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탕과 국민체조

여수의 기억

by 충칭인연

테스와 테미


여수로 오기 전에는 순천 저전동의 단독주택에 살았다.

넓은 마당 중앙에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평상이 놓여있다.

벌교 꼬막을 큰 대야에 가득 삶아 가족 모두 평상에 모여앉아 먹곤 했다.

마당의 왼편 한쪽으로는 무화과나무가 있다.

무화과 철이 오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 무화과 맛은 온통 씁쓰름한 맛이다.

마루 밑의 넓은 공간은 테스와 테미가 쉬는 장소다.

날렵하고 잘생긴 독일산 셰퍼드 자매다.

테스가 오빠다.

어린 시절 마루 밑으로 내려가 테스와 테미를 베게 삼아 누워있곤 했다.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오니 테스와 테미가 보이질 않는다.

엄마에게 물어본다.

집 앞을 지나가는 도사견과 싸움이 붙어 둘 다 죽었다고 한다.

도사견은 싸움을 전문으로 하는 투견이다.

투견장에서나 볼 수 있는 개다.

생긴 것도 무섭고 몸집이 큰 개다.

한번 목을 물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를 않는다.

성질이 워낙 사나워 도사견 주인들은 그를 매우 조심스럽게 데리고 다닌다.

그런데 그 무서운 개와 싸우다가 죽었다고 한다.

마루 밑에 숨어서 일주일이 넘도록 울었다.

밥도 먹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이별의 슬픔을 처음 알았다.

그 후로 개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이별의 상실감과 그리움이 너무 컸다.


변소 보초


순천 집은 저녁에 변소를 가려면 마당을 지나 대문 옆까지 가야 한다.

밤하늘에는 별과 달만 빛나고 세상은 온통 깜깜하다.

마루를 내려와 대문 옆 재래식 변소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이 무섭다.

멀리서 새 우는 소리라도 나면 소름이 돋는다.

마당에 쥐가 가로질러 달리기라도 하면 기겁을 한다.

세 살 위의 형은 야밤에 변소 갈 때면 언제나 동생을 불러 밖에 보초를 세운다.

품앗이라고 하지만 동생이 변소에 갈 때는 이런저런 핑계로 약속을 지키질 않는다.

삼 년 먼저 세상에 나와 동생에 대한 횡포가 심하다.

형은 동생을 보초 세워 놓고 5초마다 한 번씩 이름을 부른다.

혹시 도망갈까 봐 이름을 부르는 거다.

무화과 나무, 테스와 테미를 뒤로 하고 여수로 이사했다.

여수 시민아파트의 중앙에 있는 계단 양옆으로는 입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넓은 수도시설과 여러 칸의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이 아파트 복도에 있으니 월야의 새소리와 쥐의 공포는 사라졌다.

여수로 이사 온 뒤에는 형의 변소 보초 사역에서 해방되었다.


종포 장어탕


순천 군청에 다니던 아버지가 여수 시청으로 발령이 났다.

순천 저전동을 떠나 여수 수정동 시민아파트 317호로 이사했다.

317호는 시민아파트 3층 맨 왼쪽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은 연탄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다.

오른쪽으로는 연탄을 쌓아두는 창고가 있다.

부엌과 창고를 양쪽에 두고 그 중앙에는 마루가 놓여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왼쪽에 방 하나 오른쪽에 방 하나가 있다.

미닫이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면 왼쪽 방은 창문을 통해 신항 앞바다가 보인다.

오른쪽 방은 베란다를 통해 오동도의 한쪽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의 중앙국민(초등)학교를 다녔다.

중앙초등학교는 여수의 명문이다.

초등학교는 학군 제도가 적용되어 동네별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지정되어 있다.

수정동에 사는 아이들은 중앙초등학교를 다닐 수 없다.

여수 역전과 재래시장 가까이에 있는 ㅇㅇ국민(초등)학교를 다녀야 한다.

ㅇㅇ초등학교는 역전 시장 옆에 위치하여 시장통에서 잔뼈가 굵은 아이들도 다닌다.

이들은 학교에서 틈만 나면 싸움질이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청소 시간에 운동장에서, 학교가 끝나면 뒷동산에서.

초등학생이 돌과 칼을 들고 싸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ㅇㅇ초등학교를 장돌뱅이 학교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나를 ㅇㅇ초등학교로 보내지 않았다.

4학년 때 하이칼라 머리에 중절모를 씌우고 가죽구두를 신겨 중앙초등학교로 보냈다.

학교는 종화동에 있다.

사람들은 종화동을 종포라 쓰고 쫑포로 읽는다.

중앙초등학교 정문을 나와 왼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종포식당이 있다.

