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용 Nov 12. 2017

내 장래희망은 회사원이 아니었다.

넷플릭스 테라스하우스:도시남녀 를 보고 난 후

"일단 취업부터 해. 너 하고 싶은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나를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여기게 만드는 달콤한 이야기. 아내와 최근 본 드라마를 리뷰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이 이야기가 나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내 장래희망은 회사원이 아니었어."


어릴 적 내 꿈, Man


어릴 적 내 꿈은 과학자였다.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미래 장래희망을 그려 제출하시오 가 나오면, 흰색 도화지에 원더키디 2020을 모태로 한 우주선을 그렸고, 하늘을 나는 차도 그렸다. 그리고 도화지 우측 하단엔 이렇게 적었다. 

'-2000년에 벌어질 일들-'

그림 : Kelsey


1999년 12월 31일. 곧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많은 예언들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사이비 종교에 가산을 탕진한 사람도 생겨났고, 각종 흉악 범죄가 생겨났다. 그리고, 2000년 1월 1일. 건재한 지구와 아직 땅에 머물러 있는 자동차를 보며 마음속 장래희망 하나를 버렸다.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뮤지션(Musician)이 되는 꿈이었다. 롹커(Rocker)에서 시작된 꿈은 점차 기타리스트로 옮겨갔다. 기타리스트로의 전향은 다니던 실용음악학원의 영향이 컸다. 나를 가르치던 보컬 선생님들은 세 달을 넘기지 못했다. 네댓 번이 바뀌고 나자 학원이 망해버렸다. 학원이 망하자 대학교수가 된 기타 선생님께 개인 레슨을 받기도 했다. 이 꿈은 그래도 오래 꿨다. 대학교 실용음악학과 진학에 실패하자 포기해버렸으니깐. 


그래도 대학교 땐 조금씩 음악활동을 하며 용돈벌이라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도 있었고, 실력도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다. 취업 전까지 일거리는 끊임없이 들어왔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왠지 이대로 이 길로 나가도 크게 무리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취미라는 생각에 마음속 선을 그었다. 취업부터 하면, 나 하고 싶은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


테라스하우스:도시남녀 가 던진 질문

드디어 오늘 아내와 함께 즐겨보던 드라마를 정주행 완료했다. '테라스 하우스:도시남녀' 라는 드라마로, 일본 일반인 6명이 한 집에 모여 사랑과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주제로 한다. 

누군가 테라스 하우스를 나가기로 결정하면 졸업이라 부르며, 다른 인원으로 충원한다. 18화로 예정되었던 드라마는 46화가 되어서야 끝이 난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캐릭터는 '미즈키 시다'이다. 초창기 6인 중 유일한 회사원으로 18화 내내 털털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탭댄서(위 사진 우측 가장 멀리 앉은)의 생일날, 탭댄서는 미즈키에게 꿈에 대해 질문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미즈키는 명확히 대답하지 못한다. '먼 훗날 카페를 차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공간에 있기를 원한다'라고만 대답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파묻는 탭댄서의 질문에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자괴감에 빠졌을까?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목표가 없어 구체적인 질문에 답변할 수 없었고, 이에 자죄감에 빠져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을 볼 땐 웃으면서 넘어갔다. 남의 일이거니, 나의 일이 아니니깐. 


46화를 모두 시청한 후, 아내와 나눈 대화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회사원이라는 직업은 '꿈이 없는 자들의 모임'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월급을 받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 쏟는다. 그게 프로 정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지친 몸과 맘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선 쉬기 바빴다. 헤아려보니 이렇게 지낸 시간이 벌써 4년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월급이 주는 만족감에 안주하고 있었다. 돈에 내 꿈을 잊고 살았다. 


다시 꿈을 꾸기.


서른을 넘긴 나에게 '장래희망이 뭐니?'라고 되물었다. '장래희망'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린 이유는 20년 만에 듣는 단어이기 때문일 게다. 대통령과 과학자라는 어릴 적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던 꿈은 더 이상 내 답변이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현실적이며, 실현 가능한. '회사에 다니다가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이야기의 백만 스물한 번째 주인공(어쩌면 그 이상)이 되고 싶진 않다. 


스쳐 지나갈 오늘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새롭게 도전받았다. 잊었던 것을 기억해냈고, 다시 새롭게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 딸이 겪는 막장 사랑이야기로 가득한 한국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반복되는 삶이 지루해질 때쯤 봐야 할 드라마로 추천하고 싶다. 꿈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자극받을 수 있도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