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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Nov 03. 2017

아이슬란드를 디뎠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있던 일들

아이슬란드를 디뎠다.

빵 하는 소리에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머릿속은 하얗게 백지로 변했다. 높은 고층 빌딩 난간에서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등 뒤로 지면이 닿았음을 느끼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내의 손이었다. 나는 비행기 탑승 계단에 한 발을 둔 채, 다른 한 발은 활주로를 딛고 있었다. 아이슬란드로의 첫걸음. 나에겐 너무도 큰 의미를 가졌나 보다. 맘 속 기대가 한껏 부풀어 터져버렸으니 말이다. 아이슬란드 땅을 밟은 소감은 이러하다. 충격적이다.

오로라로 시작된 여행이니깐.

눈 앞에 버스 두 대가 문을 열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빙하 요쿨살론과 오로라 버스. 어느 버스든 우리가 타자마자 떠날 것임이 분명했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나선 승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은 신중하고 싶었다. 왠지 요쿨살론 버스를 탔다간, 오로라를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꼭 타요버스를 타야 한다며 줄 서던 네 살배기 조카가 떠올랐다. 나는 '버스가 버스지 뭐가 다른가'라며 혀를 차곤 했었다. 그런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이슬란드에 와서야 조카 녀석을 이해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로라 버스에 탑승했다. 스르륵 문이 닫히며 버스가 출발했다. "앞에 버스 타지 왜?" 아내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갸우뚱한 표정이었다. 서두르길 좋아하기에 앞 요쿨살론 버스를 타리라 예상했나 보다.

"그냥, 이번은 오로라 여행이니깐, 이거 탔어."

오로라로 시작된 여행이다. 머나먼 이 곳에 와서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슬픈 일일 게다. 이 버스를 탄 건 내 작은 기원이랄까.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곤 유리창을 향했다. 그녀도 오로라 보길 기원하는 건 아닐까. 우리의 기원이 하늘에 닿길 잠시나마 기도했다. 오로라는 하늘이 허락해야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초콜릿 공장을 빠져나가다.

잠시 뒤 버스는 공항 입구에 정차했다. 버스를 내려 짧은 통로를 지나자, 수화물 처리장이 나왔다. 이곳은 초콜릿 시음 회장이었다. 다양한 초콜릿이 커튼 너머로부터 분출되어졌다.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 네댓 개는 초콜릿들을 싣어나르기 바빴다. 갈색 초콜릿, 다크 초콜릿,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빨간색과 주황색의 원색 초콜릿. 사람들은 눈에 띄는 초콜릿이 나타나면 잽싸게 가로챘다. 대부분 컨베이어 벨트 주변에 서있었지만 게 중 성미 급한 사람은 커튼 근처에 서기도 했다. 


초콜릿이 커튼 밖으로 나오는 개수보다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둘러 쌓여 아내를 두어 번 놓치기도 했다. 거대한 서양인들 사이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우린 휴대전화로 전활 걸곤 높이 손을 흔듦으로써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때마침 눈에 띈 초콜릿을 낚아챘다. 검은색과 보라색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수화물 처리장을 빠져나왔다. 면세점이 수화물 처리장과 연결되어있었지만, 우리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50m 이동하기 조차 버거웠기 때문이다. 

101 편의점, 우측 하늘색 티셔츠 점원에게서 USIM을 사자.
아내와 USIM

101 편의점에서 USIM칩을 구매했다. 점원은 지쳤는지, 까칠하게 이를 데 없다. 아니면 원래 그럴지도. 

3개 통신사 중 노바를 선택했다. 섬 중심부 하이랜드를 방문하지 않을 계획이기에, 노바로도 충분하다 판단했다. 2GB를 구매했고, USIM 칩 1개를 받았다. 추후에 안 사실이지만 1개에 1GB짜리였다. 아이슬란드인은 '친절'과 '신용'이라더니. 첫날부터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꼭, USIM 개수를 확인해야 한다.

아차!, 싶었던 부분은 한 가지만이 아니었다. 편의점에선 USIM 트레이 키를 판매하지 않았다. 공항을 돌아다니며 물어보아도 구할 수 없었다.

"레이캬비크에 가면 통신사가 있지 않을까?, 거기 가서 하자 그냥."

"음 그래, 음? 잠깐만!"

좋은 방법이라도 떠오른 걸까, 아내는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고 검은 실핀을 뽑아 들었다. 보물상자 열쇠라도 발견한 듯이 말이다. 

"여깄다! 이거로 해볼까?"

실핀은 USIM 트레이 구멍에 얼추 들어맞아 보였다. '설마..'하는 마음도 잠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딱, 하는 작은 진동과 함께 트레이가 열렸다.

"만세!!" 

아내와 나는 신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느낌이 들었다. 

"실례지만, 혹시 일본인이세요?"

뒤를 돌아보니 동양인 서너 명이 있었다. 두 손으로 휴대폰을 쥐고 상반신을 살짝 구부리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뇨, 한국인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우리도 유심칩 때문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실핀으로 USIM 트레이를 여는 장면을 옆에서 보았나 보다. 대답하기도 전에 아내가 선뜻 실핀을 내밀었다. 연신 감사를 표하던 그들은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을 놓쳤다고 한다. 연락을 위해 USIM을 구입했으나, 장착하지 못하고 공항을 맴돌았다고 한다. 통화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우리는 그들을 떠났다. 렌터카 대여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중요한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USIM을 사야 할 땐, USIM 키도 함께 가지고 다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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