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게 바로 "사랑" 인 것 같다. 90%의 T인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 사랑이나 여타 다른 감정들도 구조적으로 해체하고 작동원리를 분석하는 걸 본능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즐겨한다.
MBTI에 대해 혹은 MBTI를 언급하는 에세이는 쓰고 싶지 않다고 혼자만의 다짐을 하긴 했었는데, 흔해빠진 사랑에 대한 에세이로 보이기 싫어서 언급을 하게 되었다. 어그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발렌타인데이 기념으로 평소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써보았다. 보통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브런치에 올릴 때 하루에서 이틀이면 글을 완성했는데, 이번 글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만큼 사랑이란 주제는 어렵고 복잡하고 난해해서 그런 것 같다. 여하튼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기에 진지함 보단 재미로 읽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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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단순한 감정 혹은 생물학적 욕구로'만' 처리하는 건 마치 인간이 음식을 섭취하는 이유는 '오롯이' 생존을 위해서다라고 말하는 매우 단편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단순히 하루 칼로리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만 음식을 먹지 않는 다. 맛집에서 기가 막힌 메뉴를 먹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기도 하고, 맛집 탐방을 하러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별, 나이, 국적 불문하고) 느낀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이끌림 혹은 번식을 위한 생물학적 행위를 넘어 다양하고 복잡한 프로세스들이 얽히고설킨 아주 신기하고 미스터리 한 감정이다.
사랑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을 희생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의 뇌와 몸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 당연히 우리는 우리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나는 오롯이 나의 오감으로 이 음식을 느낀다. 나는 죽을 때까지 절대 상대가 이 음식을 어떻게 맛보고 느꼈는지 알 수 없다. 아무리 그 사람이 나에게 맛을 설명하더라도 그건 간접적인 경험일 뿐, 내가 직접적으로 그 사람이 느낀 걸 알 수 없다. 절대.
맛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난관을 부딪힐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에서 대부분의 큰 다툼은 가까운 사람 (가족, 배우자, 친한 친구 등)과의 생긴 작은 마찰이 종종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산불처럼 커지는 데, 그건 우리가 본능적으로 내가 느끼는 생각 및 감정을 가장 먼저 인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혹은 사회성이 발달되었거나 반복적인 학습이 되었을 경우) 비교적 빨리 그다음 스텝인 타인은 무슨 생각 및 무엇을 느끼는 지로 넘어간다. 상대의 의도와 논리를 최대한 이해해보려 한다. 미성숙한 사람은 두 번째 스텝이 늦게 오거나 최악의 경우 아예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습관적인 노력과 연습이 없는 한 우린 평생 나 자신밖에 모르고 내 생각이 옳다고만 고집부리다 보면 곁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 우물 안 스쿠루지가 될 것이다.
인간은 물리적인 구조 (나의 인지 및 사고체계는 내 뇌 안에만 존재하는 구조) 때문에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우린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만큼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내가 언젠간 죽을 거라는 걸 아는, 즉 나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아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자원은 한정적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린 이기적이며 손해를 안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근데 사랑은 이런 자기중심적인 인간을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 우린 기꺼이 우리의 한정된 자원, 감정, 에너지, 시간을 할애하고 심지어 희생하기도 한다.
도대체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의 구조적 레이어를 하나씩 뜯어보면 크게 3개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1. 감지 (화학반응) -> 2. 인지 -> 3. 판단 (윤리)
1. 감지 (화학반응) 단계
사랑의 시작은 그저 화학현상이다. 사랑은 우리의 뇌에 캐미컬들이 분주하기 이리저리 움직이고 상호반응을 일으키며 호르몬을 생성한다. 빠르면 0.2초 만에 도파민, 아드레날린, 노르에피네프린, 옥시토신의 호르몬이 생성됨으로써 우리의 뇌는 황홀함(euphoria)을 느끼고, 심장박동수는 빨라지고, 강한 이끌림을 느낀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이런 화학반응의 결과다. 이런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친구 혹은 아는 지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형으로 외모를 일 순위로 뽑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내 뇌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선 우선 우리가 가장 빨리 그리고 제일 먼저 직감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게 상대의 외모이기에, 그 외모가 나에게 호감형이어야 한다.
