만 한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믿음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요.
그리고 그 감각은 전문서적 100권을 읽었어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논리가 아니었거든요. "이게 맞다"를 읽어서 이해한 게 아니라 영화 속 인물과 함께 여정을 겪은 후, 스토리를 통해 온몸으로 깨달은 거니까요.
그렇게 두 편의 영화를 거치며, 머릿속에 세 가지 조각이 남았습니다.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가진 시대에,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믿음의 단서들이죠. 답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거칠지만, 앞으로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될 것들입니다.
매트릭스의 아키텍트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모든 변수를 계산하고, 최적의 경로를 설계하고, 인간의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죠. 하지만 "왜 이 세계가 존재해야 하는가"는 묻지 못했습니다. 그건 시스템 밖의 질문이었으니까요.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목표를 향해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방법을 찾는 데는 압도적이에요. 하지만 그 속도가 향해야 할 방향을 정하는 건, 결핍을 느끼고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방향(Vector)'과 '실현할 무대(Dimension)'를 설정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몫이죠.
또한 기계는 2차원 평면(기존 데이터)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지만, 인간은 3차원으로 튀어 오르는(새로운 가치나 모순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입니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시스템의 연산 속도를 이긴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규칙을 재정의하는 상위 차원으로 도약했듯이, AI 시대 인간의 역할은 '더 빨리 하기'가 아니라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에 있습니다.
결국 같은 평면 위에서 더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게임의 판 자체를 바꾸는 것.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하는 인간의 선택은, AI 시대에 오히려 더 압도적인 레버리지를 갖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조직의 리더에게도 말이죠. 여러분은 어떤 차원의 미래를 당겨오실 건가요?
놀란은 <테넷>이 개봉하기 5년 전, 2015년 프린스턴대 졸업식 연설에서 이런 이야기를 졸업생들에게 들려줍니다.
여러분이 꿈을 쫓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대신 현실을 쫓기를 바라요.
I don't want you to chase your dreams. I want you to chase your reality.
졸업 연설에서 "꿈을 쫓으라" 대신 "현실을 쫓으라"라니. 그리고 이런 내용을 덧붙였죠.
"우리는 '파괴적 혁신'이나 '알고리즘' 같은 모호한 단어 뒤에 숨어, 우리가 세상에 미치는 실제 영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 단어들 뒤에 있는 진짜 현실(Fundamentals)을 직시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진짜로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한 일로 인해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잠재력은 무한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AI가 고도화될수록, 현실이 아닌 시뮬레이션 뒤에 숨기가 쉬워집니다. AI가 수천 개의 시나리오를 돌려서 "이 행동을 하면 성공 확률이 99%입니다"라고 제안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그 버튼을 누르고, 현실의 빈틈을 자기 손으로 채우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어차피 AI가 다 할 텐데'라는 시대적 허무주의 앞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이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믿음, 결정된 확률을 '확정된 현실'로 바꾸는 것. 그것이 이 시대에 인간이 가진 최종 권한이 아닐까요.
닐이 과거로 돌아간 장면을 보면서 왜 가슴이 뛰었을까요.
닐이 미래를 바꿔서가 아닙니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닐이 죽을 걸 알면서도 걸어갔기 때문이에요. 네오가 트리니티를 선택한 장면에서 왜 감동했을까요. 그 선택이 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완벽한 알고리즘의 계산을 거부한 비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에요.
AI가 완벽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시나리오를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거는 행위는 할 수 없습니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복제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 저는 그게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완벽하고 효율적인 결과에 감동하지 않아요. 방향을 결정하고, 불가능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자기 것으로 안겠다는 의지에 감동합니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람과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힘은 데이터에 앞서, 이런 인간의 실존적인 결단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 개의 조각을 손에 쥐고 보니, 하나의 그림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그리고 올 거라고 믿는 세상의 그림.
AI가 모든 것을 예측하고 수행하는 시대에도, 사람들이 "어차피 AI가 다 해줄 테니"라고 물러서지 않는 세상.
속도가 아니라 차원으로, 효율이 아니라 결단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세상.
시뮬레이션 뒤에 숨지 않고 꾸준히 현실의 빈틈을 자기 손으로 채우는 세상.
그리고 완벽한 정답보다, 불가능을 향해 걸어가는 의지가 존중받는 세상.
그 세상이 정말 올진 모릅니다. 닐도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닐이 돌아간 건, 본인도 그 세상을 정확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세상이 옳다고 믿으며 그런 미래에 자기가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이 세계관 속에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려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제대로 기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번 글에서 설명한 세계관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를 보여줬다면, 앞으로의 기록들은 '그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설계도가 될 겁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다음 편부터는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문득, 이 글을 쓰면서 궁금해졌어요.
혹시 여러분에게도 —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이게 맞다"고 몸이 먼저 반응한 순간이 있었나요? 책이든, 영화든, 누군가의 한마디든. 그게 여러분의 방향을 바꾼 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p.s. 유튜버 요런시점 movie님의 심도 깊은 영화 분석 콘텐츠가 없었다면 이 모든 생각들은 발전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큰 감사를 전합니다. 혹시 글에 나오는 영화 속 철학들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제가 링크해둔 요런시점님의 해석 영상들을 꼭 보시길 추천드려요.
English ver. (Medium) What The Matrix and Tenet said to a Founder Who Had Stopped Mo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