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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서 알게 된 "멀티탭 증후군", 주변을 둘러보니

2025년 8월 8일 금요일의 기록

by 그라데이션

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다가 합선되는

멀티탭 같은 모습


출근길 인스타에서 "멀티탭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이게 뭘까 싶어서 찾아봤다. 여러 개의 플러그를 한 번에 꽂으면 과부하가 걸려 합선되는 멀티탭처럼, 사람도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다가 번아웃이 오는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설명을 읽는 순간 주변의 번아웃 온 직장인들이 떠올랐다. 정말 이 단어가 요즘 현대인들의 상황을 잘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일도 잘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하고, 취미생활도 알차게 하고, 자기 계발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모든 걸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려다 보니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보는 '완벽한 삶'들이 이런 증후군을 부추기는 것 같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건강한 아침 식사를 만들어 먹고, 출근해서는 성과를 내고, 퇴근 후에는 외국어 공부나 독서를 하고, 주말에는 새로운 취미를 즐기는 모습들. 이런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해내기는 불가능하다. 멀티탭에 용량을 초과해서 플러그를 꽂으면 합선이 나듯이, 사람도 한계를 넘어서면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긴다.




모든 걸 다 잘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


현대인이 멀티탭 증후군에 걸리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가 있었다. 먼저 사회적 압박감이 크다. 예전에는 일만 잘하면 됐다면, 이제는 일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분위기다. 회사에서는 업무 역량뿐만 아니라 소통 능력, 리더십, 창의성까지 요구한다. 개인 생활에서도 건강 관리, 자기 계발, 인맥 관리 등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비교하게 되는 것도 한몫한다. "저 사람은 나보다 늦게 입사했는데 벌써 승진했네", "저 사람은 어떻게 매일 운동하면서 일도 잘하지?" 같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든다.


경제적 불안감도 멀티탭 증후군을 부추긴다. 한 가지 일로만으로는 미래가 불안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려고 한다. 본업 외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거나, 투자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식이다. 이런 것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모든 걸 동시에 하려고 하면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기술 발전으로 일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영향을 미친다. 재택근무나 원격 업무가 일반화되면서 일과 개인 시간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언제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다 보니 쉴 때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완벽한 삶을 살려다

오히려 무너지는 순간


일, 관계, 취미까지 모든 걸 다 하려는 욕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직장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고 싶고,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고,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취미나 공부도 하고 싶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일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투입해야 할 곳은 너무 많다. 결국 어느 것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런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제대로 하려고 하면 무리가 온다. 예를 들어 운동을 시작하면 매일 하려고 하고, 독서를 시작하면 한 달에 몇 권씩 읽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일정이 빡빡해지거나 다른 일이 생기면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역시 나는 의지가 약해"라고 자책하게 되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자신감도 떨어진다. 완벽한 삶을 살려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늘어나고 번아웃이 오는 악순환이 생긴다.




혹시 나도?

멀티탭 증후군 자가진단


멀티탭 증후군의 증상들을 내 일상에서 찾아봤다. 첫 번째는 계획은 많은데 실행이 잘 안 되는 것이다. 새해나 새 달이 시작될 때마다 야심 찬 계획을 세우지만 한 달도 못 가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반복된다. 운동, 독서, 외국어 공부, 새로운 취미 등 하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두지만 실제로는 몇 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서 이것저것 조금씩 하다가 어느 것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 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집중력이 분산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SNS에서 다른 사람들의 성과나 일상을 보면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는 쉴 때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쉬고 있으면 "이 시간에 뭔가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죄책감이 든다. 다섯 번째는 번아웃이 주기적으로 오는 것이다. 한동안 여러 가지를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의욕이 떨어지는 시기가 온다. 이런 증상들 중 몇 개가 해당된다면 멀티탭 증후군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선택과 집중,

때로는 포기도 필요한 이유


멀티탭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방법들을 찾아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나열한 다음, 정말 중요한 것 3-4개만 선택한다.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하거나 나중으로 미룬다.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면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두 번째는 완벽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80%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매일 운동하지 못해도 일주일에 3-4번만 해도 의미가 있고, 한 달에 한 권을 못 읽어도 두 달에 한 권 읽으면 충분하다.


세 번째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정말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늘려간다. 매일 1시간 운동하기보다는 매일 10분 산책하기부터 시작하는 식이다. 네 번째는 휴식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쉬는 것도 생산성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 좋아하는 것만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다섯 번째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줄이는 것이다. SNS 시간을 제한하거나, 비교가 될 만한 콘텐츠는 의도적으로 피한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나만의 속도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스타에서 우연히 알게 된 "멀티탭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줄 몰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겪고 있었다. 모든 걸 다 잘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번아웃을 가져온다는 역설. 때로는 선택과 집중이, 때로는 포기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멀티탭도 적정 용량을 지켜야 오래 쓸 수 있듯이, 사람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명하게 에너지를 분배해야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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