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또 하루를 놀았다
여수가 고향이다.
바다(水)가 아름다워(麗) 여수다.
경남 통영의 한산도에서 시작한 한려수도의 물길이 사천과 남해를 거쳐 여수로 이어진다.
여수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남도이지만 말투는 경상도 억양에 가깝다.
여수는 육로로 이어지는 광주보다 한려수도 물길로 이어지는 남해와 더 가깝다.
1970년 수정동에 여수 최초의 시민아파트가 들어섰다.
오동도로 가는 도로 초입의 오른쪽 언덕 위에 상아색 페인트칠의 3층짜리 건물로 지어졌다.
다들 기와집, 슬레이트집이거나 아니면 옥상이 있는 1, 2층짜리 주택에 살았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의 생활양식은 그 개념조차 생소했다.
3층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면 신항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백섬 오동도가 보인다.
768m의 긴 방파제가 육지와 오동도를 이었다.
오동도로 연결된 방파제는 양쪽으로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블록들이 길게 놓여있다.
서로 엉켜있는 이 육중한 블록들은 그것을 어느 쪽에서 바라보나 Y자 모양을 하고 있다.
테트라포드(Tetrapod)라고 하는 방파제용 4각 블록이다.
파도로부터 해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해안가 바위틈 사이로 꽃게가 산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져 놓고 해안가로 나선다.
시장에서 두툼한 갈치 두 토막을 사서 준비한다.
공사장에 널브러져 있는 목재 중에서 적당한 길이의 나무 막대 두 개를 고른다.
박혀 있는 못을 뽑고 막대 끝부분에 갈치 한 토막씩을 끈으로 묶는다.
꽃게잡이 준비를 완료하고 해안가로 조심조심 내려간다.
물속 적당한 깊이의 바위틈을 찾아 갈치 묶은 막대를 하나씩 밀어 넣는다.
꽃게가 갈치 냄새를 맡고 막대 쪽으로 다가오길 기다린다.
수면 가까이 눈을 대고 물속을 들여다본다.
지금쯤 꽃게는 막대에 달라붙어 집게발로 갈치를 뜯어 입에 넣느라 바쁠 것이다.
바위틈에 꽂아둔 막대를 오른손으로 천천히 틈새에서 빼낸다.
왼손은 꽃게를 덮칠 준비를 하고 막대 왼편 적당한 곳에 잠복한다.
숨을 멈추고 물속에서 흔들리는 파장에 집중한다.
꽃게는 갈치를 먹느라 막대가 서서히 움직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갈치를 묶은 막대 끝부분이 서서히 틈새 밖으로 나온다.
성인 손바닥 크기의 꽃게가 막대 끝부분의 갈치에 매달려 바위틈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눈치가 빠르고 조심성이 많은 꽃게는 한 번에 잡히지 않는다.
매복한 왼손이 조금이라도 떨리면 파장을 눈치챈 꽃게는 잽싸게 바위틈 안으로 숨어 버린다.
위험을 감지하고 줄행랑을 친 꽃게는 갈치의 유혹을 완전히 떨쳐 내지는 못한다.
갈치 막대를 바위틈에 다시 밀어 넣는다.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좀 더 절제된 손놀림으로 막대를 조심히 꺼낸다.
호흡을 멈추고 잔잔한 물의 파동을 탄다.
꽃게가 갈치를 문 채 막대에 매달려 나온다.
꽃게가 바위틈에서 온몸을 다 드러낼 때까지 숨을 멈추고 막대를 서서히 들어 올린다.
이때다!
매복한 왼손이 순식간에 꽃게를 덮친다.
엄지와 중지로 정확하게 꽃게의 배와 등을 잡아야 한다.
집게 쪽으로 손이 가면 큰 집게에 물려 놓치고 만다.
막대를 바위 틈새에 다시 밀어 넣는다.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계속된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 물속이 잘 보이질 않는다.
놀다가도 저녁밥 때가 되면 시간 맞춰 들어오라는 잔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서둘러 물에서 나와 잡은 꽃게 서너 마리를 바케쓰에 담아 바쁜 걸음으로 돌아온다.
밤하늘에 별빛들이 졸졸 따라오며 바케쓰 안에서 반짝인다.
별로 놀지도 않았는데 해가 달로 바뀌었다.
늦게 돌아다닌다고 꾸중은 듣겠지.
바다와 잘 놀았으니 야단 좀 맞는들 어떠리.
가슴에는 여전히 물결이 출렁인다.
바다야,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