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슈퍼맨이 됐고, 동시에 우울해졌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누틸드 대표로 즐겁게 일했던 지난 날과 달리, 최근에 저는 꽤 오랫동안 AI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특히나 창업자는 본래 변화하는 미래를 관찰하며, 그에 기반해 우리가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을 비전으로 제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게 CEO의 역할이죠. 그런데 매일 뒤통수를 때리는 인공지능의 파괴적 혁신 때문에, 2년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틀려질 답을 선언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래서 선언하지 못하는 비겁함.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을 보니, 이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꽤 오랫동안 실력을 쌓아온 사람들. 스스로 전문가라 믿을 만큼 노력해 온 사람들. 무언가를 만들고 이미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 깊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편해졌다는데 왜 불안한 건지. 좋아질 일 밖에는 없다는데 왜 우울한 건지.
그 이유를 저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풀어보려 합니다.
2024년부터 조금씩 예상은 했었습니다. AI가 발전되면 전문적인 서비스가 얼마나 쉬워질지 말이죠. 하지만 2025년 중반 어느 순간 ‘어? 이게 되네?’의 횟수가 너무 빈번해진다는 걸 느꼈죠. 그리고 퀄리티마저도 특이점을 지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0 to 1 해야 하는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연쇄적인 충격을 받고 있었는데요.
예전 같으면 며칠을 고민하고, 몇 권의 책을 뒤지고, 레퍼런스를 모아서 겨우 만들어냈을 결과물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은 본질의 니즈를 발견하고, 그에 최적화된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고 인터뷰이 혼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답을 찾을 수 있게 질문을 구조화하는 일. 제가 수년간 훈련하고 전문화하며 쌓아온 기술이었죠. 그런데 AI와 함께 작업하니, 그 과정이 너무 빠르고, 너무 쉽게 끝나버렸습니다.
물론 결과물의 품질이 좋았기에 기뻐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이상한 무력감이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어느 날 이런 말을 하게 됐어요.
이제 만드는 건 무서울만큼 쉬워졌어요. 이번에도 AI가 한 게 너무 많아서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었거든요. AI를 쓰면서 나한테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니까 오히려 이걸 돈 받고 파는 게 맞나 싶더라고요.
내가 긴 시간 투자해 갈고닦아온 기술이, AI에게는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을 때. 그동안 '장인 정신'이라고 믿으며 쌓아온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 '전문가'라는 타이틀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서늘한 감각. 그게 가장 먼저 저를 무너뜨렸습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우리가 알던 형태의 컨설팅은 끝났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팀 역시 같은 질문 앞에서 멈춰 서야 했습니다. "우리가 해온 이 일은, 앞으로도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한 발 뒤에서 보니, 이건 누틸드라는 한 회사의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어떤 전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송길영 작가님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말하듯, 의사가 되기 위해 수십 년을 수련하고,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수년을 공부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수천 시간을 투자하는 것. 이것이 당연했던 세계에서, '축적의 시간'은 곧 권력이었습니다. 전문화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전문가 양성은 어려워지고, 그래서 전문가의 총량은 한정되며, 그 희소성이 곧 가치가 되는 구조. 인류 문명은 그렇게 점점 무거워져 왔습니다.
그런데 AI가 이 전문성의 파편을 재조합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조직이나 깊은 수련 없이도, AI와 결합한 가벼운 조합이 더 큰 성과를 만들어냅니다. 송 작가님이 이름 붙인 것처럼 문명 자체가 '경량화'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허탈감은 단순히 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축적의 시간이 권력이 되던 문명 자체가 저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을 비웃듯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버렸죠.
전문성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축적을 통해 격차를 벌리는 게 당연했습니다. 남들이 안하는 노력을 했으니까, 능력을 키우려 경험을 쌓았으니까, 그를 통해 포지셔닝을 잘했으니까 — 그래서 격차가 나는 것. 그것이 지식사회 속 공정한 게임의 룰이었습니다. 그 룰 안에서 열심히 뛴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 한 마디로, 내 능력과 노력으로 남들과 다르다고 구분될만한 인정을 받게 되면 자연스레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시장에서 인정하는 축적의 시간을 쌓지 않은 사람들이 갑자기 혜성같이 등장해, AI를 통해 동일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습니다. 알고리즘 위에서는 진짜 실력자와 AI를 잘 쓰는 누군가가 구분이 안 됩니다. 반응만 좋으면 단숨에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 내가 만들어온 전문 영역에서 모든 진입장벽이 사라져 버린 세상. 물론 저도 덕분에 상상할 수 없던 성역을 깨고, 슈퍼맨처럼 느껴질 만큼 못할 일이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쌓은 것도 급속도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만 했죠.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구나. 내가 'one of them'이 되어버렸구나.
