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인간이 사라진다는데, 인간을 관리하는 우리는?

AI에게 패배하며 버틴 조직문화 컨설팅팀의 2년 방황기

by 누틸드



지난 글에서 저는 AI 시대에 전문가로서 느끼는 우울감에 대해 썼습니다. 전문성이 무너지고, 차별점이 사라지고, 실행이 멈추는 이야기. 그 글을 쓴 뒤로 많은 분들이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배경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전제가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지요.


2025년 4월, 쇼피파이 CEO 토비 뤼트케가 전 직원에게 메모를 보냈습니다.
"앞으로 사람을 뽑고 싶으면, 먼저 AI가 이 일을 못한다는 걸 증명하라."


같은 해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더 직설적이었죠.

"듣기 좋은 소리는 좀 그만합시다. AI가 5년 내에 화이트칼라 초급 일자리의 절반을 없앨 수 있다니까요."


기업에게 인간의 노동은 이제 당연한 게 아닙니다.


이 변화는 2023년 후반부터 우리 팀의 근간을 흔들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팔던 게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채용 및 조직문화 컨설팅, 리더십 교육, CEO 코칭까지 — "일하는 개인과 조직을 더 잘 일하게 만드는 방법"을 파는 팀이 우리였습니다.


일하는 인간이 확실하게 줄어든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는 게 당연했죠.

물론 그때도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는 방향의 파도를 타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게 기업이니, 실무를 뛰면서도 이 미래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누틸드의 방황기.

이번 편은 그 2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공유하려 합니다. 여러분은 그 시점에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셨는지 떠올리며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4년 상반기, 서울

대중화를 꿈꾸다, 우리가 무너졌다



2024년, 저희 팀은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4년간 42개 고객사의 조직문화와 리더십 컨설팅을 하며 꾸준히 쌓아온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좋은 질문을 설계해 주고, 피드백 구조를 만들어 주고, 채용의 질을 높여 주고, CEO와 리더들을 성장시켜, 결국 문화를 바꾸는 일. 그동안 이 방법론들은 직접 대면하는 고객사에게만 소수로 전달할 수 있었죠. 그래서 우리의 오랜 고민은 하나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수할 수 있을까?


때마침 AI가 등장했습니다. AI는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어요. 누틸드가 해결하는 조직문화 파운데이션 만들기, 카피라이팅의 사고구조, 코칭 질문 설계, 채용 브랜딩 분석 프레임워크 등을 방법론으로 뽑아내서 AI에 태우면, 어떤 팀이든 바로 탑재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던져온 질문이 곧 데이터고, 설계한 과제가 곧 프롬프트라면 — 누틸드 방법론 자체를 통째로 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흥분할 수밖에 없었죠.

채용 면접 질문 빌더, 조직문화 진단 툴, 온보딩 어시스턴트, 기대치 빌더. 심지어 리더와 팔로워 사이를 연결하는 코칭 어시스턴트까지. 만들고 싶은 것이 끝도 없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얘기를 하다 보니, 이상한 허탈감이 모두에게 찾아왔어요.

"근데 그럼 우리는 뭘 하는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기업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누틸드다움으로 자랑스러워했던 능력들 —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 사람과 조직의 숨겨진 맥락을 읽는 능력,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논리구조를 만드는 능력 — 을 AI에게 모두 주고 나면, 우리는 어떤 것의 전문가인 건지가 모호해진 거죠.


우리의 방법론을 더 잘, 더 넓게 퍼뜨리겠다는 전략은 태어나기도 전에 무의미해지고 있었습니다. 병목을 부수려 하니, 그 안에 있던 우리 자신의 존재 이유도 같이 무너지게 된 거죠.



우리가 하는 일이 프롬프트가 된다면, 우리는 뭘 파는 사람들이지?








2025년 상반기, 서울

이걸 우리가 팔아도 될까요?



그 이후로도 비전 워크숍과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시도가 계속됐습니다. 2025년 초에는 이미 64개의 누적 고객사 수를 달성했고, 높은 만족도에 꾸준히 연속 구매로도 이어졌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전했어요 — 우리의 방법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때부터는 반대로, AI가 모든 걸 정복하더라도 할 수 없는 건 뭘까?를 탐구했습니다.

그러다 미팅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죠.


주체성.

비전 워크숍을 한창 진행하던 중에 시니어 컨설턴트인 헤이즐이 먼저 짚어냈어요.