외모를 안 본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전반적인 미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잘생겼거나 예쁜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더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가령 색깔이나 라면에도. 누군가는 핑크색보다 검은색을 선호할 수 있다. 그게 딱히 검은색이 더 예쁘고 멋진 색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겐 검정이 좋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누구나 외모를 본다 다만 그 외모는 본인의 기준에서 호감형인 것이다.
이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자기중심적이다. 대부분 본인의 개인적인 니즈와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
1. 설렘/호기심 같은 도파민을 충족
2. 외로움을 충족
3. 성적 욕구를 충족 (단순 성관계뿐만 아니라 스킨십 caress 니즈 포함)
4. 인정욕구 (누군가에게 특별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5. 나의 가치/자존감 상승 욕구 (높은 부/명예/신분/권력자이거나, 외모가 뛰어난 사람과 사귀거나 결혼함으로써 나의 가치와 신분도 상승하고 싶은 욕망).
표면적으론 기꺼이 본인의 시간, 돈, 에너지 및 자원을 써가며 상대를 만나지만, 사실 이 단계에선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나 개인의 욕구 해소를 위한 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사랑이 단순 이 첫 번째 단계 화학반응에만 머문다면, 그 어떤 사람도 3개월 이상 연애를 하지 못할 테다. 호르몬이 쏘아 올린 사랑이란 공은 빨리 올라간 만큼 빨리 내려온다. 순간의 설렘, 호기심과 욕망은 진정한 사랑이라기 보단 한순간의 불장난에 더 가깝다 (infatuation; 이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콕 짚어주는 한글단어가 없는 것 같다). 아 근데 진정한 사랑이라는 표현은 너무 상투적이라 쓰고 싶지 않다. 대신 모래가 아닌 튼튼한 콘크리트 위에 지어진 건강한 튼튼한 사랑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두 번째 단계인 인지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
2. 인지 단계
인지 단계는 간단하게 타인이 내 삶에 깊숙이 침투한 걸 인지한다는 단계다. "나"라는 매우 개인적인 삶과 공간에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타인이 그것도 내 삶에 가장 깊숙한 공간에 들어오게 허락하고 수용한다는 건 매우 비논리적 행위이다. 이득보단 불편함을 더 일으킨다.
나의 물리적인 공간과 내 일상 스케줄에 크고 작은 임팩트를 끼치기 시작한다. 혼자일 땐 자유롭고 일반적인 사고회로를 했었더라면, 이젠 한 단계 엑스트라 스텝이 더해진 셈이다. 예를 들면 내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위해서 20개의 공식과 알고리즘을 썼었더라면, 이젠 30-40개의 공식과 알고리즘을 써야 한다. 주말에 같이 갈 음식점을 고를 때도, 단순히 나의 취향만 고려하는 게 아닌, "그 사람"의 취향도 생각하여 타협해야 한다.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어느 순간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도 공식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빡센건, 나의 정신적 공간 또한 침투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깊은 관계를 맺을 때 우린 우리의 가장 취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때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에게 보여주게 된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 단계가 매우 어려워 회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은 완벽주의자라면 평소엔 철두철미하게 살아왔지만 "사랑"이란 감정으로 인해 흐트러지는 본인의 모습에 실망하고 나약하다며 채찍질할지도 모른다. "사랑"이 내 삶에 침투하면 나도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은 때론 우리의 정신세계에 너무 깊게 침투하여 상대가 나의 소유물이라는 착각에 이르기도 한다. 일상생활부터 깊은 대화까지 삶의 여러면을 공유하며 애정이 깊어지다 보니 상대를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기보단 내 삶의 일부분, 즉 나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매우 큰 착각을 한다.
가장 흔한 예시가 잔소리다. 인간은 모르는 사람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다. 사실 잔소리를 하기 위해선 엄청난 에너지가 할애된다 (상대의 행동 관찰 -> 파악 및 분석 -> 행동지침 생성 -> 상대에게 전달 (aka 잔소리)).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나의 잔소리가 실제로 상대의 행동을 바뀔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즉 잔소리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좋지 않은 비효율적인 행동이다.
