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본질, 본질! 영화 돈룩업 리뷰
휘몰아치는 영화다. 하나의 장면, 하나의 대사 속에 뼈가 있다. 빠른 속도감에 난제를 하나 던져주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 영화, 돈룩업이다.
케이트 (천문학과 대학원생)와 민디 (천문학 박사)는 에베레스트만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충돌할 확률은 100%에 가깝고 충돌하게 된다면 공룡이 멸종했듯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를 멸종할 것. 이 둘은 미국의 대통령(올리언)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무관심으로 응대하고... 자신이 이 혜성충돌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꼼수를 발견하자 이들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케이트와 민디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언론 투어를 시작하고...그러나 인류가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대중의 가십보다 못한 뉴스이고, 혜성 충돌보다도 민디가 섹시하다는 것이 SNS에서 입방아를 찧는다. 이에 민디는 서서히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유명인으로서의 삶에 안착하게 되고 홀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케이트는 대중의 무관심 (Meme이 되어버린..), 정치+대기업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의 무력감에 체념한다. 한편 IT 기업 창업가 '배쉬'는 혜성의 충돌이라는 이슈로 대중이 흔들리자 경제가 무너지고, 이로인해 기업의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는 생각에 혜성을 당장 폭발시키는 것이 아닌, 잘게 쪼개어 지구에 추락시켜 광물을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펼친다. 하지만 그의 말 뒤엔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기술력이 부재하고 그는 여느 IT 기업이 그렇듯 '선 신화창조 후 메꾸기'를 시전한다. 그런 IT 기업의 전략이 인류의 목숨을 건 이 문제에서 통할 전략일까? 드디어 혜성이 눈 앞에 나타났다. 재난이 닥치자 그제서야 반응하고 뉘우치는 사람들...
이건 단순히 혜성충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한 자극 시대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단타(?!) 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류를 구원해준다는 명목으로 온갖 신화로 무장한 정치인들과 IT 기업들, 그리고 소셜미디어 속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학습하며 사실과 주장을 구분하지 못한 채 '내 생각'보다 '재밌는 것', '대단한 사람'이 말한 것이 중요해진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SBS 이주영 기자의 기사 중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 가져온다.
이 시대 IT 기업의 창업자들은 단순한 비즈니스맨이 아니다. AI와 빅데이터로 무장한 이들은 정치인이 갖지 못한 막대한 자금력과 비전으로, 문제 해결에 대한 무한 긍정 메시지와 치솟는 주가로 대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메시아적 존재다.
휴대폰과 소셜미디어로 세계는 동기화되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병폐를 병폐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병폐를 병폐라고 보지 못하고, 메시아들의 외치는 가슴을 저릿하고 뛰게 만들게 하는 메시지에 눈앞이 흐릿해진 우리들은 혜성이 너무 가까이 와서야 '진짜'를 깨닫는다. 세상은 점점 투명해진다고 하는데, 왜 필요없는 가십에만 한없이 투명해지고 생사를 아우르는 크고 중요한 것들엔 왜 투명해지지 않을까. 왜 우리는 대중적 가십에만 조명을 키고, 사회경제의 근간을 보노라면 눈 앞이 뿌옇게 흐릿해질까.
정말이지, 현실재난영화이다. 이 재난 영화엔 그 흔한 영웅이 한 명 없다. 영웅처럼 보이는 자들도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무력해지고 체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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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 똑바로 잡고 과학자들 말 좀 처들으라는 거. 우리 진짜 망했어 망했어, 이번엔. 아무 일 없는 듯 굴어도 되지만 이건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 축하하든 울든 기도하든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어떻게든 바로잡아 내일은 오지 않을지 모르니까. 박스뉴스 좀 꺼. 곧 모두 다 죽을꺼니까.
재미났던 장면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브리'역의 케이트 블란챗과 '민디'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필로우토크 속 대사이다. 증명되는 것들로만 자신을 설명하기 바쁜 브리와 내면의 것으로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이 장면을 기점으로 또 하나의 대중이 되어버린 민디.
브리: 서로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네요.
민디: 그러게요. 당신의 삶을 물어보려고 하면 좋아하는 레스토랑 얘기만 해서.
브리: 그건 딱 질색이거든요. 서서히 알아가는 그런 단계
민: 네 이해해요
브: 좋아요 이번엔 예외로 하죠.우리할아버지가 급속 냉동기술을 개발해서 부자집에서 태어났어요. 석사 학위 세 개 따면서 집에서 독립했죠. 이혼을 두 번 했는데 한 명은 국무장관이었고 한 명은 스포츠 낚시인이었죠. 전직 대통령 2명과 잤고 4개 국어를 하고 모네 2점 소장 중이에요.
민디: 우리아버지는 중학교 지리 교사셨고 어머니는 주방에서 미용실 하셨어요. 2년 전 기르던 개 조조가 죽었는데 정말 슬펐어요.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드디어 스타워즈 포스터에 마크 해밀 사인받았어요 차고에 보관중인데..
브리: 그렇군요.. 끝났네요.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요?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자. 바뀔 수 없는 현실을 열심히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못할지라도 현실을 뒤트는 것들에 뾰족해지자. 인생은 단타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