"우리의 업을 분해하다 보니, 우리의 차별점은 '주체성'에 되게 집중해 왔던 거라고 생각해요. 대표든, 팀장이든, 팀원이든 — 모두가 스스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관점과 방법론을 주는 게 핵심 아닐까요."


동의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수년간 진짜 팔아온 건, 기능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정의 내리고 기준을 세워, 그것을 향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방법"이었거든요.



실제로 조직문화와 리더십, HR 변화에 있어서 그것 밖에는 지속가능한 성공법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고객사들이 '누틸드와 함께 하면 달라요'라고 얘기하는 본질이기도 했죠.


잠시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걸 더 깊이 파악하기 위해 뇌과학과 심리학, 철학을 파고들었어요. 전문 용어들이 쏟아졌고, 확실한 지적 희열이 있었습니다. "다음 시대의 인재상은 자아력이 강한 사람이다." 이 한 문장이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죠.


그때 팀 안에서 가장 서늘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주니어 컨설턴트인 단이 무거운 입을 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원래 잘해오던 걸 방법론으로 만들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접목하게 된다면 — 우리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고 외부를 설득시키기 어렵지 않을까요?”


시장의 눈으로 보면, HR 컨설팅팀이 갑자기 인간의 내면과 자아를 다루겠다고 들릴 테니까요.


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요청은 여전히 HR/조직문화 방법론이었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거든요. 비유하자면 조직문화 책을 폈는데 기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거죠. 경영서적인 줄 알고 샀는데 인문사회책인 느낌.


한 발 나아갔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아직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25년 11월, 방콕

누틸드는 망해도 괜찮으니 뭘 하고 싶어요?



2025년 말, 방콕으로 집을 옮긴 제가 헤이즐과 단을 불렀습니다.

작년은 컨설팅과 코칭으로 최대 매출을 찍은 해였어요. 함께 만든 성과를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도 보냈지만, 진짜 목적은 하나였죠. '앞으로의 미래상'을 다시 함께 맞추는 것.


하지만 방콕 워크숍은 사업 전략 회의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길어지는 방황 속, 보이지 않는 미래에 지쳐 가는 모두가 각자의 바닥을 꺼내놓은 시간이 되더라고요.


핵심 질문은 하나였어요. CEO에게 공급하는 전문 서비스로 커온 우리가 대중에게 팔려면,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을 얼마나 타협해야 가능할까?


대중에게 쉽게 팔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허영심이나 얕은 불안을 달래주는 가벼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거든요. 본질적으로 '문제를 꼭 해결하는 게 중요했던' 우리의 기존 관점과는 너무나 달라서 문제였죠. 당시 외부 협업을 하며 뼈아프게 느꼈던 게 컸습니다.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고객마저 아우르는 게 매스구나.'
‘문제해결은 크게 중요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는 자신의 기분을 채워주는 게 더 중요하구나.’


또한 대중화로 빠르게 성공하는 방식은 결국 동경으로 이끌어내는 세일즈라고 느껴졌어요. SNS에서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라고 현혹해서 팔고, 정작 돈을 쓴 사람의 삶은 바뀌지 않는 구조. 효능 없는 건강식품을 유명세로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사업 — 누군가가 탄식하듯 말했죠. "그건 효소팔이가 되는 거 아닐까요?"


동시에, 비전만으로는 팀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현실의 무게도 있었습니다. 이상은 높은데 매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괴리감. 함께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비전을 기다리며 버티는 시간 동안 그 돈을 벌어내야 한다는 압박.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긴장이 이틀째 밤에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비즈니스적 타협안 대신, 질문의 차원을 아예 틀어버렸습니다.



"지금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극단으로 가보시죠. 누틸드라는 껍데기를 다 벗어던지고, 각자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을 꺼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그만해도 돼요."



회사의 생존이 아니라, 각자 개인의 바텀라인. '타협할 바엔 차라리 망하자'라고 선언할 수 있는 밑바닥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팀을 위해, 회사를 위해 억눌러왔던 날것들이 쏟아졌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 밤 이후로 우리 셋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뭘 만들 것인지의 합의가 아니라, 무엇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인지의 합의. 사업 계획이 아니라, 우리 팀이 누구인지를 바닥에서부터 다시 정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결론은 선명했죠. 대중적 성공을 위해 공급하는 가치의 기준을 낮추는 것은, 우리 셋 모두에게 마지노선 아래였습니다.


대중이 우리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진짜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 그들이 성장하고 나아지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 그게 우리의 다시 찾은 선언이었죠.