결혼하고 나면 결혼 전보다 잔소리가 느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제 나와 한 몸이며 한배를 탔으니 상대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진다. 재밌는 건 그 요구사항들이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게 아니라 "나는 하지만 너는 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한다고 해서, 나의 배우자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건강을 위해 배우자도 나와 함께 운동을 하길 바랄 순 있으나, 그걸 강요하며 잔소리를 할 권리는 없다. 상대를 나의 연장선 혹은 나의 일부분으로 보는지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건 부모-자식 간의 사랑에도 성립된다.
또한 상대방의 감정 및 행동은 내 뇌가 아닌 상대의 뇌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예측불가능이다. 즉, 나의 통제권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무리 상대가 알관적인 편이라 해도 상대의 생각 및 감정을 내가 100% 알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행동을 낳게 되는 데, A) 누군가에겐 이게 불안함 혹은 의처증을 일으킬 수 있고, B) 누군가에겐 이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통제하려 하기도 하고, C) 누군가는 아예 방치 즉 포기를 하게 된다.
상대가 주말마다 클럽을 가고 술을 마시러 갈 경우, A타입은 시시각각 위치를 확인하거나 5분마다 연락을 하고, B타입은 애초에 클럽이나 주말에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하고, C타입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마음속에 상처와 분노가 섞여 화병이 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상대에게 나의 의견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함께 서로를 존중하는 룰을 만들어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일 테다.
이 두 번째 스텝, 인지 스텝에서 많은 커플들이 이별한다. 생각해 보면 놀랍지 않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두 번째 스텝까지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나와 깊은 관계 및 유대감을 맺는다는 건 그만큼 나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나 또한 상대의 밑바닥을 보는 것이다. 나 자신과 상대의 이 추함과 나약함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 수용을 하게 될 때 사랑의 3번째 단계로 비로소 넘어간다.
3. 판단 (윤리) 단계
첫 번째 <감지> 단계의 시작은 자동적인 화학반응이었다면, 두 번째 <인지> 단계는 생각을 하는 과정이다. 내 일상에 들어온 상대를 받아들이고, 상대와 나의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판단> 즉 선택이다. 세상에 천생연분은 존재하지 않는 다. 나와 100% 절대적 궁합이 잘 맞는 사람? 그런 거 없다. 물론 굵은 결은 비슷해야 한다. 삶의 가치, 기준, 어느 정도의 취향 및 성향의 오버랩은 있어야 함께 재밌게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재밌게 사는 게 최고다.
그러나 모든 게 나와 맞을 수 없다. 심지어 나와 가장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형제자매와도 나는 너무나 다른 인간이다. 그러니 당연히 연인관계는 어렵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과 너무 많은 걸 공유하고 부대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수시로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내가 상대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바뀌길 바랄 것인가? 나 자신을, 나의 욕망을 우선시할 것 인가? 아니면 나의 욕망을 줄이고 상대를 우선시할 것인가?
판단의 본질은 결국 "윤리"의 문제다. 지독하게도 자기중심적인 우리는 윤리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 관계 속에서 내가 내리는 선택은 나뿐만이 아니라 상대에게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결혼을 잘못해서, 인생 송두리째 날아가는 실제 일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꽤 많이 일어난다.
그들도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러려고 한건 아니었을 테다. 아까 1단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 3단계에서도 상대가 나를 혹은 내가 상대를 나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너무나 외롭기에, 이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면 나의 가치가 떨어지기에 혹은 부를 누릴 수 없기에, 다양한 이유로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나의 숨겨진 욕망을 은밀하게 감춘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가 하면 더 심한 경우 아예 자각을 못하거나 혹은 일부로 더 악용하는 사람도 있다.
극한의 효율과 수익화를 선호하는 현재 사회에서 안타깝지만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이라는 관계에서도 내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계산하는 게 납득이 되는 사회다. 이게 옳고 틀리다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사랑은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시장의 프레임으로 사랑을 프로세스 하면 진정성 있는 사랑을 마주할 확률이 낮다. 관계 속 선택을 내릴 때 나를 위한, 나에게 유리한 걸 선택할 테니까. 만약 나도 상대도 둘 다 자본주의적 시장의 프레임으로 사랑을 하고 관계를 맺는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충만함과 만족감이 동반하진 않을 테다.