이모가 운영하는 장어탕 전문 식당이다.

바다로 흐르는 하천 양쪽 콘크리트 위로 목조 건물을 올려 식당을 만들었다.

나는 점심시간이면 얘들이 도시락을 먹을 때 정문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다.

이모는 나를 위해 일반 가정식과 장어탕으로 점심을 준비한다.

장어탕은 여수의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쫄깃쫄깃한 육질과 우거지로 우려낸 매운맛의 장어탕은 여수 사람들이 즐겨 먹는 보양식이다.

하지만 매일 먹으니 느끼하고 지겹다.

나는 이모에게 애교를 부려 라면을 끓여달라고 해서 삼양라면을 먹는다.

삼양라면을 먹는 점심시간이 즐겁다.

삼사일을 연속해서 라면을 먹는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이모에게 말하여 라면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왜 이 맛있는 라면을 먹지 못하게 하는 걸까?

실험실에서 쥐에게 일주일 동안 라면만 먹였더니 그 쥐가 죽었다고 한다.

그 맛있는 라면을 먹고 죽다니??

나는 그 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먹고 싶지 않은 장어탕을 다시 먹어야 했다.


국민체조


학교는 아침 10시면 전교 학생과 선생이 모두 운동장으로 모여 국민체조를 한다.

운동장에 모인 전교생 앞쪽에는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단상이 있다.

단상 양옆으로는 계단이 있어서 학교 본관의 현관으로 연결된다.

교장선생은 조회 때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 학생들을 열중쉬어 자세로 세워 놓고 이 단상에 올라 근엄한 자세로 훈시를 한다.

단상 바로 앞으로는 학교 선생들이 길게 일렬로 학생들을 향해 서 있다.

교장의 훈시가 길어지니 이쪽저쪽에서 아이들이 픽픽 쓰러진다.

영양 공급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흔히 보는 광경이다.

집이 가난해 일주일 내내 김치 하나로만 밥을 먹는다며 투덜거리는 학생도 있다.

일주일 내내 라면만 먹고 쓰러진 실험용 쥐와는 달리 그는 근육질로 튼튼하다.

김치는 건강 식품인가 보다.

눈치 없는 교장의 긴 훈시가 끝나면 국민체조가 시작된다.

학교 건물 꼭대기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훈시하던 교장이 자리를 비켜주면 단상은 두 사람의 무대가 된다.

나와 여학생 1명은 단상에 올라 팔짱을 끼고 이리저리 돌면서 춤을 춘다.

방향을 바꿔 회전할 때마다 팔을 바꿔 팔짱을 낀다.

팔짱을 끼지 않은 다른 손은 허공에 들고 손바닥을 좌우로 회전한다.

잠자리 날개 같은 원피스를 차려입은 백옥같은 그녀.

나와 한 몸이 되어 이리저리 회전할 때면 분 냄새가 흩날린다.

하얀 얼굴이 병자처럼 창백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곱고 귀하게 자란 흔적이 고요하고 안정된 그녀의 표정과 동작에서 묻어난다.

전교생 역시 단상의 두 사람을 따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춤의 형식을 빌린 국민체조다.

나는 4학년으로 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생의 눈에 띄어 남학생 대표로 뽑혔다.

얼굴색이 하얀 4학년 여학생 대표와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손을 잡고 빙빙 돌며 춤을 춘다.

남녀칠세부동석인데 여자아이와 손잡고 팔짱을 끼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막내야, 대장부가 여자애랑 놀아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주문이 귀에 맴돈다.

그것은 “길 건널 때 조심해라”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바로 피해라”와 같이 어머니가 시간만 나면 세뇌하는 몇몇 주문 중의 하나다.

단상에서 함께 춤을 춘 여학생 대표는 학교에서 퀸카다.

하얀 피부와 예쁜 원피스가 돋보인 그녀는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그녀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나는 당연히 남학생들의 시기 대상이다.

“쟤는 뭔데 전학을 오자마자 저걸 하지?”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여자애랑 놀지 말라는 어머니의 마법 같은 주문 때문일까?

학군 제도에 붙들려 ㅇㅇ초등학교로 강제 전학할 때까지 나는 그녀의 이름도 몰랐다.

수정동에 살면서 중앙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ㅇㅇ초등학교에 일렀다.

ㅇㅇ초등학교에서 사람이 나와서 사실을 확인했다.

며칠 후 나는 장돌뱅이 학교로 강제 전학했다.

그녀와 손잡고 춤추던 나는 누군가의 고발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정든 학교를 떠났다.

장어탕과도 작별했다.


안녕, 장어탕!

안녕, 국민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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