2026년 1월, 서울

졌다고 인정하니 오히려 보였다



방콕에서 팀원들을 돌려보낸 후, 대표의 책임감은 무거웠습니다. 방향을 찾기 위해 혼자 많은 것을 읽고 생각했는데요. 가장 큰 충격을 준 것 중 하나가 구글 딥마인드의 다큐멘터리 <The Thinking Game>이었습니다. AGI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 다큐를 보면서,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거든요.

결론: 우리는 이제 지적 능력에서 AI를 이길 수 없다.



서울 출장으로 만난 팀에게 이 메모를 공유했을 때, 미팅룸이 무거워졌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말을 소리 내어 인정하고 모두에게 공유한 순간 — 뭔가가 풀리는 듯했어요.


사실 지는 게 무서웠던 건 아니었거든요. '아직 안 졌다'라고 버티며, 경쟁하듯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느라 소모하던 에너지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그 에너지가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AI가 모든 지적 노동을 해준다면, 인간에게 남는 건 뭘까?


분석도, 생산도 AI가 더 잘한다면 — 그래도 남는 게 있었습니다. AI는 어떤 길이든 최적의 경로를 찾아줍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정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죠.


목적지를 정하고, 무엇이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예측하며 방향을 설계하는 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모든 실행의 방향을 설계하고 무엇이 옳은지를 결단하는 사람.


"결국 설계자만 남지 않을까요?"


제 나름의 결론을 던졌을 때, 미팅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몇 마디가 서로 이어지다 단이 질문했죠. "근데 그런 설계 능력도 방법론화되면, 결국 AI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기능적 판단은 AI가 점점 더 잘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구분하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설계라는 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진입해야 의미가 있거든요. 니즈를 가지고 목적을 탄생시키고, 움직일 의지를 만들어내는 건 사람밖에 못한다고 생각해요."


AI가 완벽한 지도를 그려줄 수 있다 해도, '어디로 가고 싶은가'를 결정하는 건 오직 인간의 몫입니다. 인간에게 남는 것은 목적을 정하고, 결단하고, 책임지는 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덧붙였어요.

"그리고 이걸 넘겨주지 않으려는 건… 그냥 인간이 포기 못할 것 같아요." 논리가 아니었어요. 바닥에서 올라온 직감이었죠.


그러자 날카롭게 물었던 단이 말했습니다.

"그러네요. AI가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 내 삶의 주권과 마찬가지인 이걸 AI에게 넘길까 싶긴 해요."


결국 우리는 변화하는 미래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보게 된 거죠. 그러니 주체적인 설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자.


2년간 세 번 무너지고, 세 번 질문을 바꾼 끝에 도착한 곳.

"졌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가 서야 할 자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깨지고, 오래 고민했는데도



당시 "설계하는 자"라는 직감이 생겼을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지금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에게도 찾아 나가야만 밝힐 수 있는 지도죠.


하지만 이 긴 여정을 돌아보면,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2년 전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더 잘 팔지?"였습니다.
그것이 "뭘 팔아야 하지?"로, "누구를 위해 할 건데?"로,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꼭 해야만 하는 게 뭔데?"까지 내려왔어요


사람을 다루는 일을 해온 팀이, 결국 '사람이란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를 묻게 된 겁니다.

답을 찾은 게 아닙니다. 질문이 바뀐 거죠.


그런데 질문이 깊어질수록, 한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기술이나 전략이 아니라,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더 나아질 수 있는가"에 가까운 질문에, 경영 프레임워크로는 답할 수 없었거든요. 우리가 옳다고 믿는 세계는 무엇인지, 무엇이 사람에게 진짜 기여인지가 신념으로 채워져야 했죠. 그게 없다면 우리 자신의 확신도, 고객에게 "이게 좋다"라고 말할 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제 경험상 이 관점이 탄탄하다면 창업자도, 팀원도, 고객마저 일관된 방향을 가질 수 있고 의심이 없습니다. 없다면 매번 흔들리고 맞춰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게는 비즈니스 모델보다, 전략보다 먼저 세워야 하는 영역이었죠.


그래서 누틸드의 처음이 그랬던 것처럼, 신념의 근거를 찾아 나서게 됐어요. 그리고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동시대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이 글이, 같은 바다 위에서 방향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하나의 항해일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당신의 팀도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나요?

그동안 어떤 생각들을 팀과 공유하며 일치시켜 오셨을지 궁금합니다.





English ver. (Medium) If Working Humans Disappear, What Should HR Even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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