건강하고 굳건한 사랑은 윤리로 기반하여 신뢰와 책임으로 무장된다. 이 관계 속에서 때때로 필요할 땐 보상이 있든 없든 희생을 하고, 서로를 믿고 존중하며 이 관계를 책임진다. 내가 상대에게 상습적으로 무언가를 더 바라거나 오롯이 자기중심적으로 관계를 이끌고 간다면 신뢰는 붕괴 되고 상대가 그나마 지키고 있었던 책임감마저 소멸한다. 그 누구보다 가깝던 사이가 남보다도 더 못한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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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사랑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 항상 황홀하고 달고 행복하기만 하지 않다. 사랑은 고통과 상처와 분노와 슬픔을 유발한다. 때론 귀찮고 원하지 않지만 상대를 위해 맞춰주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희생한다. 누가 봐도 사랑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
만약 내가 외계인이었다면, 지구인의 사랑을 보았을 때 절대 이해하지 못할 테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어렵고, 힘들고,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이고 복잡한걸 스스로 선택해서 한다니. 쯧쯧. 이래서 지구인들은 안 돼라며 혀를 끌끌 찼을 테다.
그럼에도 우린 사랑을 한다. 쉽지 않고, 마냥 꽃길만을 걷지 않을걸 알고, 내가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을 수도 있음에도, 아픔과 상처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음에도 우리는 기어코 사랑을 한다.
왜 우린 사랑을 하는 걸까?
사랑만이 유일하게 "나"라는 존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롭게 발전 즉 내적 성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실패했던 연애 었을 지어라도, 그 경험을 통해 우린 얼마나 많은 성장을 하는 가. 인간은 태생적으로 더 나아가고 성장하고 싶어 한다. 성장이라는 게 비단 자기 계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새로운 걸 경험하고, 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남으로써 자기의 삶이 확장하는 것이다.
그 어떠한 인간도 제자리에 머물러 도태되고 싶어 하지 않는 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싫든 좋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다른 누군가와 혹은 과거의 자기 자신과 비교한다. 타인이든 과거의 자기 자신이든 누가 됐든 뒤처지고 싶어 하지 않는 다. 유행이 존재하는 이유도 정확히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두가 두쫀쿠를 먹는데 나만 안 먹는 FOMO도, 혹은 두쫀쿠라는 새로운 디저트를 시도해보고 싶은 호기심도, 결은 달라 보이지만 결국 본질적인 이유는 같다. 우린 뒤처지고 싫고, 성장하고 싶으며, 우리가 느끼는 호기심을 경험하고 싶어 함으로써 인생을 확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욕망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언젠가 죽음을 마주할걸 알지만 정확히 언제 그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살아있는 동안 나름의 최선을 다해 인생의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사랑을 통해 우린 넘어지고 다치고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수행하고 깎아나가며 레벨업을 하고 훨씬 더 나은 인간이 된다. 보상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희생과 배려를 하고 서로를 끊임없이 아끼고 격려하고 지지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해가 쨍쨍하든.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우리가 인생의 어떤 변곡점을 지나가든. 이 비논리적인 행위가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생은 쉽지 않다. 내 뜻되로 되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얽히며 부딪히며 일을 하고 살아나간다. 이런 고달프고 삭막한 인생에 필요한 오아시스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순간의 달콤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변함없이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마음의 안식처. 이게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이 닿는 대로 쓰다 보니 어느 부분에선 토픽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뭔가 횡설수설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읽기 편하게 예쁘게 포장해서 쓰기보단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위해 썼는데, 쓰고 나니 어째 나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야말로 이기적으로 상대에게 바라는 게 많은 지, 내가 상대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이래서 글을 써야 하는 거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평소 소음에 예민해서 잠을 잘 설치는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있을 땐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정말 편안하고 안전한 마음의 안식처가 된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