AI 업계에서 일하는 한 지인이 최근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죠. 그는 누구보다 다양하게 AI를 활용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AI로 음악을 만들고, 서비스를 뚝딱 만들어내는 수준의 실력자. 그런데 그런 결과물들이 사방에서 범람하는 걸 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나사가 빠진 것처럼 기운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런 건 나만 할 수 있지!"라고 믿어왔던 자부심 — 그것이 삶의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의 연료였는데, 그 연료가 바닥난 느낌이라고.
그는 이것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내가 나라고 믿어왔던 정체성의 기반이, 기술 변화로 침식되는 경험." 실제로 저와 동시대를 살며 전문가라고 불렸던 지인들이 몇 년째 새로운 도전을 못하고 있는 건 이 이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경쟁이 치열해진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대체 가능한 시대에서, 나만큼은 대체 불가능하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해 보일 때 오는 무력감. 나의 고유함이 사라지고, 그저 수많은 릴스 중 한 개의 영상 정도가 되는 느낌.
다르고 싶은데 다를 수 없는 것. 이것이 AI가 만들어내는 우울감의 정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성이 흔들리고, 차별점이 사라지면, 그다음에 오는 건 실행의 마비입니다.
또한 저는 작은 팀을 이끄는 창업가이자 대표입니다. 스타트업은 본래 10년 뒤를 보고 점을 찍어야 하는데요. 그 먼 미래에 배팅하는 것이 창업가의 일이죠. 그런데 솔직히, 10년은커녕 1~2년 뒤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만드는 서비스가 내년에도 의미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언제 AI 서비스에 잠식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 해봤자 1년 먹을 아이템밖에 안 보이는데, 거기에 전부를 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주춤거립니다. 움직이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열심히 쌓고 있는 이것이 내일이면 파도에 쓸려갈 모래성은 아닌지. 혹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의심이 열정을 갉아먹습니다.
그런데 이 마비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답을 찾기 위해 매달리는 바로 그 도구가 문제입니다.
MIT 미디어랩은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AI를 사용하여 글을 쓴 그룹과 아무 도구 없이 직접 쓴 그룹의 뇌 활동을 비교했더니, AI를 사용한 그룹은 뇌의 연결성이 현저히 약해져 있었습니다. 기억력도, 자기 글에 대한 주인의식도 떨어졌습니다. 연구진은 이것을 '인지적 부채(Cognitive Debt)'라고 불렀습니다. 편리함을 빌려 쓸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이것은 비단 글쓰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불안하니까 더 많은 정보를 찾고, 더 많은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더 많은 AI 도구를 시도합니다. 뒤처지는 것 같은 공포에 자극적인 정보에만 반응하면서, 정작 앉아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불안한 이유가 세상이 너무 빨라서만은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생각하는 근육을 쓰지 않으니, 자기만의 지도를 그릴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또한 창업가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지금 자기 분야에서 무언가를 쌓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 "이 방향이 맞는 건가?" "이 축적이 의미가 있는 건가?" — 같은 질문 앞에서 멈칫하고 있을 겁니다. 내가 믿고 있던 세계가 공고했던 사람일수록, 그 멈칫거림은 더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며, 아마 어딘가에서 "이거 내 이야기인데"라고 느끼신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저도 그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지적 능력에서 우리가 AI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였습니다. 논리도, 분석도, 생산도 AI가 더 잘한다면 — 인간에게 남는 건 도대체 뭘까? 어느 날 저는 이런 메모를 적어 두었습니다.
원초적인 세계관이 흔들리니까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고, 그게 흔들리니 무엇을 주장해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주는지에 대한 것도 흔들리고. 나라고 믿는 것들이 모두 흔들린다.
전문성이 무너지고, 차별점이 사라지고, 실행이 멈추는 것. 이 모든 증상의 뿌리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질문이 단단했던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직장에서 주어진 역할이 전부일 때는 솔직히 필요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잘할 것인가'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AI가 '어떻게'를 통째로 가져가버리니, 갑자기 '왜'만 덩그러니 남아버린 겁니다.
처음으로 이 질문과 마주한 사람들에게 — 이건 낯설고, 무섭고, 막막합니다.
'
저도, 저희 팀도 아직 뚜렷한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 AI와 치열하게 작업하면서, 한 가지 확신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는, 가장 먼저 자기만의 지도를 그려내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된다라는 것.
옳은 길이냐 그른 길이냐가 아니라, 머릿속에 어떤 방향이든 그려져 있는 사람만이 "하면 되지"하고 한 발을 뗄 수 있다는 것. 반대로 말하면, 지금 멈춰 있는 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지도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허탈감과 불안을 다스리고, 다시 키를 잡고, 어디로 항해해야 하는지 — 저도, 우리 팀도 그 지도를 그리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2021년 12월 27일, 누틸드를 첫 창업하며 썼던 항해기처럼 말이죠.
이 글이 그 첫 번째 신호탄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 글 : 일하는 인간이 사라진다는데, 인간을 관리하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