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나에게 보여줄게>
왜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것일까?
이미 과학적 근거로 답변이 제시되어 있는 질문이지만,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듣고 싶은 답은 아직 못 만난 것이라 생각해 본다.
아침 6시 40분이면 집에서 나서야 하는 출근길, 편도 약 1시간 40분의 먼 길을 다니며
피곤한 몸으로 직장 문을 들어서고, 하루의 업무가 지겹게 느껴지는 경우는 심심찮다.
그런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빨리 가는 것인가?
더 젊었고
하루가 더 재밌고
삶이 더 충만하다고 느꼈던 과거의 그 어느 시절보다
왜 시간은 더 빨리 가는 것인가?
올해 만 40세, 아직 젊은가?
나는 오래전에 자주 생각하던 게 있다.
'4'라는 숫자가 내게 덧입혀 졌을 때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라고.
친한 형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야 나이를 좀 먹어가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그만큼의 성숙함을 입었겠거니 하며 느끼려 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4'는 내 몸에 무거운 추를 달아 매우 깊은 바다에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야 보이는 것들과 깨닫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에
자극을 받고 움직여 보려 할 때
'4'는 내 안과 밖에서 자주 나를 막아섰다.
그때마다 나는 순순히 막혔다.
어쩜 그렇게 순순히 막힐 수 있었던 건지...
5월이 왔다.
나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느 시점의 과거를 계속 또렷이 직시하면서
그간 살아온 삶과는 많이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40년 동안 세워진 '나'라는 인격체가
40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나'를 얼마나 따뜻이 안아주고 다독여 줄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이전의 '나'가 차마 붙잡지도, 안아주지도, 응원해주지도 못할 만큼 참 많이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 40년의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자의식 강한 듯 살아왔으나
자신조차도 몰랐던 다용도 가면을 쓴 채 살아온 것이다.
왜일까?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는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삶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라면
아프지만 끄집어내어 어루만지고 다독이고 새로이 세워야 할 무언가가 있음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소리
내 안의 소리
진짜 나의 소리
한 사람으로서, 가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일 많은 자아를 가진 자로서
내고 싶었던 나의 소리
그 많던 나의 소리들을 지난날의 '나'는 철저히 외면했다.
혼란하게 만들 뿐이라며, 시간을 버리는 일이라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이게 더 편한 길이라며,
나보다 네가 먼저라며, 그게 난 더 좋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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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은 빨리 간다.
난 일분일초가 아까운 현재를 산다.
그래서 앞으로는 시간이 더 빨리 갈 것 같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니
앞으로 40년을 더 산대도 20년처럼 느껴질 것이다.
내게 주어진 20년의 바쁠 시간
바쁜지도 모를 만큼 차곡차곡 나의 목소리를 쌓아 올리며 살 것이다.
내지 않던 소리를 내는 것,
잠겨 있던 목을 푸는 것,
쉽지 않겠으나 그야 당연한 것. 쉬웠으면 진즉에 했겠지 않은가?
쉽지 않으나 상당히 재밌을
나의 소리 내기!
소리는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